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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카카오임팩트 Sep 04. 2022

농촌 주민들이 지속가능한 행복을 누릴 수 있는 일상

황민호 펠로우ㅣ옥천신문 대표

더 나은 세상을 위한 혁신가 레이블, 카카오임팩트 펠로우십과 함께하는 사회 혁신가를 소개합니다. 모두의 당연한 일상을 위해 변화를 만드는 사람들, 이들이 앞당기고 있는 내일의 당연한 일상에 대한 이야기를 만나보세요. 


황민호 펠로우는 충북 옥천군에서 ‘커뮤니티 저널리즘’을 실천하고 있습니다. 지역의 이야기를 꼼꼼하게 다루는 옥천신문을 통해, 농촌 지역사회의 행복한 지속가능성을 꿈꾸고 실천합니다. ‘풀뿌리 언론’은 지방 소멸을 늦출 해결책이 될 수 있을까요? 황민호 펠로우가 만들고 있는 변화의 이야기를 들려드립니다.



선거가 민주주의의 꽃이라면, 
민주주의의 뿌리는 풀뿌리 언론입니다.


Q. 자기소개를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옥천신문 대표를 맡고 있는 황민호라고 합니다. 옥천신문의 모토는 지역의 공공성을 지키고 살맛 나는 공동체를 다져나가는 것입니다. 


신문을 시작으로 전국 군 단위 최초 월간잡지 옥이네를 만드는 데 힘을 보탰고, 옥천FM공동체라디오, 면단위 최초 주간지 '청산별곡' 등 다양한 매체를 만들고 더불어 운영하고 있어요. 농촌 지역에 보탬이 되는 건강한 풀뿌리 언론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Q. ‘풀뿌리 언론’은 어떤 의미인가요?


4년에 한 번 투표한다고 민주주의가 완성되진 않아요. 민주주의는 공기처럼 우리 곁에 살아 숨 쉴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려면 우리가 지역사회의 일에 대해서 정보를 충분히 얻고 이야기 나눌 수 있어야 하는데, 이런 기회를 만들어주는 게 바로 풀뿌리 언론의 역할이에요.


옥천신문은 대표적인 풀뿌리 언론입니다. 우리나라 지방 자치가 부활한 1994년보다도 앞선 1989년, 주민들이 삶을 기록하기 위해 직접 만든 신문이에요. 200여 명의 주민들이 돈을 모아서 시작했다고 해요. 옥천신문은 지금도 지역 주민들의 높은 충성도와 참여로 운영됩니다. 2021년 11월 기준 지면으로 3,400부를 발행했습니다. 옥천군 전체 가구의 20%가 옥천신문을 유료 구독하고 있어요. 매출의 55%가 구독료, 나머지는 지역광고에서 나옵니다.


옥천신문이 생기기 전에는, 시장·군수를 투표로 뽑더라도 4년 동안 지역에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주민들이 알기가 힘들었어요. 옥천군 1년 예산이 6,000억 원가량 되는데 그 돈이 어떻게 집행되고 어떤 부분이 삭감되고 이런 걸 알려주는 곳이 없었거든요. 옥천신문은 우리가 뽑은 군 의원들이 어떤 활동을 하고 어떤 사업을 집행하는지를 매주 소상히 알려줍니다. 이처럼 ‘풀뿌리 민주주의’, 즉 지방자치가 제대로 작동하게끔 감시하고 돕는 언론이 풀뿌리 언론이에요. 옥천신문을 통해서, 옥천 주민들은 더 나은 삶을 스스로 개척하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 황민호


삶은 관계라고 생각해요.
내 주위의 사람들이 행복하면 좋겠다.
지역의 자치와 자급,
지역의 순환과 공생은 그래서 중요합니다.


Q. 옥천에 연고는 없으시다고 들었습니다. 어떤 계기로 낯선 지역 언론사에 뿌리를 내리게 되셨나요?


원래 살던 곳은 대전입니다. 저도 처음엔 남들처럼 서울로 취직을 준비했어요. 여러 유명 언론사 시험에서 낙방을 거듭하다가, 어느 순간 발상을 바꿨어요. ‘꼭 큰 언론사에 들어가야 좋은 기자가 될 수 있는 건가? 나를 필요로 하는 곳에서 일하자.’ 이후 지역 농촌, 작은 지역 공동체에 관심을 갖고 알아보다가 대전 한밭신문을 거쳐 옥천신문에 입사하게 되었습니다. 저에겐 아주 뜻깊은, 최후의 보루였죠.


첫 신문을 내고 굉장히 놀랐습니다. 독자들의 피드백이 엄청 많은 거예요. 만나는 분들마다 “새로운 기사 잘 봤다”라고 말씀하시고요. 문장 하나하나에 빨간 줄을 치면서, 신문이 너덜너덜해질 때까지 읽는 분도 계셨어요. ‘이거 기사 잘못 쓰면 큰일 나겠다, 제대로 써야겠다.’ 정신이 번쩍 들었죠. 제보나 민원도 엄청나게 많아요. 취재기자 7명이 다 처리해내기 어려울 정도로요.


기사를 쓰면서 조금씩 달라지는 것들을 경험했어요. 초등학교 앞에 없던 인도가 생기고, 장애인 휠체어가 다닐 수 있는 산책로가 연결되고. 현직 군수가 선거운동원을 청원경찰로 밀실 채용하는 걸 보도해서 임기 중에 구속시키기도 했어요. 건강한 지역신문이 할 수 있는 웬만한 역할은 다 해본 것 같아요. 일상 속에서 실현되는 ‘솔루션 저널리즘’에 보람을 느껴, 20년째 하게 되었네요.


Q. 옥천신문이 기사를 다루는 방식은 중앙 언론과 어떻게 다를까요?


옥천신문 같은 지역 신문은 ‘커뮤니티 저널리즘’을 실천합니다. 언론을 보통 ‘세상을 보는 창’이라고 이야기하잖아요. 커뮤니티 저널리즘은 ‘세상을 보는 거울’이에요. 창은 바깥의 세상을 보여주지만, 거울은 스스로를 들여다보게 합니다. 나를 포함한 지역 주민의 문제를 보도하고 해결 방법까지 같이 찾으면서, 공동체의 삶에 꼭 필요한 존재가 되어가는 거예요.


커뮤니티 저널리즘에서는 특별하지 않은 사람이 없습니다. 모두가 특별하고, 모두가 이야깃거리예요. 옥천신문에 ‘요즘 어떻게 지내세요’라는 코너가 있는데요. 고추 농사 잘 됐다고 전화 오는 사람도 인터뷰하고, 행운목에 꽃이 폈다는 이야기도 들어봅니다. ‘은빛 자서전’ 코너에서는 70대 이상 어르신들의 자서전을 써주기도 해요. 남의 이야기가 아닌 우리의 이야기를 다루면서 지역에 활기를 더합니다.


수도권의 시각으로 지역을 다루면 일상은 사라져요. 큰일이 터졌을 때만 선택적으로 다뤄지고, 그 과정에서 타자화되죠. 옥천신문은 커뮤니티 저널리즘을 통해 지역의 주체성을 지키고 있어요. 권력을 감시하는 역할을 넘어, 지역의 변화와 문화의 다양성을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 황민호


Q. 옥천의 가장 시급한 문제는 아무래도 인구 소멸일 것 같아요. 


맞습니다. 지난해 옥천이 전국 89개 인구 소멸 지역 중 하나로 지정이 됐어요. 인구 5만 명 선이 무너진 것도 맞는데, 정말 큰 문제는 인구의 질이거든요. 65세 이상 노인 비율이 32%로 세대별 균형이 맞지 않아요. 태어나는 사람보다 떠나는 사람이 더 많고요. 유입되는 청년들은 있는데, 재정적·제도적 지원이 미흡해서 정착이 어렵습니다.


지역에서 나고 자란 청년들이라도 꽉 잡아야 하는데, 정책은 자꾸 반대로 갑니다. 서울로 대학 진학하는 아이들만 장학금을 줘요. 오히려 지역에 남아있는 애들한테 돈을 줘야 되는데 말이죠. 서울에서 공부하는 친구들 지원해봤자 지역으로 다시 오지 않거든요. 젊은 친구들이 자라면서 지역을 비하하고 부정하고, 끝내는 배반하게 만드는 게 지역의 딜레마입니다.


농촌 지역에 사는 친구들이 지역에 사는 것에 자긍심을 갖게 해야 해요. “난 여기 남을래” 하면 박수를 쳐주고 응원해주고 지원해주고. 어떻게든 일자리를 마련해주고 동료로서 받아 안아야 합니다. 안에 있는 청년들부터 붙잡아야, 바깥에 있는 청년들이나 청소년들을 불러올 수도 있겠죠.


농촌에서도 다양한 꿈을 꾸는 친구들이
생겼으면 좋겠어요.
노인들만 남은 곳이 아닌,
세대별, 직업별 균형이 이루어진
살맛 나는 농촌이 되기를 꿈꾸고 있습니다.


Q. 미디어는 어떻게 지역 소멸을 막는 데 기여할 수 있을까요?


제가 미디어에 주목하는 건요. 젊은 친구들이 관심을 갖는 분야이기도 하고, 지역을 기록하는 공익적인 일이기 때문입니다. 풀뿌리 언론을 성공적으로 실천하고 있는 옥천신문 사례는 그 자체로 청년을 끌어당기고 있어요. 옥천 저널리즘 스쿨에는 매년 20명 이상의 언론학도와 지역사회를 공부하고 싶은 청년들이 찾아옵니다. 짧게는 2주, 길게는 6개월에서 1년까지도 머물면서 공부해요. 서울에서의 삶만을 생각하다가 “옥천에 와서 새로운 길을 보았다”라고 말하는 친구도 있었어요.


미디어는 수많은 일자리를 창출할 수 있는 영역이기도 해요. 오랜 시간 신문에만 매진해오다가, 한 5년 전쯤부터 여러 갈래로 일을 벌이고 있어요. 주민생활 정보지 ‘우리동네’를 만들었고, 작년 12월엔 공동체 FM 라디오 ‘옥천라디오’도 개국했어요. 주파수로는 반경 10km 이내 지역 주민들이 들을 수 있고, ‘옥천 FM’이라는 앱을 받으면 전국 어디에서나 청취 가능합니다. 


동네 소식을 라디오를 통해서도 들을 수 있게 된 거예요. 현재 하루 9시간가량 방송을 하고, 초등학교 1학년부터 89세 노인까지 다양한 주민들이 참여하여 프로그램을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옥천 TV 채널도 만들 계획입니다. 동네 과일가게나 슈퍼마켓 가보면 TV를 하루 종일 틀어 놓거든요. 이 화면들을 24시간 옥천의 콘텐츠로 가득 채운다면, 지역 이슈에 대한 정보 격차는 줄어들고 유대감은 높아지겠죠.


Ⓒ 황민호


지속가능한 농업을 위해서는 농촌에 사람이 살아야 하고, 사람을 살게 하려면 지역공동체의 삶의 질이 올라가야 합니다. 중앙 언론, 유튜브 등이 모든 이슈를 잠식하는 상황에서, 주체적인 언론 활동은 지역의 삶을 건강하게 받쳐주는 토대가 될 것이라 믿습니다.


좌우명은 ‘하면 될지도 모른다’ 예요.
‘하면 된다’가 아니라 ‘될지도 모른다.’
행복하게 지속가능한 농촌 지역사회,
풀뿌리 언론과 함께라면 가능할 수도 있지 않을까요?


Q. 황민호 님이 꿈꾸는 일상은 어떤 모습인가요?


저는 돈이 없어도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사회를 꿈꿔요. 삶이라는 건 움직임의 자유, 만나고 싶은 사람을 만날 자유만 있어도 행복할 수 있거든요. 좋은 음식 나눠 먹고 같이 응원하면서 서로의 삶을 지탱할 수 있다면 그게 행복이 아닐까 싶어요. 그런데 이게 지역 사회에서 의외로 지켜지지 못합니다.


읍내까지 가지 않아도 지역 안에서 행복하게 머물 수 있고, 지역 내 문화를 스스로 만들 수 있는 그런 농촌 지역을 완성하고 싶어요. 지역 활동가나 혁신가들을 같이 길러내서 세대별·직업별 인구 균형을 맞춰나가고, 농촌을 지속가능한 공동체로 길러내고 싶습니다. 그 과정에서 미디어가 할 수 있는 일들을 꾸준히 찾아 나갈 거예요.



인터뷰 및 본문 정리 : 백수진
일러스트 : 애슝 (@ae_sho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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