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산, 장성, 순천
하화지 캠프의 열악함은 캠프의 무전상 명칭에도 비례했다.
사업소부터 지소까지 대기를 하며 따로 인사를 하는 일 이외 해야할 일도 없었던 우리는 시간을 삐대기 위해 들렀던 곳이 무전실이었다.
한국에서는 인터넷이 보급되어 집에서는 전화선을 사용해 나우누리를 하다가 엄마한테 걸려서 등짝 스매싱을 당하거나 학교에서는 근무하던 조교실에서 새로 뚫은 야한 사이트에 접속하느라 후배놈들과 하루가 어떻게 가는지 모르는 시절이었지만, 여기는 전화도 없는동네라는걸 사업소를 벗어나니 그제야 알게 되었다.
결국 각 캠프간 연락은 무전실에서 서로 캠프의 이름을 호출하고 그걸 통해 공문도 받아적고 긴급 지시사항을 전달하는등, 2차대전을 치르는 그시절 그 느낌과 방법으로 아직도 그렇게 살고 있었던 것이었다.
나는 그것도 모르고 새로 만든 한메일 아이디를 후배나 선생님들께 알려드리고 심심하면 연락 하라고 해놓고 이곳을 왔으니 내가 얼마나 순진했었던가.
우리나라는 0과 1로 모든것들을 옮기기 시작했는데, 이나라는 아직도 아나로그 전파에 모든것을 의지하는 사회였다.
무전실에는 한국인 무전사분이 근무시간 내내 앉아서 무전을 대기하고 있다가 무전을 받고 내용을 문서화 하여 관련 부서에 전달하거나 다른 캠프로 가야할 무전을 중간에 전달하여 받은 내용을 다른 캠프에 릴레이를 해주는 역할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사업소 무전실은 나름 휴게실 느낌도 났던게 입국자들이 비행기에서 들고온 신문이나 한국 본사에서 내려온 여러 신문, 잡지등을 비치하여 그곳에서 신문도 보고, 시간도 때우는 사랑방 역할도 했다.
사업소는 콜사인이 '안산'이었는데 내가 차례로 방문할 지소는 '장성' 그리고 최종 목적지인 하화지는 '순천'이었다.
이게 재미있는게 리비아의 벵가지를 서울의 위치와 동일하게 위치시킨 후 우리나라 지도를 약 80도정도 우측으로 돌린 후 리비아 영토크기만큼 키우면 대충 캠프의 위치와 맞는다고 보면 된다.
'안산'만 되도 나름 수도권이라 없는게 없던 그런곳이었다는것을 사막으로 접어들면서 느꼈던게, '장성'이나 '순천'은 이름만 정겨웠을뿐 주변을 아무리 둘러봐도 모래밖에 없는 말그대로 그냥 사막일뿐이었다.
외국인들도 있었으니 캠프명은 여러가지로 불리웠는데 안산은 E캠프, 장성은 G캠프, 우리는 I캠프로 불리기도 했다.
다른 캠프들도 있었는데 우리처럼 관운송을 하는 단위는 김제캠프도 있었고, 자재운송 사업소 산하 캠프가 있긴해도 뭐라 하는지는 내 기억에는 없다.
장성이나 순천 캠프에서도 무전실을 가봤는데, 벽면을 가득채운 무전기기와 통신에 필요한 여러 호출부호나 이것저것 다닥다닥 붙어있는 그 번잡한 곳에서 무전사 아저씨가 마이크를 입에대고 '순천 장성, 장성 순천' 이런 이야기를 해대며 상대방을 애타게 불러대고, 기어코 연락이 닿자마자 뭔가를 받아적는것을 보는게 재미는 있었다.
한편으로는 서울에서 태어나고 자라 학교를 졸업할때까지 계속 서울에만 있던 내가 리비아에 와서야 사막이 주는 압도적인 공허함과 막막함을 마주하고나서야 내가 얼마나 별볼일 없는 존재인지 비로소 알게 되었다.
한국인들은 남의 나라 땅에다가 자국 도시의 이름을 붙여놓고 마치 한국처럼 부르는것도 업무적인 편의성이 있어서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렇게라도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표현한것은 아니었을까?
우리는 그들의 땅에 우리 이름을 붙여놓고 땅을 파고 관을 묻고 우물에서 물을 길어 천키로를 넘겨 물을 나르고 있는데 그 땅의 주인인 리비아인들에게 우리는 과연 어떤 존재였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