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6 본업은 사고처리

코디네이터 샤리프 알리 아저씨

by 임모씨

자대배치후 몇몇 굵직한 푸닥거리를 마치고 난 후 내 다른 업무가 사고처리인것을 비로소 알게 되었다.

그 즈음엔 장성에 자주 가게 되었는데 원래 우리 캠프가 장성의 출장소 느낌이었는데다가 기억은 희미하지만 그곳에서 사고처리를 담당하던 깔람사원(아랍어구사사원) 선배가 귀국을 했었던것으로 기억이 난다.

그곳 사람들과 술도 자주 마시고 많이 친해져 마치 장성을 가는것은 그냥 큰집으로 놀러가는 느낌이 들 정도로 편했던것 같다.


어느날인가 장성의 호출로 서너시간을 달려(정확하지 않을 수 있다) 장성으로 갔을때 나에게 주어진 첫 사고처리 업무를 마주하게 되었다.

그리고 또 다른 리비아에서 만난 인연인 샤리프알리 아저씨를 소개받게 되었다.

장성과 우리 캠프 사이 거리에 위치한 시골도시 Al shuwairif 사람인것으로 기억되고 동아콘소시엄, 특히 우리 회사 (D통운)의 일을 봐주는 현지인 코디네이터였다.

주로 현지인과 기업간 분쟁이나 사고났을때, 그리고 법적인 문제에 있어 일을 봐주는 사람으로 중년에서 노년으로 넘어가는듯한 나이와 (체감적으로 그랬지만 지금의 내 나이보다 어렸을수도 있다) 리비아인 특유의 곱슬머리가 희끗희끗 나이티를 내고 있었고 얼굴엔 깊이패인 주름, 커다란 덩치에 더 커다란 당당한 배를 소유한 사람이었다.

울산에서 먹어준다는 현대자동차 직영잠바처럼 이곳에서는 동아잠바를 전통복장위에 꼭 입었던것으로 기억이 난다.

첫 인상은 군인 무함마드와는 결은 다르지만 위압감을 느끼기 충분한 존재감을 가진 얼굴이었지만 의외로 개그스러움도 가진 그런 사람이었다.


나의 유려한 아랍어 인삿말을 듣고서도 너무나도 능숙했던 동아랭귀지로 받는것이 그양반의 한국사람들과의 연륜과 '아무리 날고기는 아랍어를 배운놈이라도 나랑은 겸상하기는 어려울것'이라는 경험에 의한 대응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맞다. 인삿말 이외 다른 내용을 가지고 아랍어로 그 아저씨와 맞짱을 뜰수 없었으니 나도 깨갱하고 입닥치고 조용히 있었다.


첫사건은 무엇이었는지는 기억에서 이미 날라갔다.

하지만 나는 자주 샤리프 알리 아저씨와 경찰서, 병원, 법원등을 부지런히 다녔었다.

리비아인들에게 한국인 캠프는 삥뜯기 좋은 호구였고, 뭔가 약점을 잡으면 시중에서 구하기 어려운 커피, 휴지, 생필품등을 얻을 수 있고 한국회사와 관련된 사고에선 항상 리비아인은 피해자였고 뭐가되었던 일단 한국회사는 항상 불리했다.


워낙 큰 장비들과 빈번한 운행덕에 그놈의 사고는 정말 많이 일어났다.

운행중 낙타를 치기도 하고, 양도 치기도 하고 무슨 재산상의 피해도 생기고 하는 그런 일들이 비일비재했고, 그럴때마다 나는 이곳저곳 불려다니면서 처리를 해야했다.

물론 인삿말만 유려했던 내 언어 역량으로는 혼자서 이 일들의 완벽한 처리는 불가능한 영역이었고, 그럴때마다 우리 듀오는 경찰서에서 조서를 검토하고, 병원에서 리포트를 받아오고, 피해에 대한 검토를 함께 했다.


샤리프 알리 아저씨는 동네에서 존경받는 유지급 인사였던것 같다.

그 동네에서는 사람들에게 존중을 받았고, 그 역시 나와 같이 다니는 동안에도 애들의 학용품을 사거나 나에게 부탁하여 커피나 쌀등을 캠프에서 얻어 가난한 집에 도움을 주기도 했다.


나의 실체를 빨리 간파한 아저씨는 시내를 다닐때나 관공서, 경찰서를 다닐때 어린애를 붐비는 공원에서 데리고 다니듯 손을 꼭 잡고 앞장서 걸어다니곤 했다. 아무래도 내가 사고치기 좋은, 아니면 사고당하기 좋은 움직이는 폭탄으로 생각했는지도 모르겠다.

이 행동은 리비아 주방장 압둘라 아저씨도 마찬가지였는데 어느날인가 시내에 함께 다닐 기회가 있었는데 내손을 꼭 잡고 앞장서서 걸었다. 마치 엄마손을 잡은 애같은 느낌으로 질질 끌려다녔었다.


지금 기억을 더듬어본 사고처리 방식을 적어보자면 중대사고시 사고발생 - 유치장 수감 - 보상조치 - 출국처리 순으로 되고 작은 사고의 경우 유치장만 안들어갔지 그리 다르지 않은것으로 기억한다.

그 일을 처리하자면 발생한 모든과정에서의 경찰조사에서의 조서작성 관여에서부터 법원 공판출석, 피해자들과의 합의, 출국의 전과정을 담당해야 한다.


한국에서도 잘 도망다닌덕에 전경버스에 끌려간적은 있을지언정 경찰서 신세는 저본적이 없었는데 그시절 리비아에서는 노상 경찰서를 동네 동사무소 드나들듯 드나들었다.

덕분에 그지같던 캠프 짬밥을 안먹어도 되는 날이 많았고 내가 좋아하던 리비아 음식들을 이동네 저동네 다니면서 많이도 먹고 다녔다.


한번은 어떤 관공서에서 공무원을 만나 요청할 일이 있었다. 아마도 교통관련 협조해야 할 일이 있었나보다. 대뜸 나를 보더니 손글씨로 공문을 쓰고 인장까지 찍으며 나에게 넘겼다.

내용도 기가찬게 우리에게 문구류, 커피류, 그리고 기타등등을 제공(?)해달라는 어이없는 요구였고 내가 샤리프 알리 아저씨에게 방방뛰며 거지새끼 운운하며 나라를 모욕하는 말들을 쏟아냈지만 그 모욕적인 말을 들으면서도 나를 때리거나 걷어차는 대신 그냥 피식하고 웃고 넘어가는 대인배적인 모습을 보여주었다.

관공서에서 그 그지같은 종이쪽지를 들고 나와서 분이 가라앉지 않은 채로 어느 식당에서 아저씨 앞에서 나도 공문을 하나 썼다.

격식을 갖추어 무함마드 앞에서 썼던 형식대로...


'자비롭고 자애로운 알라의 이름으로'

To '위대한 지도자 동지께'

참조 '리비아 자마히리아 공화국 xx시 xx국'


우리는 대수로 공사를 진행하는 동아콘소시움의 xx캠프로서 귀국의 경제발전을위한 성스러운 작업을 수행하는 블라블라....

우리에게 양 5마리와 대추야자, 그리고 생수 몇박스를 공급해주시기를 바랍니다.


내가 생각해도 미친놈 같긴했다.


평소에 아저씨가 쓰던 그 기가막히게 아름다운 아랍어 서체의 공문을 어께넘어 눈여겨 봤었던대로 글씨체도 따라해보고 말도 되지않을지언정 어느정도 아랍어로서의 식별은 가능했나보다.

나를 애취급하며 어이없는짓을 할땐 가끔은 호통도 치던 아저씨가 이번엔 대견하다는듯한 눈으로 나를 보던 기억이 난다. '오~ 이새끼봐라?' 라는 느낌으로.

끝내 그 엉터리 공문을 전달하는 더이상의 또라이짓까진 도달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놈이 요구한것도 역시 무시해버렸다. 어딜가나 공무원새끼들이란...


그렇게 재미있게 지내던 어느날 장성으로부터 긴급하게 나를 찾는 무전이 전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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