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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다 Oct 07. 2021

[소설] 천사와 재능

  비록 앞날이 밝을지는 알 수 없을지언정,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그는 충분히 만족하는 듯했다. 그의 얼굴엔 언제나 미소가 떠올라 있었고, 열정적인 심장을 가지고 있었으며, 삶은 즐겁고 행복했다.

  물론 그는 식물로 치자면 아직 꽃은커녕 씨앗을 겨우 뚫고 나온 상태에 불과했지만 그 모습만으로도 벌써 주위에서는 성공을 조심스레 점치기도 했다. 섣부르다고 하기에는 그는 너무나 젊었고, 앞날이 창창했으니까.

  그러던 어느 날, 하늘로부터 희미한 형체가 빛을 내며 그의 곁으로 내려와 말했다.

  “자네의 열정적인 모습에 깊은 감명을 받았다네. 하지만 그 열정을 계속 간직하는 사람은 드물지. 나는 자네와 같이 언젠가 반드시 빛을 볼 수 있는 재능을 가진 사람들을 찾아 용기를 주는 역할을 맡고 있다네. 그러니 자네가 포기하지 않도록 계속 용기를 주지. 이제부터 자네 곁에 내가 있다는 사실을 꼭 명심하고 절대 포기하지 않도록 하게.”

  “제게 이런 행운이 찾아오다니 믿기지가 않네요! 그렇다면 당신이 바로 용기의 천사인가요? ”

  그는 놀랐지만 이내 정체를 짐작하고는 감동하며 물었다. 내게 이런 일이 생기다니!

  “천사에겐 누군가의 재능을 알아보는 능력이 있지만, 악마에겐 그런 능력이 없지. 그러니 부디 나를 곁에 머무를 수 있도록 해주게.”

  그는 여전히 감동에 젖은 채로 고개를 끄덕였다. 벌써부터 더 큰 용기를 얻는 느낌이었다.


  몇 년의 시간이 흐른 뒤에도 그는 여전히 열정을 불태우고 있었다. 하지만 성공한 사람과의 거리는 멀어 보였고, 그래도 어쨌든 예전처럼 긍정적인 마음가짐을 잃지 않으려 노력했지만, 한계가 느껴질 때도 분명 있었다. 그렇게 즐거웠던 일이었지만 자신이 이 일에 정말로 재능이 있는 것인지 떠올려볼 때가 된 것이다.

  주위의 시선은 여전히 따뜻했지만, 어느 날인가부터 그 시선에는 믿음보다는 위로가 더 많음을 깨달을 수 있었다. 그렇게 문득 자신을 향한 시선의 진의를 느끼며 용기를 잃고 포기하려던 순간에, 처음으로 조우했던 그날처럼 다시 그 형체는 나타났다.

  “절대 용기를 잃지 마. 여전히 자네에겐 시간이 많고, 아직 제대로 도전해보지도 않은 거야.”

  “고맙습니다. 하지만 잘 해낼 수 있을지 걱정이 됩니다. 정말 이 길이 저에게 맞는 길일까요?”

  "걱정 말게. 내가 옆에 있어줄 테니까. 계속 포기하지 않으면, 분명 언젠가 신문에 자네의 이름이 실리는 걸 볼 수 있을 거야."

  그는 자신의 곁에 있어주는 존재에 다시금 고마움을 느끼며 용기를 내기로 했다.


  시간이 좀 더 흐르면서 그의 얼굴엔 점차 웃음이 사라져 갔다. 열정과 노력만으로 성공할 수 있다면 다행이었겠지만, 좀처럼 나아지지 않는 상황 속에서 그토록 즐거웠던 일은 점차 괴로움으로 변해갔다.

  포기하고 싶은 순간들이 많아졌다. 그것은 그의 열정과 의지가 부족해서가 아니라, 오히려 그렇게까지 자신을 불태우며 노력했음에도 이뤄지지 않는 것이 있음을 깨달을 때마다 더 큰 절망감을 느꼈기 때문이었다.

  주위의 시선 역시 차가워지기 시작했다. 그에게선 더 이상 기대할 것이 없다는 수군거림 속에는, 그런데 왜 아직도 포기하지 않고 있는지에 대한 궁금함이 섞인 냉소도 느껴졌다.

  그럼에도 어쨌든 그는 포기하지 않았다. 그것은 자신에 대한 믿음, 그리고 세상 사람들 모두가 등을 돌려도 계속 자신을 지켜보고 용기를 주는 존재에 대한 믿음의 결과이기도 했다.


  하지만 포기하지 않는 것만으로 성공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현실은 냉정했다.

  이뤄지지 않은 것들은 끝내 이뤄내지 못한 꿈으로만 남았다. 쥐어짜내듯 이뤄낸 것들도 있었으나 그가 걸어온 길에 비해 너무나 짧아 수많은 실패 속에 묻혀 버려졌고, 그렇게 그의 삶 또한 운명으로부터 버려졌다.

  이제 그는 냉소적인 관심조차 받지 못하는 존재가 되었다. 그 옛날 가슴속에 타올랐던 삶의 열정과 포기하지 않겠다는 의지는 꺼져버렸고, 지금은 후회가 그 자리를 후벼내 공허감만이 가득했다.

  결국 실패한 삶 속에서 다시는 일어서지 못할 절망적인 순간이 찾아오자, 그는 커다란 나무의 튼튼한 나뭇가지를 찾고, 거기에 줄을 매달아 고리를 만들었다. 그리고 나뭇가지 위에 올라 그 고리를 목에 감은 채 눈물을 흘리며 말했다.

  “저는 스스로가 너무나 원망스럽습니다. 포기하려고 했던 많은 순간에 한 번만이라도 포기할 수 있는 진정한 용기를 발휘했다면 이렇게까지 절망적인 상황에 처하지는 않았을 테니까요. 그래서 저는 천사님이 제 곁에 머무르도록 한 그때의 선택을 뼈저리게 후회하고 있습니다. 도대체 왜 제 곁에 머무르려 하셨나요? 왜 저를 진정으로 돕지 않으셨나요?”

 “천사? 어리석구나. 내가 왜 자네에게 용기를 주었는지 아직 모르겠는가?”

  자신의 주변을 맴돌던 형체가 기다렸다는 듯 시커먼 본모습을 드러내며 말했다.

  “간단해. 그건 바로 내가 천사가 아니라 악마이기 때문이지. 혹시 악마에겐 재능을 알아보는 능력이 없다고 말했던 걸 기억하나?”

  망연해 있던 그가 이윽고 아래로 뛰어내리자, 나뭇가지가 잠시 크게 흔들렸다. 그렇게 고통스러웠던 삶에서도 마지막으로 가장 고통스러웠던 시간이 지나자 악마는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불행한 영혼을 낚아채고는 킬킬거리며 하늘 높이 사라졌다. 하지만 기분 나쁜 웃음소리는 여전히 남아 어두운 하늘에 영원처럼 퍼져 나갔다.


  다음날 신문 한 구석에는 한 때 미래를 촉망받았던 남성이 거듭된 실패에 지쳐 결국 나무에 목을 매 숨졌다는 짤막한 기사가 실렸다. 하지만 그가 누군지조차 모르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고, 그 기사가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희미해지는 데에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그리고 그 불쌍한 존재 역시 사람들의 뇌리에서 금방 희미해져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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