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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남영 Oct 14. 2020

내가 그 사람과 헤어진 이유

나는 사랑이었으나, 그건 사랑이 아니었다.


머리로 백 번을 아니라고 하면서도 가슴으로 그 사람을 만났다. 비참한 기분이 들 때마다 사랑받은 기억을 떠올리며 '아직은 괜찮은 이유'를 묶어두었다. 이성과 감정을 완전히 분리시키고, 분리된 감정을 '진짜 사랑'이라고 믿었다. 감정으로 돌돌 말아둔 사랑은 희망 없는 미래를 막연하게 그렸고, 타오르는 감정 하나만으로 불나방처럼 몸을 내던졌다. 사랑이라는 이름 뒤에 모순을 감추고, 무모함까지 사랑이라고 포장했다.


언제부터였을까. 모든 사랑 고백에 의심을 부여하던 그 시점이. 이기적인 사랑이 내게 상처가 되던 그 시점이. 이해를 해야만 유지되는 관계에 지치기 시작한 그 시점이 언제부터였는 지 기억이 나질 않았다.


"나보다 더 지킬 게 많은 사람은 싫어."

"한 번의 친절로 날 열 번씩 울게 하는 사람은 싫어."

"사랑이 상처가 되는 게 싫어. 상처가 싫어서 의심을 방패 삼는 게 싫어."

"사랑이 변명이 되는 게 싫어."

"무책임한 행동을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내가 싫어."

"명확한 기준을 세워두고도 그 사람에게만 관대한 내가 싫어."

"타인에게 감정을 휘두르도록 둔 유약한 내가 싫어."


사랑이 불행해지고, 불행한 사랑을 하는 내가 싫어졌다. 그 사람만큼이나 나는 나를 사랑하는데. 그 사람을 사랑해서 나는 나를 사랑하지 못했다. 이걸 깨달은 순간, 내가 놓아야 할 사람은 내가 아니라 그 사람이었다.


"헤어지자."


그 말을 하는 순간까지도 나는 그 사람 눈에서 절망을 읽고 싶었고, 간절함을 보고 싶었다. 눈물로 위안을 삼고 싶었고, 변명에 못 이기는 척 속아 넘어가고 싶었다. 그게 끝까지 우스워서, 두 눈을 감았다.


"그래."


나는 사랑이었으나, 그건 사랑이 아니었다.

그게 내가 그 사람과 헤어진 이유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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