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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다 Oct 19. 2022

기대와 판단

외부교육이 있어 늘 가던 사무실로 출근하지 않고 혼자서 따로 교육을 받으러 갔다. 점심시간이 되어 뭘 먹을까 생각하며 블로그를 뒤적여 보니 근처에 서울 최고의 뼈해장국집이 있단다. 물론 이렇게 최고의 식당이라 소개되는 곳이 여기뿐은 아니기에 처음에는 이 말이 곧이곧대로 들리지는 않았지만, 내부도 깔끔하고 양도 많고 맛도 좋다며 칭찬을 아끼지 않은 블로거의 말에 설득당하고 말았다. 그리하여 나는 기대감을 갖고 그곳으로 발걸음을 향했다.


도착하여 보니 손님이 많아 조금만 늦었다면 기다려야 할 정도였다. 이 많은 손님들이 모두 형편없는 미각을 보유하지는 않았으리라 짐작되어 잘 찾아왔다는 느낌이 들었다. 또한 들었던 것처럼 깔끔한 내부 역시 이 느낌을 더 강하게 만들어주었다. 나는 기대감을 품고 자리에 앉아 뼈해장국을 주문했다. 점심시간이면 주문과 상관없이 계속 음식을 준비하는 모양인지 메뉴가 금방 모습을 드러냈다. 정말로 양도 많은 편이었고, 본격적으로 식사를 시작하니 분명 맛도 괜찮았다.


그런데 이런 사실들과는 별개로, 최종적인 나의 평가는 애매했다. 문제는 기대였다. 무의식 중에 너무 높게 가졌던 기대감에 상대적으로 만족감이 낮아졌던 것이다. 그리하여 나는 제법 만족스럽게 식사를 마쳐 놓고도, 식당을 나올 때까지 이곳이 서울 최고라고 말했던 블로거의 평가에 고개를 갸웃거릴 수밖에 없었다. 아마 식당 주인이 이런 내 평가를 알아차렸다면 꽤나 억울했을 거다.


이렇게 높은 기대는 평가를 낮추고, 반대로 낮은 기대는 평가를 높인다. 적당함을 벗어난 기대 속에서 판단력은 흐려진다. 그나마 자신의 기대치가 평균적 차원에서 높은지 낮은지 인지할 수 있다면 판단력이 일부 결여된 상황이라는 점 역시 깨달을 수 있어 별다른 문제가 되지는 않겠지만, 우리는 경험적으로도 그렇지 않은 경우가 빈번하다는 사실을 쉽게 떠올릴 수 있다. 그리하여 주관적인 평가가 객관적이라는 타이틀을 달고 우리네 생각과 마음을 현혹시키곤 한다.


그리고 이런 일은 관계 속에서도 자주 나타난다. 타인과의 거리에 따라 기대치가 변하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거리가 가까워지면 기대치가 높아져 관계에 대한 평가와 관계로부터 오는 만족감 역시 낮아지기 쉽다는 얘기다. 분명 자신에게 바람직한 영향을 끼치는 좋은 관계임에도 가끔 회의감이 찾아오기도 하고, 나아가서는 득이 되지 않는다 판단을 내려 관계를 단절하기도 하는 것이다.  


물론 그렇다고 그게 잘못된 일이라고만 보기는 어렵다. 역으로 거리가 가까워짐에도 기대치가 전과 같다면, 사실 그 관계는 가까워지는 의미를 상당 부분 잃어버린다고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결국 일견 자연스러운 현상이긴 하지만, 판단을 정확하게 내리기는 분명 어렵기에, 가까운 사이일수록 관계에 대한 판단에 더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관계에 대해 객관적인 판단을 내리는 건 생각보다 굉장히 어려운 일이다. 고로 항상 합리적인 판단을 내릴 수 있을 거라 기대할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판단에 대한 어려움 자체와, 자신의 판단이 언제든 틀릴 수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는 게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 물론 그렇게 인지하는 것만으로는 여전히 객관적인 판단을 내리기 쉽지는 않겠지만, 적어도 더 나은 판단이 무엇인지 깨닫는 데에 조금이라도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다. 그런 뒤에야 더욱 건강한 관계는 이루어진다.


앞서 말한 것처럼 관계와 기대치를 떼어 놓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다만 가끔은, 특히 관계에 대해 많은 생각이 떠오를 때는, 자신의 기대치가 너무 높거나 낮은 것은 아닌지 생각을 정리해 보면 어떨까? 그것이 관계 속에서 쉽게 흔들리지 않는 기준을 잡아줄 수도 있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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