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카카오임팩트 Sep 04. 2022

옷을 사는 것보다 바꿔 입는 것이 즐거운 일상

정주연 펠로우ㅣ다시입다연구소 대표

더 나은 세상을 위한 혁신가 레이블, 카카오임팩트 펠로우십과 함께하는 사회 혁신가를 소개합니다. 모두의 당연한 일상을 위해 변화를 만드는 사람들, 이들이 앞당기고 있는 내일의 당연한 일상에 대한 이야기를 만나보세요. 


정주연 대표가 이끄는 ‘다시입다연구소’는 소비지향적인 의생활에 물음표를 던집니다. 오래 입고 바꿔 입는 일이 고루하지 않고 힙한 문화가 되는 날을 꿈 꾸며, 파티와 콘텐츠를 통해 ‘즐거운’ 의류 교환 문화를 만들어갑니다. ‘지속가능한 의생활’을 고민하는 정주연 펠로우의 이야기를 들어보세요.



할머니한테 엄마한테 물려받은 옷이 더 힙한, 
해진 부분을 고쳐 입을수록 
더 예뻐 보이는 세상을 만들고 싶어요.


Q. 자기소개를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다시입다연구소’ 대표 정주연입니다. 

늘 옷에 대한 이야기를 하지만, 제가 하는 일은 패션 사업이 아닌 환경운동입니다. 소비 자본주의 사회의 많은 문제 중 가장 상징적인 것이 패션이라고 생각해요. 시장주의 사회에서 비시장 자본주의적인 접근으로 이 문제를 해결해보자, 내가 안 입는 옷이 재화가 되는 시장을 만들어보자는 생각으로 의류 교환 사업을 하고 있습니다.


Ⓒ 정주연


Q. ‘다시입다연구소’를 만들게 된 계기는 무엇이었나요?


'숍스캄(Köpskam)'이라는 말을 들어보셨나요? 스웨덴어로 '소비의 창피함(buying shame)'입니다. 일상의 전반적인 소비가 환경에 좋지 않음을 시사하는 말이지만, 특히 '의류 소비'를 비판할 때 많이 사용돼요. 한 외신에서 유럽의 젊은이들이 거리에 나와 “환경을 위해 옷을 사지 말자”라고 외치는 모습을 보며 충격을 받았습니다.


처음엔 옷을 사는 행동이 왜 환경에 나쁜지 몰랐어요. 찾아보니 환경을 가장 많이 오염시키는 산업 2위가 패션산업이래요. 전체 산업계가 사용하는 물의 20%를 의류 산업에서 쓰고 있어요. 청바지 한 벌을 만드는 데 7,500L의 물이 듭니다. 의류 산업에서 발생하는 온실가스 양은 전 세계 산업 가스 배출량의 8~10%를 차지한대요. 옷을 만드는 데에도 어마어마한 자원과 에너지가 사용되는데, 사람들은 점점 더 쉽게 사고 쉽게 버리잖아요. 의류의 약 63%가 합성섬유로 만들어지고 있어서, 버려진 옷들은 수백 년 동안 썩지도 않습니다.


이 숫자들을 차근차근 접하면서, 지금까지 소비를 미덕으로 삼고 살아온 제 자신 그리고 우리 세대가 부끄러워졌어요. 이 문제적인 현실과 우리가 환경을 위해 할 수 있는 실천을 세상에 알리는 일이 시급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재활용(recycle), 새활용(upcycle)하는 것보다
애초에 버리지 않는 것이 제일 중요해요.
그러려면 재사용(re-use)을 해야 합니다.


Q. 왜 ‘교환’이라는 방식을 선택하셨나요?


‘의생활’ 영역에서 환경을 이야기하는 기업이나 단체는 아직 뚜렷이 존재하고 있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섬유 폐기물을 업사이클링이나 리사이클링으로 재상품화하는 방법이 주로 논의되는데, 멀쩡한 옷을 버리지 않고 계속 입어서 의류 쓰레기를 덜 만드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저희가 생각한 건 ‘순환’이었어요. 상태는 멀쩡하지만 더는 손이 가지 않는 내 옷이 재화가 되고, 그 재화로 새로운 옷을 얻을 수 있는 대안적 의류 소비의 형태였죠. 모두가 공급자인 동시에 수요자가 되는 거예요. 자료를 수집해봤더니, 외국에서는 옷을 교환하는 이벤트들이 곳곳에서 이뤄지더라고요. 친구들끼리 모여서도 소규모로도 하고 대규모 행사도 많고요. 이런 문화가 우리나라도 있었으면 좋겠다 싶어서, 교환의 형태로 의류를 순환시켜서 재사용을 이끌어내는 방식을 생각해냈습니다.


Ⓒ 정주연


Q. 이미 존재하던 중고 의류 플랫폼과 ‘다시입다연구소’의 활동은 어떤 차별점이 있을까요?


기존의 중고 의류 플랫폼은 ‘판매’의 창구입니다. 파는 사람과 사는 사람이 나뉘어 있어요. 판매에 성공하는 옷들은 대부분 고급 브랜드이거나 외국에서 건너온 옷들입니다. 그런 옷들에만 높은 가치가 매겨지죠. ‘아름다운 가게’ 등의 비영리 단체에서 판매하는 중고 의류 또한, 옷을 공급하는 기부자와 그곳에서 옷을 사서 입는 수요자가 다른 경우가 많습니다.


저희는 1:1 교환이 원칙이에요. 교환하려고 내놓은 옷의 수만큼 교환권을 얻고, 다른 사람이 내놓은 옷으로 교환합니다. 재화로 나온 옷의 ‘구매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시장에서 산 저렴한 옷이어도 고급 브랜드의 옷과 교환될 수도 있어요. 디자인이나 사이즈, 용도가 나에게 맞으면 지금 나에게 필요한 옷인 거예요. 시장주의적 가치를 따지지 않고 순수한 필요에 의해 서로 1:1 교환을 할 수 있다는 점이 차별점일 것 같아요.


Q. 의류 교환의 장을 '파티'의 형태로 기획한 이유도 궁금합니다.


‘21% 파티’라는 이름으로 의류 교환행사를 열고 있어요. 옷장 안에 잠자고 있는 옷이 얼마나 되는지 설문조사를 했더니 21이라는 숫자가 나오더라고요. 옷장 속 5벌 중 1벌은 방치되고 있으니, 그 옷을 들고 우리에게 오라는 의미로 이름을 지었어요. ‘파티’를 생각한 이유는 재미 때문이에요. 환경을 생각해서 어떤 일을 해보자는 제안이 때론 무겁게 다가가기도 하는 것 같아요. 거부감 없이 실천 욕구를 일으키는 방법은 재미라고 생각했어요. 재미도 있고 의미도 있으면 더 많은 사람들이 편하게 찾을 것 같았습니다.


‘21% 파티’가 새로운 옷을 구하는 대안적인 방법일 뿐 아니라, 그 자체로 즐거운 시간이 될 수 있도록 다양한 아이디어를 내고 있어요. 교환하기 위해 내놓은 옷들에는 모두 짤막한 히스토리를 적은 종이표를 달아둡니다. 옷이 10벌이 있으면 10개의 사연이 있어요. 원 주인이 이 옷을 어디에서 샀는지, 언제 입었던 옷인지, 왜 교환을 하게 됐는지 등을 읽어보고 교환을 결정할 수 있죠. 이 과정에서 물건의 소중함을 느낄 수 있었다는 사람들이 많아요.

파티장 한쪽에는 재봉틀을 놓고, 참가자가 직접 옷을 고쳐보는 수선 체험도 진행해요. 평생 재봉틀을 만져보지 못한 사람들이 대부분인데, 사실 별로 어렵지 않거든요. 물건을 쓰다가 나에게 맞지 않거나 흠집이 나면 버리지 않고 고쳐 쓸 수 있다는 메시지를 전달하고 싶었어요.


이처럼 ‘21% 파티’는 옷의 의미를 나누는 행사입니다. 2020년에 시작해 지금까지 17회 진행했어요. 코로나19가 한창 확산될 때는 SNS에 행사 일정을 고지하고 참가 예약을 받아 진행했습니다. 1,200여 명이 다녀갔고, 이들이 가져온 3,200여 점의 옷들 중 2,000여 점이 새 주인을 찾아갔습니다.


Ⓒ 정주연


Q. 의외로 젊은 세대가 중고 의류를 거부감 없이 받아들이는 것 같아요!


맞습니다. ‘21% 파티’를 찾는 분들의 99%가 2030 젊은 세대들이에요. 가치 소비를 중시하는 MZ세대, 그중에서도 여성분들이 주로 찾아요. 요즘에 빈티지가 또 유행이잖아요. 그래서 빈티지 의류 소비 경험이 있는 젊은 분들도 많이 오고요.


‘중고 의류’ 보다는 ‘환경’ 키워드 때문에 오시는 분들도 많습니다. 그분들은 환경과 패션에 이런 상관관계가 있는지 몰랐다면서 “이제부터는 옷을 사지 않겠다”는 말씀도 하세요. “죄책감 없이 친환경적으로 쇼핑이 가능해서 좋다”면서, ‘21% 파티’를 통해서만 패션 욕구를 챙기겠다는 분들도 있고요. 


요즘 2030 세대는 유럽의 젊은이들 못지않게 실천에 매우 적극적이고, ‘21% 파티’ 같은 환경 이벤트에 열광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한번 와 본 분들이 친구나 가족 분들이랑 다음 파티에 또 오시는 모습들을 보면 정말 보람을 느끼죠. 젊은 세대가 주축이 되어 지구 환경을 보호할 수 있다는 것이 고무적이고 희망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지금 제가 하는 일은
사명감보다 나다움의 일환이에요. 
나다운 행동이 결국 환경을 위한다는 점이
이 일을 꾸준하게 해 나가는 동력이 됩니다.


Q. 활동을 하며 어려운 점은 없나요?


‘다시입다연구소’는 이제 3년 차에 접어든 스타트업 기업입니다. 팀원이 3명뿐인 아직 너무 작은 조직이에요. 우리 개인의 노력으로 패션 산업의 문제점, 환경 문제점을 어디까지 개선해나갈 수 있을까 의구심은 들어요. 궁극적으로는 패션 기업 차원의 변화가 이루어져야 하는데, 오히려 이 기업들이 ‘다시입다연구소’를 악용하려고 들기도 하더라고요. 다시입다연구소의 환경 캠페인 이미지를 얻어 브랜드 마케팅에 이용하고자 하는 방식으로요. 일종의 그린워싱이죠.


여전히 유행을 만들고 쉴 틈 없이 옷을 찍어내는 패스트패션이 존재하고, 지구가 어떻게 되든 기업의 이윤을 극대화하는 흐름에 소비자들이 동원되고 있어요. 지금 유럽에서는 문제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법제화를 하려는 노력들이 있어요. 패션 기업들이 일단 많이 만들어 놓고 재고를 소각시키고 매립하곤 하는데, 유럽에서는 이를 금지하는 법이 통과돼서 내년부터 적용된다고 해요. 우리나라도 뭐든 빠르잖아요. 알면 바꿀 수 있어요. 우리가 사람들의 인식을 바꾸고 문화를 만드는 동안, 더 큰 차원의 변화들이 어서 생겨났으면 좋겠어요.


Ⓒ 정주연


Q. 정주연 님이 꿈꾸는 일상은 어떤 모습인가요?


마을마다 공유 옷장이 있는 거예요. 자기가 안 입는 옷을 가져가서 걸어놓고, 입고 싶은 옷은 찾아서 가져오는. 옷이 진열된 공간 옆에는 재봉틀이랑 바느질 도구가 있어서 내가 수시로 수선도 할 수가 있어요. 내 사이즈에 맞게 줄이거나, 형형색색 실로 예쁘게 커스터마이징을 할 수도 있는 거예요. 그 동네의 의류 수선 전문가나 핸드페인팅 예술가들이 이 공유 옷장에서 워크숍을 열기도 하고요.


이런 열린 옷장이 마을마다 있으면 내가 안 입는 옷을 큰 수고를 들이지 않고 필요한 사람에게 넘겨줄 수 있겠죠. 옷을 끝까지 입는 방법을 함께 연구하는 그런 공간들이 지역 곳곳에 마련되는 것이 제가 궁극적으로 이루고 싶은 일상입니다.



인터뷰 및 본문 정리 : 백수진
일러스트 : 애슝 (@ae_shoong)



정주연 님과 함께하는 카카오임팩트 펠로우십이 궁금하다면?


이전 11화 사진을 통해 스스로 치유하고 행복을 나누는 일상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