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다 Oct 31. 2024

정체기

아마 이번 달 초였던 것 같다. 글을 쓰려는 데 쉽게 펜이 움직여지지 않았다. 이 원인을 한동안은 집중력의 저하로 추정했었는데, 최근 더 곰곰이 생각해 보니 집중력이 아니라 의지의 저하가 원인이었던 것 같다.


합당한 근거가 있다. 연초에 조그마한 공모전에 당선되었을 당시의 나는 의지를 불태웠었다. 나날이 글을 썼고, 작품들을 차곡차곡 완성했으며, 다른 공모전에 하나둘 도전했다. 열심이었지만 피로하지 않았다. 완성된 글을 마주하는 순간 글쓰기에 소진했던 에너지가 회복되는 느낌이었다.


하지만 수많은 공모전에 떨어지면서 의지가 점차 사라졌던 모양이다. 그저 언제나처럼 근거 없지만 낙관적인 기대를 품고 계속 앞을 향해 정처 없이 걸었던 것 같다. 그러다가 지금에 이르러 일종의 번아웃상태에 다다른 게 아닐까 싶다.


정체기다. 글을 써도 필력이 늘고 있는지도 잘 모르겠고, 공모전에 미완성이나 다름없는 글을 내는 게 의미 있는 행위인지도 잘 모르겠다. 같은 행위를 반복하다 보면 정체기란 원래 찾아오는 거라고, 삶이라는 게 원래 그런 거라고 하면 조금은 덜 비겁한 변명이 될까.


첫 번째 회사를 다니다가 이곳을 벗어나지 않으면 도저히 안 되겠다는 생각에 몸부림치던 시절, 나는 하루하루 온몸으로 변화를 갈구했다. 하지만 그 변화가 가리키는 답인 이직이라는 선택지는 두렵고 낯설기만 했다. 안개가 자욱한 길이었다.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미래로 차마 몸을 이끌 수가 없었다.


그럼에도 결국 이직을 결심할 수 있었던 데에는, 그 어떤 변화도 정체기에 머무르는 것보다는 나으리라는 맹목적인 믿음이 가장 큰 역할을 했다. 그러니까 안개 낀 길로 갈지언정 멈춰 서 있어서는 안 된다는, 자못 어리석고 무모해 보일 수 있는 생각이 나를 끌고 갔던 것이다.


결과적으로 이직은 그다지 성공적이지 않았다. 하지만 정체기를 벗어났다는 사실 만으로 상당히 만족스럽기도 했다. 이후로 나는 한 번 더 이직을 해 지금의 직장에 다니고 있다. 비로소 직장인으로서는 정체기를 완전히 벗어났다. 그런데 이제는 이것만으로는 만족할 수 없다. 앞서 말했듯 작가지망생으로서는 정체기에 들어섰기 때문이다.


또 한 번의 변화가 필요했다. 이번에는 그 변화가 가리키는 답이 합평회라는 결론을 내렸다. 이미 만들어져 있던 모임은 없는지 한참 찾아보았으나 성과가 없어 답답해하던 중 내가 직접 모임을 운영해 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다행히 예상보다 쉽게 모임을 꾸리는 데 성공했다. 앞으로는 모임원들과 함께 잘 이끌어 나갈 일만 남았다.


이 변화가 성공적일지는 알 수 없다. 변화란 언제나 그렇게 알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적어도 정체기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길에 올라섰다는 확신이 든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괜찮다.

매거진의 이전글 환상이 깨지던 날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