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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다 Dec 14. 2022

공감할 수 없어도 애정할 수 있다

관계의 유지나 발전에 있어 공감은 상당히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 공감의 부재는 곧 서로 간의 공통분모의 부재와 같아 함께 나눌 수 있는 대화와 행동을 제한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공감은 대개 경험을 바탕으로 한다. 그래서 경험해보지 못한 경험을 겪은 이에게 공감한다 말하기란 어렵고, 그럴 때 억지로 짜낸 공감의 표현은 궁극적으로 가식의 영역에 일정 부분 발을 걸칠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이렇게 중요한 공감이 애정의 필요조건이냐고 묻는다면, 꼭 그렇지는 않을 것 같다. 어차피 누구에게나 공감하기 어려운 부분은 있게 마련이고, 그렇다면 우리는 그 누구도 애정할 수 없다는 결론이 도출될 수 있을 테니까.


애정이 있다면 공감이 아니더라도 어떻게든 방법을 찾게 마련이다. 경험하지 못해 공감하기 어렵다는 건 타인의 감정을 오롯이 느끼기 어렵다는 의미일 뿐, 그 감정을 아예 느낄 수 없다는 의미는 아니다.


차선책으로 이해라는 좋은 방법이 있기 때문이다.


자녀를 잃은 사람이 있을 때, 똑같은 경험이 없이는 그 심정이 어떨지 감히 공감한다 표현하기조차 쉽지 않다. 하지만 설령 자녀를 잃어본 경험이 없더라도, 더 나아가 자녀를 가져본 적조차 없는 이라도 그 슬픔을 충분히 이해할 수는 있다.


그래서 우리는 이렇게 말할 수 있는 것이다.


”나는 당신의 행동에 공감이 가지는 않지만, 왜 그랬는지는 이해한다.“

”그것은 분명 잘못된 행동이긴 하지만, 그래도 그 심정은 이해가 간다.“


그리하여 우리는 공감할 수는 없어도 이해할 수는 있고, 그런 이해를 토대로 얼마든지 애정할 수가 있다. 아마도 자신과 다른 타인을 애정할 수 있는 밑바탕에는 공감이 아니라 이해가 자리 잡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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