뽀글이와 썬데이서울
사막에서의 생활은 곧 시간과의 싸움이다.
사람들은 어떻게든 시간이 지나가기를 바라고 기다리며 몸과 마음을 하루하루 돌아가는 일에 맞추고 한달에 한번씩 돌아오는 급여일만을 기다린다. 그리고 반대급부로 그러면 그럴수록 시간은 쉬이 지나가지 않는다. 하루가 길때도 있고 짧을때도 있는데 하루종일 캠프와 작업장을 오가는 생활을 하는 인원들의 경우 늘 똑같은 루틴을 반복하다보니 그렇게 빨리 지나가는 기색은 아니었다.
나의 경우는 캠프에서의 일도 있지만 다른 인원들과 달리 캠프 밖을 나돌아다닐 일이 많았기에 다른 사람들의 생활에 대해 깊이 생각해본적은 없었고, 매일매일 무언가 사고가 터지고, 일이 생기고 새로운 곳을 다니고 새로운 인간들과 만나서 즐겁고 짜증나고 화나고를 반복하느라 나의 시간은 그들보다는 빨리 지나간것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에 비해 너무 단조로운 생활이 반복되니 무언가 즐거움거리를 찾아야만 했다.
반장님들은 반장님들대로, 사무실 식구들은 사무실 식구대로 나름의 시간보낼거리를 만들어 놓고 사는것이 오랜 해외근로자 생활을 이어갈 수있게 하는 그들만의 노하우였다.
새벽에 일을 시작하면 서늘한 새벽공기를 뚫고 하늘에서 펼쳐지는 은하수와 어쩌다 운좋으면 보는 별똥별을 볼라치면 옆에서 무슨 안전구호를 외치던말던 나혼자 속으로 '부자되게 해주세요. 이쁜여자 만나게 해주세요' 라는 지극히 사사로운 소망을 빌기도 했고, 사무실에 돌아오면 티보이가 만들어주는 다방커피와 쨈바른 사라다빵을 먹고 장성에서 보급차량이 들어오면 삼국인 근로자들을 이끌고 창고에 가서 굳이 안해도 되는 쌀가마 나르기나 창고정리등의 육체적 혹사를 하며 땀을 쭉 빼고 나면 나에게 어른거리던 감기기운도 능히 이겨내는 젊은 기운을 그런쪽으로 낭비를 했다.
그리고 오늘은 판금, 다음날은 전장, 다음날은 엔진반등 우리 캠프 한켠에 크게 자리잡은 정비반들을 돌아다니며 반장님들과 노가리를 까거나 담배를 함께 피며 시간을 보내고, 자동차에 대해 궁금한것들을 물어보면 반장님들은 그렇게 좋아하시며 자신들이 아는 지식을 쭉 풀어주시면서 함께 시간을 보냈다.
친구인 Y가 반장으로 있는 워크샵으로 가면 또다른 친구 K와 셋이 함께 모여 군대에서도 못먹을 특별한 뽀글이를 먹는 경우가 많았는데, Y가 말아주는 뽀글이는 무언가 더 특별했다.
라면봉지에 뜨거운 물을 부어 불려먹는 법은 동일하지만 Y는 봉지입구를 완벽하게 틀어막고 그걸 또 끓는 물에 담궈서 이중으로 끓여내는데 내가 세상에 태어나 먹어본 그 어느 뽀글이보다 훨씬 맛있었다.
나는 뽀글이가 더 완벽해지는 동안의 순간에 식당에 처자고 있던 베트남친구를 굳이 깨워 김치를 받아오고 우리 셋은 깔깔거리면서 뽀글이를 먹었는데 지금도 사막에서 내가 누리는 완벽한 낭만의 기억중 하나였다.
점심은 삼분만에 얼른 해치우고 다음 근무시간까지 취침에 들어가는데 비록 한시간이 안되는 쪽잠이었지만 그만큼 달콤한 낮잠은 없었을것이다. 자명종이 울리면 다시 유니폼을 갖춰입고 사무실로 들어가 되도않는 업무를 보는 시늉을 하다가 삼국인 숙소를 들르거나 리비아 숙소를 방문하여 오늘 내가 좋아하는 메뉴가 있는지 살피고 무언가를 만들고 있는 주방장 압둘라를 만나 담배를 피다가 뭔가 맛있어 보이는걸 손으로 덥석 집어 입으로 가져가고 욕먹고를 반복했다.
뭔가 꽂히는 음식들이 나오면 좀 더 만들어 달라고 해서 그건 그날 저녁의 싸데기 안주로 식구들과 함께 먹었다.
늘 똑같은 생활에서 무언가 변화를 줄 수 있는 이벤트중 하나는 방문자였다.
우리 캠프에는 매일 오는 장성 캄보이반장님 외에 장성과 우리 캠프인 순천을 관할하는 의무부장이나 사업소에서 어쩌다가 한번씩 오는 사람들, 일이 있어 장성에서 한번씩 들르는 정비관련 인원들등 내가 장성을 가는 경우도 많았지만 그들도 우리 캠프에 방문하여 하루씩 자고 가고는 했다.
그들이 오면 웬만하면 다들 모여 싸데기를 같이 마시며 떠들썩하게 웃으며 시간을 보냈고 그들 덕분에 조금은 다른 하루를 보낼 수 있었다.
특히 의무부장이나 B과장이 인기가 좋았는데 그들이 풀어놓는 깊이를 알 수 없는 '어른들의 이야기'는 정말 기름지고 찰진데다가 입에 딱 달라붙는게 막 사회생활이라고 처음 발을 딛은 나는 젖은 스폰지처럼 그들에게 푹 빠지고 있었다.
이동네 '아부지'들은 사우디, 이라크, 쿠웨이트등 우리나라 중동건설의 역사와 함께 젊음을 보낸사람들이었는데다가 그 특유의 말빨과 뻥을 덧발라서 같은 경험담이라도 욕하면서 계속 보게되는 막장드라마처럼 흡입력이 좋았다.
늘 같은 레파토리가 지겨워질때면 이렇게 한번씩 방문하는 새로운 이야깃꾼들이 한번씩 주변을 환기시켜주는 아름다운 순환을 보여주었다.
그 와중에 몇몇 삼국인들과 친해졌는데, 개중에 기억나는 친구는 베트남 출신 보일러공 T였다.
그는 보일러, 발전기, 정수기등을 담당하는데 그가 보유한 기술이나 업무가 캠프내 중요한 일이었기에 급여도 다른 잡부들과는 비교될만큼 높았고 그의 워크샵은 한국 반장이 아닌데도 따로 방을 가지고 일을 보는 특별한 친구였다.
나보다 몇살 어린 젊은 친구이지만 이곳에서 일을 하며 남는 시간엔 영어책이나 다른 책을 놓고 공부를 하고 고국에서 못다한 학업을 귀국후에 이어가기 위해 나름 열심히 준비를 하는것을 보고 감동받아 가끔 그의 워크샵에 놀러가 같이 영어책을 펼쳐놓고 아는척을 해보기도 했고, 어쩌다 라면 몇개를 다른놈들 몰래 선물로 놓고 가기도 했다.
그 친구도 나에게 꽁꽁 숨겨놓은 베트남판 '썬데이서울'같은 잡지를 보여주며 아직은 우리나라 기준으로는 촌스럽지만 복스럽게 생긴 베트남언니들의 비키니를 서로 품평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