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교를 졸업하고 난 뒤의 과거를 되짚어보면 나는 아버지와의 좋은 기억이 전혀 없다. 우리는 이따금 명절이나 되어야 얼굴을 마주 했고, 별다른 대화 없이 작별했다. 그마저도 5년쯤 전까지의 일이고, 그 후에는 완전히 왕래를 끊고 마치 남남처럼 지냈다.
그래서 아버지와 함께 했던 좋은 기억을 떠올리려면 무려 20년 이상을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그는 바보 같은 선택의 연속으로 그만큼 오랜 시간을 바보처럼 보냈다. 언젠가 다시 생각한다 해도 나는 그를 바보라고 말하는 것을 주저하지 않을 거다.
그럼에도 어렴풋한 먼 옛날을 더듬으면, 얄궂게도 분명히 좋은 기억이 남아있다. 아마도 그만큼 드물기 때문에 잊히지 않는, 그 때문에 더 씁쓸한, 이제는 별 의미 없는 그런 기억.
어쩌면 대단치도 많지도 않은 기억의 조각들마저 잃어버리면 어린 시절의 내가 불행하게 느껴질까 봐, 혹은 그마저 없으면 그를 향한 부정적인 감정이 걷잡을 수 없을 만큼 커질까 봐, 미련스럽게 떠나보내지 못하고 언제까지나 붙잡고 있는지도 모른다.
아버지가 되고 나서야 아버지를 이해할 수 있었다는 말을 접한 적이 있다. 하지만 나는 그 반대다. 아버지가 되고 나니 더욱 아버지를 이해할 수 없어졌다. 다시 건너기 어려운 강물의 폭은 더욱 넓어지고 말았다.
하지만 그 옛날 행복했던 웃음 속에 남아 있는 한 줌의 좋은 기억 때문에, 그럼에도 나는 그가 무탈하길 바란다. 그 바람 안에 있는 일말의 사랑은 계속 옅어지겠지만, 야속하게도 끝내 사라지지는 않을 것 같다. 그리고 이렇게 잊지 못하고 있다는 점에서 나 역시 그와 같이 바보라는 사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