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경화 펠로우ㅣ발달장애청년허브 사부작 대표
더 나은 세상을 위한 혁신가 레이블, 카카오임팩트 펠로우십과 함께하는 사회 혁신가를 소개합니다. 모두의 당연한 일상을 위해 변화를 만드는 사람들, 이들이 앞당기고 있는 내일의 당연한 일상에 대한 이야기를 만나보세요.
최경화 펠로우는 발달장애 청년을 마을과 연결하는 '발달장애청년허브 사부작'의 대표입니다. 발달장애 청년들이 자유롭게 거리를 활보하며, 가족·친구가 있는 지역 안에서 자기 일상을 온전히 꾸려나가길 바랍니다. 장애와 비장애의 통합을 통해 경계를 지워나가는 최경화 펠로우의 이야기에 귀 기울여주세요.
마을에서, 경계 없이, 다정하게.
저는 모든 사람이 그렇게 살았으면 좋겠어요.
Q. 자기소개를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발달장애청년허브 사부작 사회적 협동조합'의 대표 최경화입니다.
Q. 활동의 계기가 된 경험을 나눠주실 수 있을까요?
둘째 아들이 발달장애가 있어요. 저는 이 아이를 지역에서 분리된 특수학교보다는 집 앞에 있는 있는 학교에 보내고 싶었어요. 막상 보내고 나니 학교 안에서 적응은 어려웠고, 대부분의 통합은 학교가 끝나고 이루어졌던 것 같아요. 방과 후, 아이의 같은 반 비장애인 친구 세 명과 지속적으로 놀이시간을 가졌거든요.
아이가 초등학교 5학년 때였어요. 저녁 식사 시간이 지나도 찾으러 오는 이가 없는, 맞벌이 또는 한부모 가정 아이들을 학교 운동장에서 만났어요. 이 아이들이 심심하니까, 저와 아들이 노는 모습에 흥미를 보이고 다가오더라고요. 1년 동안 일주일에 두세 번, 저녁마다 같이 놀았습니다. 고무줄놀이, 오징어 게임 등 제가 어릴 때 했던 놀이를 가르쳐주곤 했어요. 비가 오면 진흙탕에 발 벗고 들어가서 놀고, 정글짐에 올라가서 별도 보고요.
우리가 보내는 시간이 저녁에 여는 학교 같다면서, 한 아이가 ‘별학교’라고 이름 붙여주었어요. 그 친구들은 꽤 오랫동안, 우리 아이와 같은 공간에서 시간을 보내며 서로 익숙해지는 시간을 보낸 거예요. 그리고 이름을 따로 붙이고 싶을 정도로 그 시간이 즐거웠던 거고요. 장애와 비장애의 통합을 일찍이 경험한 셈이죠. ‘삶은 서로 돌보며 사는 거구나’ 깨달았던 소중한 경험이에요.
이런 아름다운 경험이 삶의 매 단계마다 기다리진 않아요. 오히려 새로운 어려움이 나타나죠. 초등학교에서 중학교, 고등학교, 그리고 사회에 나오기까지 발달장애인은 인생의 매 단계마다 필요한 환경이 달라져요. 매번 고민하고 시행착오 끝에 방법을 찾아왔어요. 그 모든 과정을 통해서 ‘사부작’ 같은 지금의 활동까지 이어진 것 같습니다.
Q. ‘장애와 비장애의 통합’을 중시하시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지금 사회는 철저히 비장애인 중심의 사회이기 때문에 사람들은 간혹 잘못 생각하기도 해요. 비장애인이 살아가는 기존의 사회에 장애인을 통합한다고 생각하시는 분들도 많거든요. 그런데 통합, 돌봄이라는 것은 일방적이지 않은 거예요. 돌봄은 상호 작용처럼 서로 관계 속에서 이뤄지고 이것은 장애, 비장애에 관계없이 일어나는 일이거든요.
그래서 저희는 그 통합을 ‘장애 통합’이라고 얘기하지 않고 ‘장애 비장애 통합’ 이렇게 얘기를 해요. 당연히 같이 살아야 하는 일임에도 불구하고 이 환경과 사회는 철저히 비장애인 중심에서 사고하기 때문에 장애인이 이 안에서 살기가 너무 어려운 것 같아요. 그것을 바로잡아 나가는 그런 활동이라고 생각해요. 발달장애인이 지역에서 이웃들과 관계를 맺으며 살게 하고 싶어요.
발달장애 청년들이 마을의 골목 여기저기를 활보하는 것은
차별의 환경을 바꾸는 운동이자
‘자, 당신들은 우리와 같이 살 준비가 되었나요?’라고
마을 주민들에게 던지는 질문입니다.
Q. ‘사부작’에서 해결하려고 하는 문제를 정의한다면요?
길에서 발달장애인을 만난 적이 있으신가요? 특히 ‘어른인 발달장애인’을 만난 적이 있는지 떠올려보면 아마 대부분 없으실 거예요. 그 이유는 발달장애인이 정말 없어서가 아니라, 숨어있기 때문입니다. 학교를 졸업한 성인 발달장애인들은 대부분은 시설에 가 있어요. 직업 활동이나 커뮤니티 활동을 할 수 없어서 사회적으로 고립되거나, 지원 프로그램 이용자로서 수동적인 삶을 살게 됩니다. 발달장애인에게 ‘일주일 동안 가족 외에 사람을 만난 적이 있느냐’고 물으면 과반수 이상이 ‘아무도 만난 적 없다’고 대답하거든요. 자유롭게 밖을 돌아다니지 못하기 때문이에요.
‘발달장애인에게 시설이 안전하다’는 것은 보호받기 때문이죠. 이건 사실 비장애인도 똑같아요. 많은 사람을 한 곳에 넣고 보호하고 관리하고 통제하면 제일 안전할 거예요. 하지만 그건 인간의 권리를 침해하는 거잖아요. 사람은 물론 보호도 받아야 하지만 자유롭게 내 일상을 기획하고 누릴 수 있어야 해요. 그것이 우리 모두의 권리라는 데에는 이견이 없죠. 장애인도 마찬가지예요. 당연히 지역에서 같이 살아야 합니다. 발달장애인이 가진 어려움이 있으니 그들을 위해 지역의 지원이 필요할 수 있죠. 그런 지원 때문에 장애인을 배제할 게 아니라, 필요한 지원을 함께 만들어 가는 것이 우리의 숙제라고 생각해요.
발달장애인이 지역을 활보하게 만들고 싶어요. 마을에서 소외되지 않고 자기 일상을 기획하며 살 권리를 찾아주고 싶습니다. 일거리, 사람과의 관계, 공간을 연결해주는 플랫폼이 지역별로 필요하다는 생각으로 ‘사부작’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발달장애인의 해방은 우리 모두의 해방이기도 해요.
모든 것은 연결되어 있다는 걸 이야기하고 싶어요.
더 많은 사람들이 같이 해방감을 느낄 수 있으면 좋겠어요.
Q. 사부작이 구체적으로 어떤 활동을 하는지 궁금해요. 만들어낸 변화가 있다면 듣고 싶습니다.
‘사부작’은 지역의 발달장애인을 지역과 연결하는 플랫폼이에요. 고립되거나 단절된 채로 살아가는 발달장애인의 마을살이를 지원하는 역할을 합니다. 일단, 지역의 관계망을 넓히는 활동이 있어요. 발달장애인이 이웃과 일상을 함께 할 수 있게 자리를 마련합니다. 지역주민과 발달장애인을 연결해서 춤, 요리, 그림 등 동아리를 만들고 전시나 공연을 함께 보러 다녀요.
가장 반응이 좋은 활동은 ‘축하사절단’이에요. 마포에는 돌봄 관련 단체들의 네트워크가 있는데요. 각 단체의 기념일에 발달장애청년이 케이크와 카드를 들고 방문하여 축하를 전합니다. 이때 청년들은 네트워크로부터 활동비를 지급받지요. 작년 말에 그해 평가를 하는데, 우리 네트워크가 한 일 중 가장 획기적이고 좋았던 일로 모두가 이 축하사절단을 골랐어요. 그래서 올해는 원래 2만 원이었던 활동비를 100% 올려서 4만 원으로 지급하게 되었죠.
주민모임인 '화목일 프로젝트'와 협력하여 지역의 가게를 돌며 종이팩을 수거하는 활동도 함께 하고요. 2019년부터는 ‘옹호가게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어요. 발달장애인이 편히 이용할 수 있는 가게를 늘려가는 것이지요. 기존 유사 프로젝트가 지역의 가게를 돌며 ‘옹호가게가 되어달라’고 한다면 사부작은 전혀 다른 관점으로 접근합니다. 먼저 발달장애인이 오랜 시간 가게를 이용하며 소통의 방식을 터득한 가게 주인장을 발굴하고, 그 내용을 널리 홍보해가는 것이지요. 옹호가게의 주인장은 발달장애인의 이웃이자 길동무로 관계가 발전해나갈 수도 있겠죠.
사부작이 생기고 나서부터는 시민단체들이 어떤 활동을 기획하고 행사를 준비할 때 사부작에 연락을 해오세요.
“사부작에 오는 발달장애 청년들이 이 행사에 참여하려면 우리가 무엇을 준비하면 될까요?”
너무도 당연히, 서로 간에 있어야 했던 질문인데 이제야 듣게 된 거죠. 이건 굉장히 큰 변화라고 생각해요.
Q. 발달장애 청년의 삶을 지원하는 다른 활동과 사부작의 차별점은 무엇일까요?
사부작은 발달장애인 당사자가 마을에서 주도적으로 일상을 기획하도록 돕습니다. 발달장애인이 내가 오늘 하루 누굴 만나고 어떤 일을 할 것인지를 스스로 기획하도록 한다는 점이, 사부작이 가장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부분입니다. 사실 발달장애인 당사자와 가족 모두가 가장 바라는 일이기도 해요. 쉽지 않은 일이지만 마을 안에서 주민들과 충분히 연결되어 있다면 얼마든지 가능하거든요.
사부작은 발달장애인이 일상을 기획할 때 필요한 자원들을 지역에서 찾고 연결해줍니다. 그리고 모든 과정에서 발달장애인의 의견을 듣고 존중하며 반영하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Q. 발달장애인이 직접 일상을 기획하려면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요?
발달장애인이 주도적으로 지역에서 자기 삶을 기획하고 펼쳐나가는 데는 사람들이 필요해요. 관계 그룹이 필요한 것 같아요. 발달장애인을 이해하고 또 그 지역을 잘 아는 사람들, 발달장애인과 오래 관계를 맺으면서 그들의 생각과 하고 싶은 것들을 읽어낼 수 있는 사람들이요.
요즘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가 핫하잖아요. 그래서 많은 분들이 발달장애인과의 공존을 간접적으로 경험하게 되죠. 사람들이 열광하는 것은 우영우의 매력과, 관계인 것 같아요. 우영우가 자기 능력을 펼칠 수 있었던 것은 옆에서 관계를 맺는, 우영우의 능력을 있는 그대로 바라봐주는 사람들 덕분에 가능했잖아요.
모든 발달장애인은 마찬가지라고 생각을 해요. 어떤 사람은 “우영우는 천재니까 가능해”라고 말하지만, 사실 비장애인들도 다 천재처럼 살지는 않잖아요. 내가 가지고 있는 만큼 능력을 발휘하고, 내가 끌어안고 있는 어려움이 보듬어지려면 주변에 어떤 사람이 있고 어떻게 나를 바라봐주느냐가 중요합니다.
지금은 엄청 비어 있어요. 발달장애인을 위한 이런 지원 시스템이 공백이 너무 많기 때문에 완벽하게 어떤 자립을 논하기는 힘든 상황이긴 하지만. 그 시스템만큼 중요한 것은 지역의 사람이라고 생각을 해요. 사람이 모여야 시스템도 만들어지겠죠.
사부작에서 6~7명의 발달장애 청년들을 자주 만나요.
하나하나 관심을 가지고 보면 정말 다 매력적이거든요.
그들이 사람으로서 가진 매력을 발견하는 순간이
저에게 또 힘을 주고 에너지를 줘요.
Q. 세상을 바꾸는 활동을 해 오며, 최경화 님 자신에게 일어나는 변화도 느끼시나요?
한 아이의 부모에서 장애인 인권활동가로 나아가는 과정을 요즘 깨닫고 있어요. 저는 정말 그저 엄마였고 ‘우리 아이가 어떻게 하면 적응할 수 있을까’에 굉장히 집중을 하고 지냈단 말이에요. 아이를 대안학교에 보냈을 때, 교장 선생님이 이렇게 말씀하셨어요. “이 일은 운동하듯이 해야 한다”고요. 처음에는 정확하게 와닿지 않았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그 말이 맞는 것 같아요.
나와 내 아이가 살아가는, 세상에 적응해가는 모든 과정이 운동인 거예요. 장애를 바로 알리고, 장애인 인권을 알리고, 같이 살아야 하는 이유를 세상에 계속 알리는 활동인 거잖아요. 어느 순간부터 저는 부모에서 장애인 인권 활동가로 변신하고 있는 것 같아요. 저는 계속 지금도 성장하고 있다고 생각을 하거든요. 매일매일 배워가고 있어요.
Q. 최경화 님이 꿈꾸는 일상은 어떤 모습인가요?
마을 카페에 주민들이 모이는 거예요. 그런데 뭘 하지는 않아요. 그냥 거기 모여서 차도 마시고, 어떤 사람은 뜨개질도 하고, 어떤 사람은 책도 보고. 그렇게 편안하게 각자의 시간을 보내는 공간 안에 발달장애 청년과 지역주민이 함께 있는 거죠.
장애와 비장애가 자연스럽게 통합되는 일상을 정기적으로 만들고 싶어요. 그 시간이 되면 그냥 집에서 먹을 것을 조금씩 싸와서 나누고, 서로 안부도 묻고, 어떤 발달장애 청년들은 맥주도 한 잔 하고요. 그렇게 같이 하루 또는 일주일을 보낸 피로를 푸는, 그렇게 마을 카페에서 같이 일상을 마무리하는 문화가 생기면 참 좋겠습니다.
인터뷰 및 본문 정리 : 백수진
일러스트 : 애슝 (@ae_shoong)
최경화 님과 함께하는 카카오임팩트 펠로우십이 궁금하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