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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횡설술설 May 01. 2023

당장 움직이게 되는 법

내 인생 최고의 원동력

질렀다. 디제잉 파티 날짜를 박아버렸다. 이제는 꼼짝없이 디제잉 셋을 짜야한다. 몇 달간 해야지 해야지 말로만 해왔는데, 더 이상 미룰 수가 없게 됐다. 매번 15분, 30분짜리의 짧은 믹스셋만 짜다가 1시간짜리 셋을 짜려니 벌써부터 압박감과 부담감이 몰려 오지만 이제는 해내야 하는 상황이 된 것이다, 어떻게든.


실행력이 좋다는 말을 주위에서 꽤 듣는 편이다. 이런 얘기를 들을 때마다 당황스러워서 헛기침이 나오곤 하는데, 사실 내 타고난 천성은 워낙 게으르고 느긋해서 불이 발등이 아닌 콧등에 떨어진 극도의 벼락치기 상황이 되기 전까지는 좀처럼 움직이지 않기 때문.


이러한 성향을 일찍부터 알고 있었던 터라, 이 나무늘보의 콧등에 어떻게 불을 붙일지에 대해 이런저런 고민과 시도를 해왔고 그 중 단연 효과가 좋았던 것은 바로 '마감'. 도대체 이런 성향으로 학창 시절에 어떻게 공부를 했던 걸까, 생각해 보니 시험이라는 마감이 늘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 때는 마감이 있다는게 너무 싫어서 스스로가 자유로운 상태가 되면 더 열정적이고 자발적으로 살 줄 알았는데, 대학을 졸업하고 강제적인 마감이 모두 사라진 상태에서 지내본 나는 영 아니었다. 막상 자유로운 상황이 되자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오랜 시간 스스로를 방치한 끝에, 하는 수 없이 마감을 다시 찾게 됐다.


이미 숱한 사람들이 언급해 온 만큼 나 역시도 마감의 효과를 크게 보고 있다. 내가 지금 이 정도라도 사람 구실을 할 수 있게 된 건 단연코 마감의 힘이다. 방법은 간단하다. 해보고 싶다거나 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면, 지른다. 쉽게 발 빼지 못하는 약속을 해버리는 것이다. 글을 기고하기로 한다든지, 관련 자격증 시험을 신청해 둔다든지, 파티를 열기로 한다든지. 이렇게 스스로 기한을 정해버리고 나면, 정신을 차렸을 때는 이미 늦었다. 그냥 하는 수밖에.


스스로 하기로 한거면서 막상 마감일이 다가올수록 극심한 후회와 고통을 느낀다. 벼락치기주의자들이라면 한번씩은 겪어봤을 그 고통이다. 내가 대체 무슨 생각으로 이걸 한다고 했을까,부터 시작해서 별의별 생각이 다 들지만 어쨌거나 하게 되고 뭐라도 나온다. 이렇게 매번 어떻게든 결과물은 쌓이고 그러다 보면 자존감도 같이 쌓여 올라가는 것은 덤. 잠깐은 고통스러울 수 있을지언정, 자발적 마감을 잘 활용하면 최고의 원동력이자 장기적으로 건강해지는 방법이 될 수 있다는 것.


극단적 벼락치기주의자의 마감 예찬론이라니 다소 머쓱하긴 하지만, 말로만 몇달째 '해야하는데', '하고싶은데' 라는 게 있다면 일단 질러보시라. 매번 고통스러워하면서도 매번 자발적 마감을 만들게 되는 이유를 알 수 있을 것이다. 진짜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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