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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다 Jan 14. 2021

역지사지

어차피 사람마다 기준은 다르니까

다른 사람의 처지에서 생각해 본다는 뜻의 사자성어인 역지사지에 담긴 의미는 뭘까? 그것은 아마도 상대방이 잘 이해되지 않을 때, 상대방의 입장에서 이해를 해 보면 본질적으로 이해하기가 쉽다는 의미가 아닐까 한다. 참으로 유명한 사자성어이자 현명한 지혜가 담긴 말이다. 또한 사람들과 어떠한 형태로든 관계를 맺으면서 살아가지 않을 수 없는 현대인들에게 큰 도움이 되면서도 절로 고개를 끄덕이게 하는 말이기도 하다.


그런데 역지사지에는 한 가지 맹점이 있다.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려면 상대방의 상황뿐 아니라 상대방의 기준도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는 거다. 예를 들어 약속에 30분 늦어 미안하다고 사과를 했는데, 상대방이 나의 사과를 받아 주지 않는다고 하자. 사과가 받아들여지지 않자 나의 기분도 나빠진다. 이해가 되지 않는 상황에서 역지사지를 해보니 나의 기준으로는, 그냥 사과를 받아들이는 게 맞는 행동인 것 같다. 역지사지를 해 봤지만 그래도 이해가 가지 않는 상황인 것이다. 도대체 왜 친구는 사과를 받아들이지 않은 걸까? 역지사지를 했음에도 이해가 되지 않는 이유는 뭘까?


단순한 예시지만, 이것은 역지사지라는 게 마냥 쉽지 않고 상대방이 왜 그런 말과 행동을 했는지 이해한다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를 보여준다. 단순히 상황에 맞게 상대방의 입장에 서 보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는 얘기다. 자기 기준만 가지고 역지사지를 아무리 해봤자 결코 상대방을 완전히 이해할 수는 없다. 상대방의 기준이 아닌, 상대방의 상황이 되었을 때에 대한 이해만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역지사지 - 즉, 남의 처지에서 생각해 본다는 것은 그 자체만으로는 크게 도움이 되지는 않는 행위일지도 모르겠다. 적어도 사자성어의 겉으로 드러난 의미로만 생각해 본다면 말이다. 왜냐하면 우리에게 정말로 필요한 것은 다른 사람의 상황에서 생각해 보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기준에서 생각해 보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 기준이 자신과 다르고, 옳지 않다고 해도, 어쨌든 다른 사람을 이해하려면 그 사람의 기준을 알고 생각해 봐야 한다는 의미다. 사람들이 서로 다른 기준에 따라 말하고 행동한다는 사실을 이해하는 것만으로도 역지사지의 진정한 의미는 더 명확해지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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