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 쫄보야 별거 아니야" 그는 내 뱃살을 툭툭 치며 말했다. 1년전 감당 못할 직장 스트레스로 찾아온 원인 모를 고통. 꼼짝없이 집에 갇혀 울다가 급기야 웃음기 한톨 없이 말라가던 내 옆에서 그는 항상 이렇게 장난을 쳤다. 그때마다 "넌, 정말 내 속도 모르지"라며 속으로 울컥하는 수밖에 없었다. 언젠가 "주말마다 놀러가자던 네가 그저 누워만 있으니 낯설다"고 말했던 게 그나마 그가 건넨 가장 심각했던 문장이었다.
힘든 시간이 지나고 나도 제법 인간 구실을 하게 된 어느 날 저녁. 밝은 거실에서 웃고 떠들다가 우린 불 꺼진 방에 함께 누웠다. 코골이가 심한 그와 각방을 쓰는 탓에 자기 전 일정 시간을 함께하는 소소한 루틴. 그가 뻗은 팔에 가만히 머리를 뉘였다가 품속으로 돌아누웠다.
암막커튼 덕분에 방안은 깜깜 그 자체. 갑자기 그가 "요즘 행복하다"고 했다. 정확히 말하면 '행'을 말하고 2초후에 '복하다'를 말했다. 순간, '이런 사람이 아닌데'란 낯선 느낌이 들면서도 진지한 공기가 느껴졌다. 왜 라고 묻기도 전에 그는 "네가 많이 건강해져서"라고 답했다.
난 그저 그저. 고맙다고 말하고 싶은데. 목이 막혀왔다. 다만. 그저. 힘없이 널부러져 있던 팔로 그의 어깨를 꼭 감싸안았다. 오랜 시간을 함께 지냈지만 처음 보는 모습. 사실은 아무렇지 않은 척 했던 것이었다. 내게 수없이 건넨 "벌거 아니야"라는 말이 사실 내심 두려웠던 자신의 마음을 함께 달랬던 거라는 걸, 불이 꺼지고 비로소 너무 늦게 깨달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