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남영 Jun 25. 2020

끝내지 못한 사랑에서 멀어진다는 것

멀어져서 많이 아프구나.

그녀는 누군가와 멀어지고 있었다. 설렘이 편안함이 되고, 추억이 믿음이 되어가면서 굳건하리라 믿었던 사랑과 우정이 흔들리고 있었다. 그의 일상에서 차차 밀려나고, 그녀가 끼어들 시간의 틈이 점점 줄었다. 그녀가 처음 느낀 건 배반감이었다. 편안함에 소중함이 반감되고, 추억이 지루함으로 변질되리라곤 생각하지 않았으나, 그의 세계에서 그녀는 작아졌다. 


그녀가 할 수 있는 건 없었다. 소리 없이 사그라드는 불씨를 다시 피우는 방법도 알지 못했다. 노력하면 질릴까 두려웠고, 방치하면 그대로 떠날까 무서웠다. 그녀는 아무것도 못 하는 사람처럼 숨만 쉬었다. 자신을 천천히 지워냈다. 언젠부터인가 당연시되던 그 사람이 영영 떠나가는 상상을 하며 미련을 단단히 옭아맸다. 적어도 비참한 모습으로 기억되진 말아야지, 하면서 입술을 사리 물고, 혀를 깨물면서 마지막 자존심으로 서 있었다. 어떤 날은 의연하고, 어떤 날은 주저앉기도 하면서 시간을 버텨냈다. 참담한 시간을 모른 척 흘려보냈다. 


자신을 사랑해야지. 비루한 고민 앞에 누군가 그런 답을 내놓았다. 그녀는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 게 아니었다. 단지 그를 더 사랑했을 뿐이다. 놓으면 간단하다는 통쾌한 해결책 앞에서, 자신만이 그 해결책이 아플 거라는 걸 알았다. 허심탄회하게 얘길 해보라는 조언 앞에서, 자신만이 식어버린 대화가 쳇바퀴처럼 의미 없이 굴러갈 거라는 걸, 원하는 대답을 들을 수 없다는 걸 알고 있었다. 


멀어져서 많이 아프구나. 그녀는 자신에게 그렇게 말했다. 많이 힘들지. 사람들과 함께 있어도 대화가 귀에 잘 들어오지 않고, 시도 때도 없이 울컥 치미는 감정을 꾸역꾸역 삼키다가, 숨어서 눈물 흘리는 거 많이 버거웠지. 감정의 정점 높이가 다른 것도, 그 보폭이 달리 움직이는 것도 네 탓이 아니야. 그는 무수한 오해와 어긋난 순간들이 짙었을 뿐이고, 너는 웃으며 주고받던 장난이나 말하지 않아도 서로의 의식 속에 살아있던 순간들이 짙었을 뿐이야.

그래. 다 알지만, 그래도 많이 아프겠다. 다 알아서, 더 아프겠다.


그녀는 그녀를 사랑했다. 현명한 처사가 무엇인지 다른 누구보다 명확하게 알고 있었다. 고통 앞에 결정을 미뤄두고 있었을 뿐이었다. 그녀는 오늘의 결연함이 내일의 기다림이 되지 않길 바라면서 미어지는 선택을 했다. 차곡차곡 쌓아온 믿음이 완전히 허물어지고, 오늘보다 더 현명해지기를 간절히 바랐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