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5 춤추는 무뚜

by 임모씨

'순천 크레인 J반장님이 사고로 돌아가셨단다'

귀국한지 몇년이 지난후에 지인으로부터 전해들은 소식이었다......



저녁식사를 마친 우리들은 혼자 해야할 특별한 일이 없을땐 약속이 없어도 의례 휴게소에 한둘씩 모인다.

드레스코드로 굳어진 그레꼬로망 스타일의 늘어진 난닝구를 입은 아저씨들로 가득찬 좁은 휴게실은 나름대로 활기를 띄는 시간이다. 일과후 와시와시를 끝내봐야 오후 다섯시 남짓이었으니 그 이후 다음날의 일과까지의 긴시간동안은 딱히 할게 없기 때문이다.

거기에 가면 오늘 삘받은 몇몇 반장님들이 식당주방장에게 부탁해서 얻은 술안줏거리와 누구방에서 나온지 모르는 싸데기가 차려져 있고 벽쪽에 자리잡은 테레비와 그밑에 비디오에서는 그날의 볼거리가 '재생'되고 있었다.

가요무대, 전국노래자랑등 20대이던 내가 한국이었으면 절대 볼일 없던 프로그램도 거기서는 없어서 못보는 소중한 컨텐츠이자 유일한 엔터테인먼트였다.

이 비디오 테이프는 어떻게 이곳까지 도착해서 우리가 볼 수 있을까?

내가 한국을 떠나는날 다이아나 황태자비가 사망했다는것을 일주일이 지나서야 알게되었다.

일주일에 한번뜨는 우리 전세기를 통해 사람만 오는게 아니라 한국의 본사에서 심혈을 기울여 녹화해놓은 여러 컨텐츠가 함께 도착하여 서울캠프를 거쳐 안산으로전달되고 그곳부터는 파이프를 나르는 정기 운송편에 장성에서 재생된후 순천까지 도착하는것이다.

물론 비디오테이프만 오는게 아니다.

한국의 가족들, 친구들로부터 보내진 편지, 소포들도 함께 전달된다.

매일 장성으로부터 오는 파이프들을 우리 기사들이 받아서 하화지까지 나르고 돌아온 빈트럭이 다시 장성으로 가는 그 정기적인 운송일정은 마치 핏줄처럼 우리에게 필요한 소식들과 쉴수 있게 하는 비디오들, 신문 따위를 날라주는것이니 장성의 캄보이 반장님은 나름 반가운 분이셨다.

음악은 헤비메탈, 그것도 키보드가 들어가지 않은 독한 헤비메탈만이 음악이라고 생각하던 흥선대원군같은 완고한 음악관을 가지고 있던 나는 그시절의 가요무대와 열린음악회에 완전히 정체성이 무너져버리는 경험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전국노래자랑에서 군대 쫄따구를 발견하고 누가봐도 가창력보다는 인기상을 노리고 웃기는 춤을 추며 노래와 따로놀던 그친구를 보고 눈물이 핑돌았더랬다.

간간히 영화도 보았는데, 무슨 영화를 봤는지는 하나도 기억나지 않는다. 지금도 신기하게 생각되는데 영화 제목도 내용도 기억나는게 하나도 없다.

하지만 어느날 도착한 그 영화 하나만큼은 지금도 유일하게 제목이 기억나는 영화이다.

'춤추는 무뚜'라는 인도영화였다.

발리우드 전형적인 영화답게 화려하지만 유치한 군무와 우리나라에선 택도없을 배나온 아저씨가 주인공이자 영웅으로 아리따운 여성을 차지하는 내용이었다.

잘생긴 '아미르 칸'이 나오는것도 아니고 지금처럼 그나마 인도영화에 대해 조금의 이해라도 있는 시절도 아니었던 90년대에 우리는 얼리어답터처럼 인도영화의 마쌀라의 알싸한 맛을 신기하게도 한참전 그시절에 즐기며 마치 타밀사람들처럼 그들의 한참 먼 정서에 동화되어 춤추고 노래를 들었다. 김수로왕의 왕후인 허황옥의 후손이어서 그랬을까?

아마도 장성에서 안보는걸 그냥 이곳으로 넘겼나본데 우리 열명 조금넘는 시커먼 아저씨들은 그 영화를 숨도 못쉬고 빠져들어 정신을 놓고 즐겼었다.


그이후 J반장은 업무적으로나 캠프안에서나 늘 붙어다니던 단짝 캄보이 E반장을 '무뚜'라고 불렀었다.

연세가 적지않은 두 '아부지'들이 무뚜라고 불리우고, 듣고 화내고, 도망가고 잡으러가는 천진난만한 상황을 보고 있으면 그나마 삭막한 이곳에서의 생활에서 개그캐릭터를 담당하는 두분이 보기에 나쁘지 않았다.


청주사람 J반장님은 아이가 졸업할때 한번도 가보지 못해 어쩌다 휴가를 나가면 서먹하게 있다가 온다는 서글픈 얘기를 하곤했는데 결국은 그 서먹한채로 영영 오지못할 길을 기어코 그곳에서 떠났다.

사람좋은 충청도 목소리로 '무뚜!!'라는 별스런 호칭을 남발하며 모두를 웃음짓게 했던 그 반장님을 생각하며 지금은 천국에서 편하게 지내시라고 일도 그만하시고 더 즐겁게 보내시라고 기원을 드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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