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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나무 Mar 10. 2020

포승줄

아빠 그렇게 보내서 미안해

새벽녘의 차가운 공기 사이 들리는 누군가의 울음소리. 그 울림의 파장은 잠을 깨울 만큼 컸다. 방문을 열고 나왔다. 이 새벽에 이모와 사촌언니를 우리집에서 볼 줄이야. 너무나도 낯선 모습. 그들의 모습이 익숙해질 때쯤 또다시 낯선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엄마였다. 우는 엄마. 가만히 울기만 하는 엄마. 그리고 그 옆에 없는 아빠. 아빠에게 무슨 일이 생겼구나. 아빠는?이라고 물었지만 그 대답은 아직 듣지 못했다. 물음은 허공으로 사라졌다.


아빠가 도망을 갔구나. 생각했다. 그랬길 바랬다. 아빠가 죽었을 거라곤 생각하지 못했다. 우리만 두고 죽기에 나는, 엄마는, 남동생은 너무 어렸으니까.


아빠는 떠났다. 영영 떠났다. 엄마랑 투닥거리며 장난을 치다 갑자기 쓰러졌다. 엄마는 죽은 척 장난을 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건 장난이 아니었다. 그 상황을 상상해볼 때마다 갑자기 떠난 아빠보다 갑자기 그 상황에 놓여진 엄마가 아프다.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무서워했을 엄마를 생각하면 마음이 저리다. 얼마나 두렵고 절절맸을까.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지나는 시간이 얼마나 괴로웠을까.


한참 시간이 지난 후 엄마랑 TV의 건강채널을 본 적이 있다. 인공호흡법에 대해 소개해주던 장면을 보고서 아빠가 쓰러졌을 때 엄마가 저렇게 했다면 아빠가 지금 있을지도 모르는데 라고 하던 엄마의 표정이 기억나질 않는다. 엄마의 마음의 숙제였다. 엄마 탓이 아니야 라고 말해줬어야 하는데. 이건 내 마음의 숙제.


아빠에 대한 기억은 16년의 시간이 계속해서 지워나갔다. 하지만 아빠를 생각하면 생각나는 것들이 있다. 후회였다. 왜 떠난 사람은 좋았던 기억보다 못해준 기억만 남기는지. 아직도 나를 옭아매는 기억이 있다. 아빠가 떠나기 직전쯤, 아빠의 손을 잡고 가다 같은 반 남자아이들을 만났다. 혹여 그 아이들이 애 같다고 놀릴까 싶어 아빠의 손을 놓았었다. 나는 애였고 아빠의 손을 잡아도 이상하지 않았는데. 그 손을 이렇게 오랫동안 못 잡을 줄 누가 알았겠어. 아빠에 대한 나의 마지막 기억이다. 아빠의 마지막 기억은 그것이 아니기만을 바라고 있다.


왜 아빠 손을 놓았어. 조금만 더 자세히 아빠 손을 보지 그랬어. 아빠 손이 어떻게 생겼는지, 피부는 어떤지, 손톱은 어떤지 자세히 보지 그랬어. 아빠, 내가 아빠 손을 놓았을 때 어땠어? 내가 밉진 않아? 차라리 날 미워해주면 좋겠어. 난 아빠의 남겨진 손이 아직도 아파. 이제 와서 내가 할 수 있는 건 아빠한테 물어보는 거뿐인데 아빠는 대답을 주지 않아. 그래서 나는 지금도 그때를 생각하며 나를 원망하고 살아. 아빠 미안해. 나는 사실 아빠를 너무 사랑하는데 아빠가 그렇게 갑자기 떠날 줄 몰랐어. 하루라도 그때로 돌아간다면 절대로 아빠 손을 놓지 않을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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