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전하게, 그라운딩

공허함을 땅으로 뿌리내리다

by 이모리

나는 기억한다. 가슴에 찬바람이 숭숭 들어 시린 기분을 아느냐 묻고 다니던 스물셋의 나를. 가까운 회사 동료나 친구들에게 물어도 그 마음 안다고 답한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망망대해에 둥둥 떠다니는 섬 같은 기분을 모른다니. 시린 가슴 한 번 안 품어 본 사람들은 깊이가 ,얕은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반대로 말하면, 나는 보이지 않는 깊이를 가진 어딘가 특별한 사람이라는 거다. 공허함을 모른다는 답을 더 많은 사람에게서 들을수록, 공감받을 데 없다는 좌절이 쌓이면서도 한편으로 나는 특별하다는 정체성이 더 공고해졌다.


다행히 나는 사회적으로 적당히 명랑했다. 중학생 때는 별명이 ‘암울이’였다. 하도 암울하다고 외쳐서 친구들이 지어준 별명이다. 암울하다는 말을 너무 어둡지 않게 내보였기에 친구들에게 [아무링♥]이라는 편지도 받았으리라. 성인이 되어서도 바깥에서는 나의 공허함을 꽤 유쾌하게 꺼내보였고, 공감은 못 받았지만 키득키득 그것으로 웃긴 대화가 이어지곤 했다. 나도 공허함을 가진 나의 정체성이 은근히 좋았기에 웃음으로 승화가 됐다.


남들 앞에선 웃을 수 있었지만 집에만 돌아오면 결코 명랑하지 못했다. 혼자 있으면 ‘어쩔 줄을 몰라서’ 무언가에 정신을 매어놓아야 마음이 편했다. 책이나 드라마를 쉼 없이 보고, 스피닝 수업을 가서 온몸을 땀에 적셔 오고, 카페에 앉아 백색소음에 묻혔다. 약속도 없는 번화가 거리라도 돌아다녀야 했다. 집에 들어가면 감당 못 할 만큼 마음이 아파지니까.


밤에는 어쩔 수 없이 적막한 집에 들어왔다. 혼자 사는 네모 칸 집에서 자려고 누우면, 영락없이 가슴에 찬바람이 들었다. 너무 아파서 이불 위에서 가슴을 부여잡고 데굴데굴 굴렀다. 그럴 때는 잠도 쉬이 들지 않는다.

세상에 한 존재로 살아있는 게 견딜 수 없어질 때쯤 연인을 만났다. 나는 그에게 첫눈에 반했고, 나 자신보다도 그를 더 좋아했다. 그로부터 걸려오는 아침 전화벨이 울리기 전까지 일부러 이불속에 파묻혀 있었다. 그가 퇴근 전화를 걸면 끊기가 너무 아쉬워서 문화센터 수업에도 매번 늦게 들어갔다. 그를 만나러 주중에도 두 시간을 걸려 평택에서 마포까지 갔다. 주말에 그와 데이트를 마치고, 지하철 카드를 찍고 들어가는 순간에는 금세 다시 공허해졌다.


그가 없이는 일어나지도 못하고, 그의 목소리에, 그의 온기에만 온 신경이 가 있었다. 내 삶을 움직이는 주체에 ‘나’는 없고 ‘그’만 있었다. 나는 자신감 넘치는 그 사람의 힘에 기생해서 살아있는 것 같았다. 나는 그가 없으면 아무것도 못하고 아무것도 아닌 존재가 되어갔다. 그에게 물심양면으로 의존하면서도, 그의 케어를 받으면서도 내가 없어지는 것 같았다. 어느 날, 자생력을 잃은 나를 견딜 수 없어서, 결국엔 그에게 헤어지자고 했다.


이전보다 더 견디기 힘들었다. 잠깐이라도 주말과 아침저녁 출퇴근 때라도 나를 공허함에서 건져 올리던 그가 없으니 매달릴 곳이 없었다. 둥둥 떠다니는 섬으로 불안하고 붕 뜬 마음을 견딜 수가 없었다.


그 시기 요가를 시작했다. 작고 어두운 요가원에서 창밖의 밤하늘을 바라보며, 땀수건으로 멈추지 않는 눈물을 막아가며 매일 저녁을 보냈다. 숨이 턱 막혀 죽을 것 같은 목구멍 사이로, 조금씩 숨이 들어왔다. 붕 뜨는 정도를 넘어 너무 많이 흩날려서 주체 안 되던 마음이, 조금씩 가라앉았다.


요가에서 첫 단추는 손가락을 넓게 펼쳐서 바닥에 잘 딛는 연습이다. 발바닥도 넓은 면적이 땅에 닿도록, 단단히 바닥을 눌러낸다. 그리고 숨을 쉰다. ‘그라운딩’, 내 삶에 뿌리내리는 연습을 시작했다. 서른이 되어서야, 돌이킬 수 없는 인연을 끊어내고서야.


손발바닥을 땅에 잘 딛고 계속 밀어내는 힘을 쓰면서, 숨을 쉰다. 하나, 둘, 셋, 넷, 다섯. 호흡하며 한 자세로 머무는 동안, 코끝으로 들어온 들숨이 손발 끝까지 퍼져 묵직한 에너지를 준다.


그라운딩은 몸을 넘어 마음에도 묵직한 무게를 준다. 붕 뜬 마음을 잠재우고 흩날리는 생각을 명료하게 한다. 몸으로, 숨으로 땅에 뿌리내리며, 마음의 뿌리도 삶에 조금씩 뻗어나갔다. 먼저 오랜 시간 뭔지 모르게 붕 떠 있던 마음부터 마주했다. 외로움, 부모에 대한 미움과 애착, 세상에 대한 원망, 자유롭고 싶은 마음, 스스로 서고 싶은 간절함까지.


한 자세로 머무르는 연습을 하면서 한 가지 생각에도 잘 머무르는 힘이 생겼다. 불편한 생각을 마주하고, 흐릿한 마음을 또렷해질 때까지 들여다보았다. 괴로운 감정을 하나씩 만나면서 터뜨릴 것을 터뜨리고, 버릴 것을 버리고, 해결할 것을 해결했다.


마음을 충분히 어루만지며 드디어 내가 바라던, 자생력이 조금씩 생기는 걸 느꼈다. 내 뿌리가 조금씩 자라고 가지를 뻗어가면서, 누가 나를 세워주지 않아도 점점 스스로 서고 있다는 게 직감으로 와닿았다.


본의 아니게 요가에 발을 들인 후로, ‘표류하는 섬’이라는 정체성이 조금씩 흐려졌다. 이제는 십여 년 전 내가 ‘깊이가 없는 사람들’이라고 무시했던, 그 심플한 사람처럼 보이기도 한다. 여전히 속은 복잡하고 때때로 마음이 허전해도 삶 자체가 공허하진 않다.


그때처럼 매일 수련을 하진 않지만, 단단한 발바닥과 단정한 호흡으로 일상을 산다. 지금 있는 곳에서 견디기 힘들 때, 사람들 사이를 벗어나고 싶을 때, 가만히 숨을 고른다. 양말 속 발가락을 활짝 벌려서 땅을 넓게 움켜쥔다. 그라운딩, 그라운딩.


돌아보면 그렇게나 좋아했고 참 멋있었던 연인을 내찰 만큼, 나의 ‘자아’를 찾고자 했던 스무여 살 나는 이미 강한 사람이었다. 정말로 나약했다면 그에게 의존하는 달콤함에 굳이 균열을 내지 않았을 테니. 결국에 무너진 나를 스스로 세워냈기에, 그와 헤어진 일도 나의 성장스토리 속 아련한 에피소드 하나로 잘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