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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다 Jan 13. 2021

내리던 비가 그쳤을 적에

자신만의 세상에 갇혀 있던 날

비가 오는 날, 우산을 쓰고 거리를 걷다가 목적지로 향하는 도중에 위치한 갈림길의 골목에 들어선다. 주변에 아무도 없는 것이 느껴지면서 자연스럽게 나만의 세상에 빠져 여느 때처럼 공상을 하곤 하다 보면, 이윽고 빗소리조차 들리지 않게 되고 단지 우산만을 꼭 쥔 채 혼자만의 세계에 점차 빠져든다.


얼마나 지났을까? 골목을 빠져나옴과 동시에 나만의 세상에서도 빠져나오는데, 뭔가 위화감이 든다. 정신 차리고 주변을 둘러보니 모두들 우산을 쓰지 않고 있다. 현실에 의식을 두지 않는 사이 어느새 비가 그쳤지만 그 사실을 나만 모르고 있던 것이다.


나는 나만의 세상에만 빠져 있어 실제로는 세상이 변화했다는 걸 눈치채지 못하고 있던 것이다. 그나마 다른 사람이 우산을 쓰지 않고 있다는 사실을 직접 보고 알았기 때문에 망정이지, 그것을 보지 못했다면 계속 우산을 쓰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자신만의 세상에 갇힌다는 건 이와 비슷하지 않을까? 누군가 직접 보여주기 전까지는 뭐가 잘못되었는지 모르는 것. 그래서 우산을 쓰고 다니느라 본인은 팔이 아프고, 남에게도 우산을 부딪히면서 피해를 주는 것.


게다가 우산을 쓴다는 행위는 비가 그쳤을 때에는 아무 도움이 되지 않는 행동이다. 마땅한 이유가 없는데도 비효율적이고 사리에 맞지 않는 행동을 했다고 생각하니 별 것 아닌 경험으로부터 비약과도 같이 깊은 생각을 하게 된 것이다. 물론 비가 그쳤는데도 우산을 쓰던 나의 경험은 얼핏 특별할 것도 없고, 누구나 경험할 만한 일이다. 그렇지만 나만의 세상에 자주 빠져 있는 나에게는 그것이 신선한 충격이었다.


심오한 이야기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다음부터는 비가 그치면 바로 우산을 접자는 식의 단순한 얘기는 더욱 아니다. 세상의 변화를 깨닫지 못한 채 혼자만 우산을 쓰며 자신만의 세상에 갇혀 길을 걷는 사람은 많다. 다만 본인이 자각하고 있지 못하고 있을 뿐. 혹시 자신이 그런 사람은 아닌가 생각이 들고 그것을 깨닫게 되었다면 다행이다. 이제는 우산을 접자. 비는 예전에 그쳤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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