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살아진다
나라가 어떻게 망해가는지 아니면 숨은 쉬고 있는지는 이곳 사막에서는 절절하게 체감하는것은 불가능에 가까웠다.
대신 비디오로 들어오는 프로그램들은 점점 흉흉하고 무서운 내용들 뿐이었다.
누가 자살하고, 우리가 익히알고 있던 대기업이 망하고 많은 사람들이 빚더미에 올라타거나 알거지가 되어 길바닥으로 내쫓겼다는 소식들밖에 없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 그 여파가 우리가 있던 사막에서까지 영향을 주기 시작하는데 회사가 위험하다는 등의 흉흉한 소문에 한동안 캠프를 지키는 사람들이 일에 집중하기 어려울정도로 심난해 하는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전화국에서 가족들의 안부를 묻는 목소리에는 무거움이 타고 흘러들었고 나역시 이 어려움을 피해가는 행운을 누리지는 못했다.
그나마 다행이었던것은 여기서 어떻게든 돈을 벌고 있고 그 피같은 돈이 이 어려운 나라와 가정에 그나마 실핏줄을 흐르는 미세한 피와 같이 무언가를 연명하게끔은 하는것이었다.
몇몇 한국 반장들과 삼국인 최고등급 연봉을 받는 근로자간 임금역전현상도 잠시나마 생기기도 하였다.
내가 출국할때 어떻게 알고 나타났는지 모르는 암달러상 아저씨에게 환전한 환율은 700원대 중반이었던것으로 기억하는데, 어느새 우리나라 돈의 가치는 쓰레기로 향해있었고 외국인들이 받는 달러로 환산된 우리의 한화로된 급여가치는 상대적으로 하염없이 밑으로 처박히는 몸으로 느껴지는 소름끼치는 공포로 그제서야 다가왔다.
우리가 할 수 있던것은 그냥 하루하루를 그대로 살아가는것, 출국일이 다가온 사람들은 어떻게든 더 연장하려고 하는것뿐이었다.
그래도 시간들은 그렇게 지나가고 우리의 하루는 고국이 죽어나가든지 말든지 공사는 계속되었고 이 그지같은 사막에서 그나마 밥벌이라도 하고 있음을 다행으로 생각하고 감사한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보냈다.
우리가 벌어들인 그 가치가 떨어진 돈이라도 한국에서는 가족을 지탱하는 큰 힘이 되었으니 말이다.
나 역시 살면서 빈대같이 부모님께 폐만 끼치고 살았는데 어려운 가계에 도움이라도 될 수 있다는 생각에 내가 하는일에 좀 더 진지하게 임해야겠다는 다짐은 했었다. 물론 며칠지나 금방 그 전으로 돌아가 심심해하고 뭔가 재미있는것이 뭐 없나 생각하는것으로 하루를 보내는 시간으로 돌아갔긴 했지만 말이다.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로 가장으로서 아버지로서, 또는 아들로서 역할을 다 하는것밖에는 없었을 것이다. 침울해 한다고 우리가 뭔가를 바꿀 수 있는것도 아니었으니 그냥 하루하루 자신들의 일을 하고 또 저녁식사후 싸데기를 가지고 휴게소에서 모여앉아 비디오를 보고 또 자고 새벽에 일어나고를 반복하고 그렇게들 시간들을 지내보냈다.
그 즈음 김국환 아저씨가 포항제철에서 안전모를 쓰고 제철소 근로자들을 뒤에 세우고 '영일만 친구'를 힘차게 부르던 비디오가 들어온것이 기억난다.
만약 내가 한국에 있었으면 나는 어떻게 그 시절을 살았을까?
내가 이곳에 없었다면 우리집은 어떻게 되었을까? 우리 부모님은 어떤 어려움을 겪고 우리의 운명은 어떻게 바뀌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