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1 군인 무함마드 3

목숨이 나갔다 들어옴

by 임모씨

아니나 다를까 사무실 앞에 떡하니 주차된 차량은 그놈임을 나에게 알려주었다.

이미 머릿속으로 어떻게 이놈을 대해야 할지 몇차례고 시뮬레이션을 돌려봤지만, 한번도 겪지 않았던 일을 대하는것은 그래도 나에겐 너무 벅찬 일이었지만, 한국인으로서 우리 물건을 부당하게 빼앗기는 일을 겪거나, 그로인해 우리 회사에 손해가 나오면 안된다는 사회 첫경험을 막 내딛은 초보자의 사명감이 나를 당차고 감정을 담은 문짝 열어젖히기를 가능하게 했다.

예의 그자리에 앉아서 나를 기다리는 그 펑퍼짐한 등어리와 그 앞자리에 앉아 어쩔줄 몰라하는 L과장님이 얼른 나를 앉으라 하시고는 이내 자리를 떴다.

그때 얘기가 된(?) 물량을 내놓으라는 요구를 또하는데, 나는 못준다고 버팅기는 똑같은 일이 반복되었고, 세번의 턴이 지나자 이놈도 못참겠다는듯 허리춤에 찬 권총을 꺼내놓고 자기 옆자리에서 만지작거리기 시작했다.

이건 선배가 얘기해준 내용이랑은 많이 달랐다.

여기는 내가 살던 한국도 아니고, 시내나 주변에 인가가 있는 그런곳도 아니고, 당연히 법이나 규범이 통하는 곳이 아니었다.

해외공사를 오래하셨던 고인물 반장님들이 술만 들어가면 하는 얘기중엔 왠 미친 리비아놈이 AK소총을 들고와서 사무실에서 자동으로 긁어버리는 바람에 몇명이 다치고 죽었다는 이야기도 이미 들었던 터라 여기서 내가 골로갈 수 있다는 생각이 바로 들었다.

그리고 말로만 듣거나 문학적인 표현으로 흔히 나오는 '주마등이 스친다' 라는 짧은 찰나에 긴 시간이 내 머릿속에 흘러가는 그런 경험을 느껴보게 되었다.

외동아들, 아직도 못난 나에게 기대를 걸고 계신 부모님, 그리고 내가 겪어야 할 인생의 모든 즐거움과 보람들이 이놈이 손가락 한번 잘못놀리면 그냥 포기하고 이 먼곳에서 죽어나간 한명의 한국인으로 추가될수도 있는 순간이 될수도 있다는 생각에 나도 모르게 쫄아버렸지만, 그래도 그놈 앞에선 그런 모습을 보일필요는 없었다.

그리고 그때 나는 지금의 기운 딸리는 아저씨가 아니었다. 20대 중반의 팔팔한 나이.

나는 사무실 책상에서 널려있던 A4용지 한장을 뽑았다. 혹시나 몰라서 공문에 쓰는 도장도 셋트로 가져다 옆에 놓고, 스탬프 잉크도 이쁘게 셋팅하는것을 잊지 않았다.

그동안에도 그놈은 나를 노려보며 권총을 만지작거리며 너는 오늘 죽는다 라고 이야기하는듯한 위협과 한편으로는 도데체 내가 뭘하려고 저러는지 궁금함을 담은 눈빛을 보내고 있었다.

맨윗자리 가운데 내가 학교다니면서 수도없이 써봤던 아랍어로 글을 썼다.

'자비롭고 자애로운 알라의 이름으로'

그다음자리에는 오른쪽 정렬로 한줄을 썼다.

'위대한 영도자 동지께'

그 밑에 또 썼다.

'대수로청 장관 각하께'

옆에놓여있던 메모지에 그녀석의 반 여성화된 가슴팍에 박혀있던 이름표를 쓱 흝어주며 그놈의 이름인 '무함마드 xxxx' 마져도 멋지게 써놓고 내가 이게 맞는지를 확인하듯 그녀석의 면상을 한번 보아주었다.

전에 협박하던 득의양양하던 얼굴과 표정은 이미 몇발짝 문밖으로 나가있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과연 저놈이 어떻게 하는지 더 보자는 듯한 기다림과 쫄았음을 보여주지 않으려는 마음, 그리고 한번도 당해보지 못한일을 당한듯한 당혹감이 모두 섞인 무어라 표현하지 못할 그 무엇으로 바뀌어가고 있었다.

니가 원하는걸가져가고 싶으면 가져가라. 그리고 나는 공문을 써서 직접 니가 뭘 했는지 바로 발송해버리겠다.

너는 한국인이 저지른 잘못을 이야기해도 돼고, 나는 니한테 뭘 줬는지 이야기 하겠다.

그리고 그 밑에 뭔가를 계속 쓰려고 노력했다.

우리는 대수로공사를 실행하는 한국회사인 xx이며........ 그다음부터는 뭐라 써야할지 이게 아랍어인지 스와힐리어인지 아무것도 생각이 나지 않는것이다.

그리고 흘낏 눈을 들어 봤던 무함마드는 총을 계속 들었다놨다 하면서 요지부동이었다.

남들이 보기엔 어떻게 보일지는 몰라도 나는 내 목숨을 걸고 되지도 않는 도박을 하고 있었고, 이게 아랍어 몇줄이 안나와서 실패할 수는 없었다. 그 짧은 시간이 나에겐 얼마나 길었는지 모른다.

그래도 표정관리를 하면서 이놈이 왜 반응을 안해주는지 등어리에 기어코 식은땀이 흐를때 아예 총을 들고 총구를 내쪽으로 몇차례 돌려놓던 놈이 갑자기 내가 쓰던 종이짝위에 손을 올려놓고 내 손을 막았다.

그리고 종이를 집어들더니 나를 노려보며 종이를 찢기 시작했다.

나는 얄미운 표정을 지으며 그래 니가 어쩔건데, 라는 표정을 보여주었다. 전혀 쫄지 않았다는듯 거만한 자세로 등받이까지 몸을 뒤로 제껴보이기까지 해주었다.

그리고 나도 못알아듣는 몇마디를 지껄이더니 자리를 털고 일어섰다.

그리고 열받은듯 씩씩거리며 문밖으로 향했다.

죽었다가 살아난 나는 그놈이 나간걸 확인한 후에 일단 나는 포경수술을 권유하는 전통적 욕설을 한국말로 그의 뒷통수에다 배웅대신 꽂아주었다.

숫자, 남녀의 성기, 비속어를 섞어서 내 뱉는 나의 열받아하는 욕설과 함께 나는 다시 연못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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