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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다 Sep 28. 2021

마음의 신호등이 보인다면

그린라이트가 켜져 있다는 표현은 어떤 의미일까? 교통신호등에 비유하자면, 상대방이 자신에게 호감이 있어 그 사람을 향한 ‘마음의 길을 건너는 것이 허가된 상태’가 아닐까 싶다.


그런데 당연하게도 마음은 눈에 보이지 않기 때문에, 엄밀히 말하면 그 신호 역시 보이지 않아 상황에 따른 행동으로 미루어볼 수 있는 '추측'에 지나지 않는다. 횡단보도 앞에서 초록불로 바뀌길 기다려 망설임 없이 걸어갈 수 있는, 그런 성질의 신호는 결코 아니라는 거다.


오히려 현재 신호등이 무슨 색을 가리키고 있는지 정확히 알 수 없고, 사고를 당하면 마음의 상처를 입게 될 수 있는, 횡단보도도 없는 16차선 도로에 더 가까울지 모른다. 마음이란 그런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마음의 안전을 위해 그 보이지 않는 신호를 추측해보려 애쓴다. 개인마다 차이는 있겠지만, 그래도 아직은 관계 속에서 서로 호감을 느끼며 달콤한 감정을 추구하는 사람들이 훨씬 더 많기에, 인터넷 카페나 커뮤니티에 누군가의 마음에 관한 수많은 질문이 올라오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한지도 모른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렇게 타인의 마음을 정확히 읽어내는 건 초능력의 범주에 속하기에 상황에 대한 판단, 즉 '현재의 신호가 무엇인지'에 대한 판단은 종종 틀릴 수 있고, 결국 잘못된 신호에 의지해 길을 건너다가 사고를 당해 상처를 입는 사람도 많다. 물론 신호를 굳이 읽으려 하지 않다가 더 큰 사고를 당하는 사람도 많기에, 그럼에도 사람들은 흡사 수수께끼를 풀듯 누군가의 마음을 알고 싶어 전전긍긍한다.


답답해하는 사람들 중에는 '마음의 신호가 보였으면 좋겠다'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분명 있을 것 같다. 나 역시 누군가의 마음을 궁금해했던 적이 있고, 그때의 심정 역시 잘 알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정말로 자신을 향한 마음의 신호등이 어떤 색인지, 확실하게 눈에 보인다면 어떨까?


이로써 우리는 '이 상황, 그린라이트일까요?'라는 난제를 너무나도 쉽게 해결할 수 있게 되었다. 소개팅에서 만난 마음에 드는 그녀의 마음에 초록불이 켜진 것을 보고 자신감 있게 술이나 한 잔 더 하자고 말할 수도, 다음 만남을 요청할 수도, 더 나아가 오늘부터 진지하게 만나보자는 말을 꺼낼 수 있을지도 모른다.


짝사랑하는 오빠의 주변을 맴돌며 언젠가 자신의 마음을 알아주길 간절히 바라던 소녀가, 어느 날 그린라이트가 켜진 걸 보고 뛸 듯이 기뻐하는 로맨스영화 같은 장면을 상상해볼 수도 있다.


또한 자신의 신호등 역시 볼 수 있다면, 긴가민가했던 마음을 추스르며 어느 날 누군가를 향해 '나 이렇게 너를 좋아하게 됐어.' 라며 조심스럽게 간직했던 마음의 신호등을 내보이며 고백하는 일도 생길 수 있다. 물론 예상과 달리 쉽게 바뀌지 않는 신호를 보며 슬퍼하는 일 역시 여전히 존재하겠지만, 최소한 섣부른 판단 때문에 상처를 입을 일은 확연히 줄어들 것이다.


하지만 꼭 좋은 점만 있을까? 신호등이 보인다는 건, 사람에 대한 마음이 적나라하게 드러나 보인다는 것과 같다. 누군가는 사귀는 연인의 마음이 그린라이트인 것을 보며 안심한 나머지 관계의 유지에 소홀하다가, 어느 날 갑자기 연인의 신호가 바뀌었음을 목격함과 동시에 이별이라는 결과를 맞이할지도 모른다. 조심스럽게 가까워지고, 서로를 알아가며, 어느 순간 그린라이트가 되는 희열을 느끼려 하기보다, 적신호를 보며 더욱 주저하게 되며 신호를 바꾸기보다는 포기를 선택하는 일도 비일비재해질 것이다. 관계 속에서 가장 중요한 마음에 대해, 많은 부분이 계산의 영역에 포함되어 버리기 때문이다.


우리는 누군가의 마음을 얻고, 움직이고, 확인하고자 하는 행위들로부터 설렘을 느끼고, 기쁨을 얻고, 때로는 감동을 받는다. 그리고 그렇게 마음의 울림이 전해질 때, 보이지 않던 서로의 마음의 존재에 대한 믿음을 확신하며, 그 실체를 가슴속 깊이 느낄 수 있게 된다.


결국 마음의 신호등이 보이는 게 딱히 바람직해 보이지 않는 이유는 생각보다 단순할지도 모르겠다. 마음이란, 보이지 않기에 더 소중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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