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모리 Nov 16. 2023

배는 부른데 속이 허하다

사소한 순간이지만 기억 한편에 남아, 떠올릴 때마다 마음이 아린 장면이 몇몇 있다.     


혼자 살던 스물다섯 즈음 어느 날. 나는 집 앞 파리바게뜨에서 식빵 한 봉지를 사서 들고, 두 조각 째 우걱우걱 뜯어먹으며 횡단보도를 건너고 있었다.     


횡단보도 중간에서 회사 선배를 마주쳤다. 나는 과장해서 웃으며 인사했고, 태연한 척 식빵을 크게 뜯어 입에 넣었다. 도넛이나 마카롱 같은 거라면 맛있는 것 사 먹나 보다 싶었을 텐데 하필 나는 식빵 덩어리를 입에 밀어 넣는 중이었다. 민망하고 창피했다.     


당시 나는 "마음에 구멍이 숭숭 나서 찬바람이 들어오는 기분을 아느냐"라고 사람들에게 자주 물었고, 마음이 허전하다고 매일 일기에 썼다. 그 시절 나는 외롭다 못해 마음이 시린 날들을 보내는 중이었다. 혼자 보내는 저녁마다 밥맛은 없고, 빵이나 대충 먹어서 끼니를 때우기가 일쑤였다. 정처 없이 동네를 걸으며 식빵을 먹던 것도 어떻게든 저녁을 때워야 했기 때문이고, 혼자 보내야 하는 길고 긴 밤을 덜 지루하게 보내기 위함이었다. 밥맛이 없듯 빵에도 식욕이 딱히 없어서 가장 저렴하고 양 많은 것으로 고른 게 식빵이었다.     


고픈 배를 채우기 위해 빵을 먹지만 내가 빵을 입에 하염없이 밀어 넣으면서 기대하는 것은 배의 포만감이 아니었다. 나는 밑 빠진 독이었던 내 마음에 빵을 밀어 넣는 중이었다. 하지만 아무리 많은 빵조각으로도 속이 채워지지 않았다. 빵을 뜯어먹으면 먹을수록 속은 더 허했다.     


난 분명 빵을 좋아하는데 이상했다. 빵은 혼자 먹을 때와 누구와 같이 먹을 때가 달랐다. 같이 먹는 이가 있으면 한두 입만 먹어도 좋았던 것이, 혼자서 먹으면 아무리 대단하다는 빵이라 해도 대단한 맛이 느껴지지 않았다. 비싼 빵을 혼자 차지해도 신나지가 않고 어딘가 김이 빠졌다.     


혼자 빵으로 헛배만 불리는 날들이 반복됐다. 결국 빵은, 내가 좋아하지만 먹으면 더 불행해지는 대상이 됐다.     

빵 사 먹는 저녁은, 사 년 만에 본가로 다시 들어오면서 자연스럽게 끝이 났다. 더 이상 나는 빵으로 배를 채우지 않아도 되었다. 아침에는 엄마가 저녁에는 아빠가 세상 따뜻한 집밥을 차려주셨다.     


그 후로 나는 한동안 빵을 멀리했다. 그때 자주 가던 사거리 빵집이 생각났고, 빵을 허겁지겁 먹어치우던 내가 보였고, 적막한 방에서 마음을 부여잡고 울던 밤이 떠올랐기 때문에.     


지금도 빵을 먹고 싶을 때는 가만히 내 마음을 들여다본다. 미각의 즐거움이 필요한지, 지친 마음을 채울 거리가 필요한지 곰곰이 생각한다. 미각을 위해서라면 며칠 뒤 약속에서 무엇을 먹자, 계획한다. 마음이 허할 때는 글을 쓰거나 운동을 하거나, 책을 읽거나, 대화를 하거나, 정 안 되면 잠을 잔다.     


원래 마음은 빵으로 채우는 것이 아니다.

작가의 이전글 종로에서 뺨 맞아도 한강에는 안 가려고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