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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다 Feb 20. 2023

관계의 위험과 안전

안전관리업무를 담당하게 된 지 어느새 10여 년의 세월이 흘렀다. 자랑은 아니지만, 그 시간을 거치며 안전관리와 그 대책에 대해 어느 정도 눈이 트이게 된 것도 사실이다.


물론 나는, 이를테면 이에 관한 논문을 하나 쓸 정도의 전문가까지는 아니지만, 그래도 경험에 비춰보아 안전대책을 크게 다음의 두 가지로 구분해 볼 수 있을 것 같다는 정도의 의견을 내보고자 한다. 그 두 가지는 본질적 대책과 방법적 대책이다.


본질적 대책이란 위험요소 자체를 본질적으로 배제하는 대책을 뜻한다. 간단히 말해, 위험한 작업은 아예 실행하지 않는 것이다. 당연히 가장 안전하다는 강점이 있지만, 꼭 실행해야 하는 작업에는 써먹을 수가 없는 자못 극단적인 방법이라는 약점이 있다.


방법적 대책이란 위험한 작업의 위험요인을 줄이는 대책을 뜻한다. 안전장치를 설치한다던가, 보호구를 착용한다던가 하는 대책들이다. 제거할 수 없는 일정 수준의 위험성이 존재한다는 약점은 있지만, 유연하게 대처하며 실행할 수 있다는 강점이 있다.


그런데 이 일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비단 산업현장에서 뿐 아니라 어떤 분야에서든 안전을 위한 대책은 비슷하게 구분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자주 있다. 특히 타인과의 관계에서 상처를 입지 않기 위해 취하는 방법 속에서 이런 구분은 제법 명확하게 드러나기도 한다.


본질적 대책을 추구하는 이들은 타인과 관계를 쉽게 맺거나 진전시키려 하지 않는다. 또한 어쩌다 조금 진전된 관계 속에서도 위험요인이 발견되면 관계의 단절을 쉽게 떠올리기도 한다. 실제로 이런 행위들은 타인으로부터 상처를 덜 받는 대책이 될 수는 있다. 하지만 이는 어쨌든 회피의 일종으로, 지나치게 반복하다 보면 관계 '밖'에 머물 수밖에 없어 관계 '안'에서의 대책을 익히기는 어렵다.


방법적 대책은 결국에는 타인으로부터 상처를 받을 수 있는 가능성을 무시할 수 없다는 커다란 약점을 안고 있다. 하지만 그래도 어쨌든 관계 '밖'이 아니라 '안'에서 때로는 부딪히고 때로는 어울리면서도, 활용하기에 따라 스스로의 안전을 함께 도모할 수 있는 대책이다. 그래서 이를 익혀놓으면 불편하고 껄끄럽지만, 그러면서도 이어나가야 하는 관계를 언젠가 마주할 때 큰 도움이 될 수 있다.


안전성 자체만을 놓고 보면 방법적 대책은 본질적 대책을 결코 앞설 수 없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본질적 대책만을 추구하는 태도는 변화를 가져오기 어려운 경직된 태도에 가깝다. 그래서 이것이 궁극적으로 스스로의 안전을 추구하는 가장 좋은 대책인지는 생각해 볼 문제다. 만사가 다 그렇듯 지나치면 부작용이 생기는 것이다.


결국 때로는 시행착오를 감수하고 방법적 대책을 추구하는 태도도 취할 필요가 있다. 아마도 관계를 무시하며 살아갈 수 있는 사람이 아니라면, 오롯이 혼자서만 살아갈 수 있는 사람이 아니라면 더욱 그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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