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의영 펠로우ㅣ피치마켓 대표
더 나은 세상을 위한 혁신가 레이블, 카카오임팩트 펠로우십과 함께하는 사회 혁신가를 소개합니다. 모두의 당연한 일상을 위해 변화를 만드는 사람들, 이들이 앞당기고 있는 내일의 당연한 일상에 대한 이야기를 만나보세요.
함의영 펠로우가 운영하는 ‘피치마켓’은 학습이 느린 사람도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콘텐츠를 만듭니다. 최신 뉴스부터 문학 작품, 일상 에티켓까지 쉬운 글로 풀어내 우리 사회 속 정보 격차를 줄이는 역할을 합니다. 실질 문맹 개선을 통해 함의영 펠로우가 꿈꾸는 일상, 지금 소개합니다.
천천히 배우는 일이 부끄럽지 않은 세상이 된다면
우리는 어떤 목소리를 듣게 될까요?
Q. 자기소개를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느린 학습자들을 위해 쉬운 글을 만들고 있는 ‘피치마켓’의 함의영입니다.
‘피치마켓(peach market)’은 우리말로 복숭아 시장인데요. 복숭아는 겉으로 봤을 때 맛있게 생긴 열매가 실제로도 맛있는 경우가 많잖아요. 잘 익거나 무른 정도가 겉으로 보이죠. 겉과 속이 같아요. 판매자와 구매자의 정보가 일치하는 시장을 의미해요. 반대 개념은 중고차 거래 시장 같은, 소비자가 투명한 정보를 알기 어려운 ‘레몬마켓’이고요.
복숭아 시장처럼 정보 평등이 이뤄진 사회를 만들고 싶다는 생각으로, 활동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Q. 정보의 불평등 문제를 어떤 계기로 깨닫게 되셨나요?
직접적인 계기는 친구의 발달장애인 동생이었어요. 발달장애인은 평생에 걸쳐서 읽을 수 있는 책이 한정되어 있더라고요. 우리 사회에는 인지 능력이나 문해력이 낮은 사람들이 읽고 즐길만한 콘텐츠가 너무 부족합니다. 그래서 청소년기, 성인기가 되어도 나이에 상관없이 아동용 동화책을 읽어야 하는 상황이에요. 이로 인해 교육 기회에 제약이 생기고 정보의 격차가 벌어집니다.
처음부터 ‘사회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어떤 거창한 목표를 가지고 사업을 시작한 건 아니었어요. ‘발달장애인도 이해할 수 있도록 글을 쉽게 만들어보자’라는 간단한 생각으로 시작했어요. 그런데 사업을 시작하고 알아갈수록, 독서의 어려움은 발달장애인의 문제만이 아니었습니다. 장애등급은 없지만 ‘경계선 지능’인 분들도 어려움이 많아요. 비장애인 중에서도 소외 계층의 특성상 격차 생길 수 있고요. 사회 전반에서 정보의 평등을 실현해보자는 생각을 서서히 굳히게 되었습니다.
Q. 피치마켓의 타깃을 부르는 말, 왜 ‘느린 학습자’일까요?
‘느린학습자’라는 표현을 피치마켓이 만든 건 아닙니다. 경계선 지능인 분들을 비유하는 표현으로 쓰여왔는데요. 저희는 이 단어를 경계선 지능인을 뜻하는 말로 한정하지는 않고 있어요.
피치마켓의 책은 남들보다 느리게 배우고 더디게 이해하는 모든 사람들을 위한 콘텐츠거든요. 그래서 상대적으로 독해에 어려움을 겪는 이들을 아울러 ‘느린학습자’로 지칭하기로 했습니다.
우리는 ‘안경’ 정도의 역할을 합니다.
시력이 좋지 않은 사람들을 돕는 안경처럼,
불편함이나 어려움이 있는 사람들에게
적절한 무언가를 해주고 있을 뿐이에요.
Q. 피치마켓이 말하는 ‘쉬운 글’이란 어떤 글인가요?
사실 저희는 ‘쉬운 글’보다는 ‘적당한 글’ ‘적정한 글’이라는 표현을 쓰려고 해요. ‘쉽다’라는 표현 자체가 굉장히 주관적이거든요. 누군가에겐 쉬운 것이 다른 누군가에겐 여전히 어려울 수 있고요. 저희가 쉽게 풀었다면서 내놓았는데, 그 글이 여전히 어려운 분들은 더 심각한 자괴감에 빠질 수도 있어요. 열등감이 커질 수도 있고요. 저희는 그래서 ‘적정한 글’이라고 표현합니다.
적정한 글로 바꿔쓰는 과정은 굉장히 여러 단계를 거치게 되는데요. 글을 읽었을 때 바로 이미지로 떠오를 수 있도록 스토리텔링하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그냥 완성된 보통 글을 번역하듯 바꿀 수 있는 게 아니라, 기획 단계부터 고려할 것들이 많아요. 문장 단위에서 볼 때는 유추 능력이라든지, 상식이 없으면 이해할 수 없는 지점들을 문장 속에서 정보를 끄집어내서 다 제공을 해줘야 하고요. 흔히들 떠올리시는, 한자어를 쉬운 단어로 바꾸는 건 제일 마지막 단계이고 극히 일부의 과정에 해당합니다.
발달 장애인의 가족도,
특수교육 전공자도 아니었어요.
한 발 떨어진 제3자 이다 보니까
문제를 해결할 용기도 생긴 것 같아요.
Q. 피치마켓의 차별화 포인트가 있다면 무엇일까요?
저희의 목표는 ‘느린 학습자’를 ‘빠른 학습자’로 만드는 게 아니에요. 인지 능력이나 문해력을 변화시키려는 노력이 아닙니다. 그들이 동일한 인지 능력과 문해력을 가지고도 일상에 지장 없게끔 만들어주고 싶은 거예요. 그들의 다름을 인정하고, 현재 상황에서 이해할 수 있는 정보들을 계속해서 만들어주는 거죠. 지금 세상에서 사람들이 알고 있는 뉴스나 정보, 새로운 기술 등에 대해서요.
피치마켓이 진짜로 원하는 건 대화를 이끌어내는 거예요. 정보를 알고 이해하는 것은 기본이고, 그걸 통해 새로운 생각이나 의견을 갖게 해서 타인과 대화를 시작하게 하는 것. 저희가 생각하는 느린 학습자들의 가장 이상적인 모습입니다.
지적장애 2급인 42세 느린 학습자분이 계셨어요. 40년 만에 처음으로 책이라는 걸 끝까지 읽어봤다고 하시더라고요. 그리고 그 책을 주제로 부모님과 이야기도 나눴대요. 늘 “오늘 뭐했어?” “재밌었겠다” 등의 단편적인 대화가 전부였는데, 톨스토이의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이야기를 꺼낸 거예요. 깜짝 놀란 부모님도 저희 책을 뒤따라 읽으셨고, 꼬리에 꼬리를 무는 대화가 가능해졌다고 합니다.
느린 학습자에게도 누군가와 공감대를 형성하고 대화할 수 있는 환경이 필요해요. 사회에서 비장애인과 소통하는 기회가 생기고 그런 소통이 자연스러워지면 구성원으로서 더 많이 함께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이제까지 아무도 하지 않았던 이런 접근이 저희 피치마켓의 차별점인 것 같습니다.
Q. 느린 학습자용으로 바꿔 쓸 책을 선정하는 기준이 있을까요?
신규 콘텐츠는 여러 부류가 있어요. 대표적인 건 교과서 수록 작품입니다. 비장애인이라면 입시 때문에 원치 않아도 배우게 되는 문학 작품들을 똑같이 읽고 소통할 수 있게 하자는 차원이에요. 최신 뉴스도 신경 씁니다. 이 시점에서 비장애인 대다수가 알고 있는 뉴스라면 느린 학습자들도 알아둘 필요가 있겠죠. 같은 뉴스를 알고 나름의 의견과 궁금증을 갖고 소통할 수 있게 하자는 의미에서 최근에 이슈가 되는 뉴스들도 선정합니다. 창작 콘텐츠도 있어요. 느린 학습자들이 특별히 가지는 어려움들. 사회 인지에 관련된 부분이나 에티켓 등을 스토리텔링으로 풀어서 제공합니다.
지금까지 200권이 넘는 책이 나왔고, 1년에 6,000명 정도의 느린 학습자들이 피치마켓의 문장들과 함께 호흡하며 새로운 정보를 배워나가고 있습니다.
느리게 배우더라도,
그걸 계기로 주변 사람과 대화하고,
자기만의 생각을 갖고 표현할 수 있는 것은 매우 큰 변화죠.
삶이 확장되는 일이잖아요.
Q. 사회에 가장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다면요?
수 천 명의 느린 학습자를 만나고 소통하면서 확실히 깨달은 점이 있습니다. 느린 학습자들은 배울 수 없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느린 학습자의 독서 교육 성과를 연구한 결과, 피치마켓 독서 참여자의 문해력이 평균 16%가 올랐어요. 피치마켓에서 3년간 독서 활동을 하다가 검정고시에 도전한 학습자도 있습니다. 집중력도 낮고 독해를 굉장히 힘들어하던 친구였는데, 매주 독서 활동을 하면서 글에 대한 거부감이 낮아졌고 오랜 시간이 걸리긴 했지만 검정고시 합격까지 했어요.
모두는 아니더라도 상당수의 느린 학습자들이 학습이 가능했고 성장하는 모습을 보였어요. “이런 사람들은 배울 수 없어”라고 단정 짓는 사회적 편견이 여전히 강한데, 도움이 조금 더 필요할 뿐 할 수 있고 배울 수 있다는 걸 꼭 알리고 싶습니다.
Q. 함의영 님이 꿈꾸는 일상은 무엇인가요?
어딜 가도 느린학습자들이 함께 하는 거예요. 그들이 있을 수 있는 공간이 특별히 분리돼있지 않고, 남들과 다른 사람으로 취급되지 않고요. 그냥 카페에서 내 뒷자리에서 느린학습자 커플이 취업 준비를 위해서 노트북 켜놓고 이력서를 쓸 수 도 있고, 토론 모임에 갈 수도 있는. 느린학습자가 분리되지 않고 사소한 일상을 같이 하는 장면이 궁극적으로 저희가 바라는 모습입니다.
인터뷰 및 본문 정리 : 백수진
일러스트 : 애슝 (@ae_shoong)
함의영 님과 함께하는 카카오임팩트 펠로우십이 궁금하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