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개를 돌려 보니 어느새 네가 다가와 있었다. 파란 하늘과 눈부신 햇살을 뒤로한 채 언제나처럼 웃으며 서 있었다. 얼마나 눈이 부셨는지 똑바로 쳐다보지도 못했었지.
"응? 뭐라고?"
"어떤 날씨를 좋아하냐고. 해가 쨍쨍한 날씨, 함박눈이 내리는 날씨 같은 거."
나는 눈알을 굴리며 머릿속으로 생각했다. 내가 무슨 날씨를 좋아하지? 맑은 날이 괜찮긴 한데 그렇다고 딱히 기분이 즐거워지는 건 아니니까... 그런데 이런 건 왜 물어보는 걸까? 혹시 나한테… 아냐, 설마 아니겠지.
그러다가 문득 기억이 하나 떠올랐다. 왠지는 모르겠지만 비 내리는 날이면 빗방울 떨어지는 소리가 듣고 싶어 우산을 들고 일부러 거리를 거닐곤 했었다. 나는 대답했다.
하지만 이런 과정을 거쳐 대답해도 되는 걸까? 어떤 날씨를 좋아하냐는 물음에 대한 답을 머리를 굴려 선택해도 되는 걸까? 감정의 방향을 느낌이 아니라 생각을 통해 결정해도 되는 걸까? 그게 맞긴 한 걸까?
그것은 엄밀히 말하면 감정이 아니라 기억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좋아하는 감정이 아닌 좋아했던 기억. 과거를 회상할 때에야 그랬었지 하며 겨우 만져 보는 감정의 실마리.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 기억이 거짓된 감정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누르거나 눌려 있던 감정이 늦게나마 감춰있던 모습을 드러내는 것뿐이다.
감정은 순간적으로 찾아오지만, 우리는 꼭 그 순간에 감정의 정체를 정의내리지는 않는다. 그렇게 찾아온 감정을 시간이 흐른 뒤에야 떠올리며 그제야 정의내리기도 하는 것이다.
지나고 나면 더욱 선명해지는 감정이 있다. 마주했을 때가 아니라 뒤돌아설 때 비로소 솟구치는 감정이 있다. 그 감정은 때로는 후회가, 때로는 슬픔이 된다.
나의 대답에 똑같은 날씨를 좋아한다며, 웃으며 반기던 너의 모습이 떠오른다. 좋아하는 감정은 느낌이 아니라 기억을 통해서도 쉽게 다가온다. 이렇게 비 내리는 날이면 어김없이 함께 내려와 그날의 감정을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