화물의 최종목적지, 내 목적지가 되다.
트리폴리에서 바로 이동한 곳은 내가 일할 단위의 최고 윗단계에 있는 사업소라는 곳이었다.
우리나라 한가로운 면단위정도의 도심에 위치해 있는 엄청 큰 야드가 있고, 트레일러가 분주하게 움직이며 교육을 받고, 건물들도 비록 가건물이었지만 제법 크고 동 수도 많았다.
그곳에서 사업소장님에게 우리 입국 동기들(?)은 각각 계급별로 소장님 사무실에서 이등병처럼 각잡고 앉아서 훈화의 말씀도 듣고 특히 나에겐 전에 무함마드건에 대해 조언을 주었던 선배를 소개시켜주시며 이 훌륭한 선배처럼 너도 열심히 해라..라고 말씀을 주시기도 했다.
거기는 식당도 대기캠프와 다르게 체계가 잘 잡혀있다는 느낌을 받았고 특히 사업소장님 옆에는 주방장이 갖춰진 쉐프 모자를 쓰고 옆에서 대기하는 모습을 보았다. 식사가 편한지 제대로 입맞에 맞는지 세세히 살피는 모습이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여기는 군대구나, 저분은 쓰리스타정도 되는 위치겠구나 라고 생각했다.
같이 입국한 부장님은 이곳에서 일하시게 되어 우리는 과장님과 나만 따로 차를 타고 다음 행선지인 지소로 이동했다.
그때부터 그나마 보이던 면사무소 소재지 시골의 느낌마져 없어지고 비로소 사막이라고 우리가 생각했던 광경이 한참동안 펼쳐졌다.
트리폴리 대기캠프 자체도 동네 분위기가 단촐해서 실망했는데 (나중에 알고보니 트리폴리 외곽의 변두리였다) 사업소를 끼고 있는 동네는 더더욱 시골스럽게 느껴졌다. 그런데 그마저도 없는 곳으로 언제 도달할지 모르는 사막을 달리는 기분이 그다지 좋지는 않았다.
그렇게 한참을 달려 도착한 곳은 사업소와는 비교하기 어려울 정도로 황량한 사막 한가운데 덩그라니 놓여진 캠프. 지금은 너무 오래되어 어떻게 생겼는지도 기억나지 않는 지소에 떨어져서 입국동기인 과장님을 내려놓고 나는 거기에서 하루를 묶었는지도 기억나지 않지만 나만 혼자 그보다 더 작은 캠프로 오게 된 것이다.
점점 내 존재가 지워지는 느낌을 받기 시작했다.
하화지(화물의 최종목적지) 캠프라고 불리우는 이곳은 우리가 하는 일인 대수로공사에서 쓰이는 거대한 콘크리트 파이프를 북쪽 브레가 라는 도시에 있는 공장에서 부터 땅에 묻는곳 까지 나르는 일을 하는 것이고 우리 캠프가 그 끝단에 있는 캠프였다.
우리가 날라주는 파이프를 우리와 함께 컨소시엄을 맺은 D건설이 땅을파고 파이프를 묻고 물길을 연결하여 트리폴리까지 물길을 연결하는것, 그것이 대수로 공사였다.
캠프의 규모나 인원수는 가면갈수록 줄어 우리 캠프는 정말 단촐한 인원에 한국인 식당도 열몇명정도 오붓하게 식사를 하고, 사업소의 분위기와는 사뭇다른 그냥 공사장 함바집 느낌이었다. 당연히 식사의 질은 굳이 이야기 하고 싶지않을 만큼 열악했다.
쉐프 복장을 하고 차린 밥상과 일반 작업복을 한 아저씨가 만든 밥의 차이는 캠프 규모와 비례하여 차이가 하늘과 땅이었다.
무언가 내가 잘못선택했다는 후회가 약간씩 밀려왔고, 내가 리비아행을 결정했을때 내가 얻고자 하는 그 무언가와는 이미 트리폴리를 떠났을때부터 포기해야 할것 같다는 불안함이 캠프에 도착해서는 확신으로 바뀌었다.
아랍어를 전공한 사람으로서 희미하게 갖던 사막의 낭만과 만주벌판 말달리는 그 마음속에서 피어오르는 웅장한 기백도 막상 이런곳에 던져지고 나니 다 부질없는 한순간 맹렬하게 타오르다 사라지는 성냥불 같았다.
다른 사람들이 나에대해 위화감을 갖기도 했겠지만 나역시도 그런 기분에 휩싸여 구태여 먼저 다가가기 보다는 이 괴리감을 내적으로 삭히고 마음을 다잡으려 노력하느라 굳이 다른 사람들과 어울리는데 신경을 쓰지 않았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