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중하고 다정한 인사
며칠 전 대학 친구 결혼식을 갔다가 화들짝 놀랐다. 무려 유치원 때 친구를 만나게 된 것..! 부모님 통해 소식만 전해 들어왔는데 여기서 이렇게 마주치게 되다니. 정말 어릴 적 얼굴 그대로 자라서 심지어 마스크를 쓰고 있었는데도 단박에 알아봤다. 너무 반가워서 세상 난리를 쳤는데, 금방 이동해야 해서 "야 연락해 밥 한번 먹자!"라고 외치며 헤어졌다.
한국 사람들에게 '밥'은 정말 특별한 존재인 것 같다. 안부를 묻는 온갖 다정한 말에는 밥이 항상 들어가 있다. 밥 먹었어? 밥은 먹고 다니냐? 밥 잘 챙겨 먹어야지, 밥 사줄게 나와.. 내가 힘들 때 들으면 눈물이 울컥 나게도 만드는 마법 같은 존재, 밥. 다른 것보다 서로의 끼니를 챙긴다는 점에서 우리나라만이 가진 독특한 정이 느껴지기도 한다.
그래서 오랜만에 마주친 사람과 헤어질 때 "밥 한 번 먹자"라고 말하는 것이 하나의 관용어구처럼 되어버렸다. 내 경험상 이런 상황에서 밥 한 번 먹자고 하는 것은 보통 진짜 밥을 먹자는 게 아니다. 그냥 "그래 그럼.. 잘 지내!"라고 갑자기 말하기에 어색하거나 너무 차가워 보이니까 다정하게 작별 인사를 하는 표현의 일종일 뿐. 잘 지내, 안녕과 같은 말은 다시 보기 어려울 것 같은 뉘앙스를 주지만 '밥 한 번 먹자'는 '또 만나'처럼 향후 다시 만날 사이임을 은연중에 느끼게 하는 말이라 덜 차갑게 다가온달까.
소위 '밥 워딩'을 좋아하는 나로서는 밥 한 번 먹자는 말이 관용어구로 전락하게 된 세태가 한편으로는 아쉽고 속상하기도 하다. 나는 아직도 밥 먹자는 말에 약간의 애틋함을 담는 편이라, 다시 만나고 싶지 않은 사람(!)에게는 밥 워딩을 웬만하면 꺼내지 않는다. 내가 정말 다시 만나서 마주 보고 밥을 먹고 싶은 사람에게만 쓰는 편인데, 그러다 보니 상대가 나에게 밥 한 번 먹자고 말하는 것에도 약간의 기대감(김칫국)을 갖게 되고 만다. 그래서 진짜로 보고 싶은 사람이라면 아예 구체적으로 잡자고 나선다. 언제? 지금 바로 날 잡아. 안 잡으면 평생 못 먹어.
배민 선물하기 광고의 '밥 한 번 먹자 는 말 대신 너에게 밥을 보낸다'는 카피는 그런 의미에서 분명 나와 비슷한 사람이 떠올리지 않았을까 싶다. 서로의 밥 안부를 챙기는 것에 애틋함을 담는, 말로만 언제 한 번 밥 먹자고 하는 것에 아쉬움을 갖는. 남이 밥을 먹었는지 물어보고 참견까지 하는 것은 어찌 보면 굉장히 쓸데없는 오지랖이기도 하다. 하지만 상대가 속을 뜨뜻하게 채우고 있었으면 하는 마음, 그와 밥을 한 번 먹기 위해 시간을 일부러 빼고 마주하는 순간의 정성이 아직도 나에겐 소중해서.
오랜만에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과 좋아하는 광화문 국밥집에 가고 싶다.
*[배달의 민족 '배민 선물하기'] 밥 한 번 먹자 는 말 대신 너에게 밥을 보낸다
*한국에서 유독 쓰이고 있는 '밥 인사'
https://www.khan.co.kr/article/200702231804091
*다정한 밥 인사의 예시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