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1 군인무함마드 에필로그

그후의 이야기

by 임모씨

30년전 리비아에서 근무를 했던 어느 젋은이가 겪었던 이야기를 써봅니다.

어느곳에서도 비슷한 이야기를 찾지 못하여 누군가는 그들의 이야기를 남겨야겠다는 사명감이 들었습니다.

이런 세상도 있었다 정도로 봐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좋은일이 좋은일이 아닐수도 있고, 나쁜일이 나쁜일이 아닐 수 있다.


어디서 들었는지는 모르지만 맞는 말이라 생각한다.



그날 이후 무함마드는 다시는 우리 캠프에 와서 그짓을 하지 못했다.


다만 리비아 당국과 약속된 대로 지나가는 캠프에서 주유는 할 수 있었다. 가끔 주유만 하고 가는걸 서류를 통해 확인할 뿐, 감히 사무실에 들어오지도 못했고 그전처럼 뭐를 달라고 하지도 못했다.


그때의 나는 왜 그렇게 무모했었을까. 지금도 또렷하게 기억나는 그놈의 지나치게 큰 두눈은 내 첫 리비아 생활에서 맞은 시련이었고 나름의 첫 성공이라고도 할 수 있었다. 아랍어를 사용하는 사람이 거기에서 왜 필요한지 나름 내가 증명을 했다고도 생각이 됐다.



그당시 리비아는 국제적인 제재를 받는 상황이었고, 모든 물자가 너무나도 턱없이 부족했다. 그 많은 석유자원이 곧 민초들이 살아갈 수 있는 생필품으로까지 바꿀수 있는 능력은 리비아는 가지지 못했다. 그런 와중에 상대적으로 훨씬 다양하고 질좋은 물건을 가지고 있던 한국의 캠프는 그들이 노리고 싶었던 돈덩어리였을것이고, 무함마드같은 눈치좋은 놈들은 이걸 잘 이용하여 치부를 꽤나 많이 했을것이고 무함마드 뿐 아니라 많은 리비아의 부패한 관리나 군인들이 같은 길을 걸었을것이었다.


그걸 가능하게 하는 이유중 또 하나는, 한국인들이 지나치게 현지인들에 대한 두려움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막상 부딛히면 암것도 아닌데 미리 두려움을 가질 수 밖에 없는 환경일 수 밖에 없다.


기본적으로 사람들이 여럿 희생당하기도 했고, 법은 한국에나 두고 왔을만한 환경이었고, 실제로 총을 차고 실탄을 가지고 다니는 놈들앞에 무슨 깡이 있어 대들수 있겠는가? 심지어 총이 없어도 기본적으로 리비아 현지인들을 대하는것은 언제고 나에게 불이익을 가져다줄 수 있는 걸어다니는 폭탄같은 느낌이었다.



그날 저녁엔 내 목숨이 몇번 왔다갔다 했을지 누구도 알수 없는 일이었지만 후련하지도 않았고 기쁘지도 않았다.


내가 이런 후진 상황에 내 스스로 걸어들어가서 앞으로 일년동안 이렇게 살아야 한다는 사실과, 하필 아랍어를 배웠다는 후회, 그동안 너무 재미있게 살아서 이제 나에게 고통을 안겨주는 순서가 되었나보다 하는 절망등 여러 실망스러운 마음때문에 마음잡기가 힘들었다.



어쨌든, 그일 이후 나는 그 캠프에서 거리감을 가진 공부만 많이 한놈에서 해외생활 왠만큼 많이 했던 반장님들보다 입이 훨씬 거친 나름 재미있는 친구로 보여지게 되었고, 작은 연못에서 풀뜯는걸 나말고도 다른 사람들과 함께 할 수 있게 되었다.


내가 얼마나 쫄아서 벌벌떨었는지 모르는 사람들은 골치아픈 일을 나름 시원하게 해결한 나에 대해 서서히 호감을 보이기 시작했고 겉돌던 나는 나름대로 그들 안에 들어가 있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사실 정말 아무것도 아닌놈이 와서 별다른 조치없이도 쉽게 갈 수 있는것을 참으로 어렵게 해결봤다고 지금은 생각이 된다. 이미 알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회생활 자체를 처음으로 해본 나에게 첫 시련은 그렇게 잘 해결이 되었고, 앞으로 닥쳐올 일들이 훨씬 거대하였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내 목숨이 여러번 왔다갔다 할 정도였던 일이 몇차례 있었지만 그냥 그렇게 또 시간을 순탄하게 보내게 해준 작은 사건이었다.



그로부터 몇달이 지났는지 모를 어느날, 다른 캠프를 방문했을때 사무실에서 그놈을 마주쳤던적이 있었다.


나를 보더니 아는척을 하려다가 다시 마음을 접었는지 그냥 가만히 내 눈치를 보던 그놈을 보며 혼잣말로 욕을 하고 지나쳐주더라도 암것도 못하고 무기력하게 앉아있는 그놈은 선배의 말대로 정말 ‘암것도 아닌’놈일지도 몰랐다.


실제로 그때의 나는 그런놈 하나정도는 아무렇지도 않게 ‘퇴치’할 수 있을정도가 되어있었다.


고맙다 이새끼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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