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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다 Dec 25. 2020

관계의 깊이

사람들은 저마다 타인들과 수많은 관계를 맺으며 살아간다. 그리고 그 관계의 깊이는 모두 다른데,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은 나와 상대방이 동일한 관계에 대해 서로 생각하는 깊이 역시 다를 수 있다는 거다.

 

관계의 깊이는 무엇에 달렸을까? 성별에 따라, 나이에 따라, 사회적 위치에 따라, 얼마나 자주 접촉하는지 등에 달려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런 많은 이유들을 하나로 묶을 수 있다면 '상대방에 대해 얼마나 많이, 정확하게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지'에 달려 있다고 말하고 싶다. 결국 서로 다른 정보의 양과 정확성에 따라 관계의 깊이가 결정된다는 이야기다.


타인과 관계를 맺는 궁극적인 목적은 결국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이다. 그것은 흔히 천륜이라고도 일컫는 혈연관계에서도 적용된다. 자신의 생각과 너무 달라 만나기만 하면 마음이 불편해지는 부모님과의 관계가 단절되는 일, 대화가 전혀 통하지 않는 데다가 서로 자신의 주장만 내세우고 싸우기만 하는 형제자매와 관계가 멀어지는 일들은 흔하다. 반면 자신의 말을 잘 들어주고, 공감해주고, 위로해주고, 함께 눈물 흘려주는 친구와의 관계는 때로 그 어떤 관계보다도 가까워지기도 한다. 결국 모두들 자신에게 이익이 되기 때문에 관계를 맺고, 유지하고, 또 발전시키고자 하는 욕구를 갖게 된다. 그리고 이익이 될 수 있는지 여부를 결정하는 판단기준이 바로 타인에 대한 정보의 양과 정확성이기 때문에, 이에 따라 관계의 깊이 역시 정해지는 것이다.


그래서 타인과의 관계는 이 정보에 따라 가까워지기도, 유지되기도, 멀어지기도 한다. 관계의 깊이가 깊어지다 보면 그 사람에 대한 정보를 더 많이, 더 정확하게 알고 싶은 욕구가 생기고, 그 욕구를 충족하기 위해 메시지를 주고받고, 나아가 직접 만나서 정보를 얻고 싶어지는 것이다. 친한 친구를 오랜만에 만나면 얼굴만 봐도 반갑고, 또 안부인사를 주고받으며 웃지만, 결국 필요로 하는 것은 서로의 정보이다. 친구가 뭘 하며 지내는지, 새로 생긴 취미는 없는지, 만나던 연인과는 잘 지내는지... 이렇게 서로 가지고 있던 정보를 새로이 공유하는 이유는, 관계의 깊이가 얕아지는 것을 두려워하여 정보의 공유를 통해 관계를 다시 깊게 다져나가기를 원하기 때문이다. 또한 우리는 이것을 흔히 그 사람에게 '관심이 있다'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즉, '관심이 있다' = '정보를 필요로 한다' = '관계의 깊이가 깊어지길 원한다'는 뜻이다.


그런데 관계의 깊이가 충분히 깊고, 관심이 있고, 정보를 많이 공유하는 사이에서도 관계가 멀어지는 일은 흔하다. 지금까지의 생각과 판단의 흐름으로 봤을 때는 있을 수 없는 일임에도 말이다. 그러한 일이 벌어지는 경우는 하나뿐이다. 바로 서로에 대한 정보의 정확성이 낮은 경우다.


앞서 사람마다 관계의 깊이가 다른 이유를 '타인에 대해 얼마나 많이, 정확하게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지'라고 말한 바 있다. '알고 있는지'가 아니라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지'라는 거다. 이렇게 말했던 이유는, 정보의 양과 정확성은 항상 잘못 판단될 수 있는 것임에도 자신이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만으로 관계의 깊이가 깊어지는 것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러한 관계는 어느 순간에 이르러 깊이가 얕아질 수도, 심지어는 종말에 이를 수도 있다. 상대방에 대해 많이 알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사실은 모르는 부분이 많았음을 알게 되는 경우, 또는 그 정보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는 경우이다. 예시로는 누군가의 본성을 뒤늦게 발견하고 실망하는 경우, 자신을 속였다고 생각하게 되는 경우들이 있을 것이다.


우리는 결코 타인에 대한 모든 것을 알 수는 없다. 부모 자식, 절친한 친구, 연인, 부부관계 모두 마찬가지다. 그저 다른 관계보다는 좀 더 깊은 관계일 뿐이며, 다른 타인보다는 좀 더 알고 있을 뿐이다. 그나마도 얼마나 알고 있는지, 정확하게 알고 있는지조차 확실하지는 않다. 확실했다면, 깊이 알던 사람과의 단절, 연인과의 이별, 부부간의 이혼과 같은 일이 쉽게 일어날 수 없을 테니까. 이는 타인과의 관계의 깊이에 대해 쉽게 판단해서는 안 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수많은 소중한 관계들에 대해 우리는 얼마나 관심을 가져왔을까? 많은 관심이 있었던 시간들이 지나고 지금은 그 관심이 사그라들지는 않았을까? 쌓아온 관계의 깊이가 깊고, 그 벽이 단단하다면 쉽게 무너지지는 않겠지만 언제 위기가 찾아올지는 모르는 거다. 관계의 깊이가 깊을수록, 그만큼의 깊이의 벽을 보수하고 더 단단하게 만드는데 필요한 '정보'의 양은 더 많은 법이니까. 관계의 소중함을 깨달았다면, 얼른 눈을 돌려 대화를 나누며 정보를 공유해야 할지도 모른다. 모든 관계는 유지와 발전을 위해 항상 서로의 정보를, 관심을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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