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다 Sep 21. 2022

아기와 나

1

아들이 세상빛을 본지 벌써 250일도 넘었다. 다행히 무럭무럭 건강하게 잘 자라고 있다.


2

아기를 갖기 전에는, 아기를 원래 싫어하던 내가 나의 아기를 사랑할 수 있을지, 사랑을 줄 수 있을지 많은 걱정을 했었는데, 지금 생각하면 참으로 쓸데없는 걱정이었다.


3

아기는 그런 걱정을 할 필요가 하나도 없을 정도로 정말 너무너무 귀엽고 사랑스럽다. 똘망똘망 나를 쳐다보는 아기와 눈을 맞추고 있다 보면 절로 막 뽀뽀하고 싶어진다. 무표정일 때도 그런데, 심지어 웃기도 잘 웃는다. 그럴 때면 과장 하나 안 보태고 막 날아갈 것 같은 기분이 된다.


4

어떤 때는 내 자식이어서가 아니라 정말 객관적으로 귀엽다고 생각하다가도, 세상 대부분의 부모들이 이렇게 고슴도치 사랑을 하고 있나 보다 싶다. 그런데 진짜 객관적으로 귀엽다. 깨물어주고 싶다.


5

손으로 똥을 닦아줄 때도, 자신이 열심히 빨던 손가락으로 나를 만질 때도 마냥 귀엽다. 그런데 잠 안 자고 울 때는 솔직히 좀 힘들다. 그러다가도 번쩍 안아 들면 언제 울었냐는 듯 방긋방긋 웃어서 순식간에 마음이 풀릴 뿐이다.


6

우리 부부가 전생에 무슨 공을 세웠는지 생후 100일쯤 이후로는 새벽에 거의 깬 적이 없다. 축복받았다. 분유도 잘 먹고 이유식도 오물오물 잘 먹고 물도 잘 마신다. 아픈 적이 있긴 했지만 일시적이었고 지금은 건강하다. 아직 낯을 가리지 않아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다른 친척들을 보고도 잘 웃는다. 덕분에 귀여움을 독차지하고 있다.


7

웃음에 대한 얘기를 좀 더 하자면, 아침에 일어나 눈이 마주치면 방긋방긋, 퇴근하고 오면 나를 보고 방긋방긋, 안아 들고 좋아하는 행동을 해주면 소리 내어 까르르 웃는다. 그렇게 예쁠 수가 없다. 정말 행복해진다.


8

우리집에는 아기가 집에 오기 5년도 더 전부터 먼저 함께 살고 있는 고양이가 두 마리 있다. 아기는 고양이가 뛰어다니면 뭐가 그리 재밌는지 까르르 웃는다. 그리고 한 마리는 아기에게 전혀 관심이 없고 아기와 마주치게 해도 자리를 피한다. 그래도 나중에는 친해질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하고 있다. 한 마리는 아기에게 관심이 많아서 자주 다가와서 얼굴을 비비댄다. 그런데 아기가 가끔 몸통이나 꼬리를 움켜 잡기에 고양이가 아파하거나 화내지 않을까 싶어서 조마조마했었는데, 아무렇지 않은 듯 옆에 다가와 더 만져달라는 듯 눕는다. 아기가 그 정도의 힘으로 잡고 있는 건 아닌가 보다 싶어서 그냥 두고 있다. 어쨌든 잘 지내서 다행이다.


9

아기가 태어나면 하루도 빼놓지 않고 성인이 될 때까지 아이를 주제로 일기를 쓰겠다고 다짐했었다. 다행히 아직까지는 그 결심을 잘 지키고 있다. 분량이 길지는 않지만 뿌듯하다. 어차피 글은 꼭 길 필요가 없다. 그런데도 벌써 단편소설 3~4권에 해당하는 분량이 되었다. 계산해보니까 20살이 될 때까지 쓰면 아무리 작게 잡아도 최소한 단편소설 50권 분량은 나오겠더라. 인생 최대의 장기프로젝트다.


10

아내에게 둘째도 있었으면, 그리고 가능하면 딸이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더니 정색했다.

매거진의 이전글 그저 무탈하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