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한국 직장에서 퇴사한 지 5년이 되었다.

by 콘월장금이

시드니에 도착했다.

11월의 시드니는 한국의 차가운 공기와는 반대로 뜨거운 공기가 피부에 와 닿는 게 생소하게 느껴졌다.

저가 항공사를 이용해 도착한지라 비몽사몽이지만, 숙소를 찾아 떠난다.

생각보다 비싼 호주의 물가에 깜짝 놀라 그나마 시티 내에서도 제일 저렴한 숙소를 예약했다.

8인실 혼성 룸이다.

이미 누군가 이곳에 살고 있는 건 아닌가 싶을 정도로 자전거, 옷가지, 작업화 등이 어수선하게 널브러져 있었다.

숙소 체크인을 한 뒤에는 피곤한 몸을 이끌고 시드니의 명물 오페라 하우스를 보러 걸어갔다.

구글맵만 믿고 30분 정도 더 걸어간 것 같은데, 피곤해서 그런지 아니면 어느 정도 관광지에 익숙해진 눈 때문인지 어마어마한 감동을 느끼진 못했다.


그 날 저녁, 8인실 혼성 룸에 여자라고는 나 혼자였다.

시차는 별로 차이 나지 않았지만 도시의 불빛은 밤늦은 시간까지도 꺼지지 않았고 무엇보다 머리맡에 놓인

누군가의 신발에서 나는 꼬랑내가 자유로운 호흡을 방해했다.

아, 빨리 이곳을 벗어나야지... 싶은 생각과 함께 미리 3일 치를 지불해버린 나의 성급함에 아차 싶었다.

가지고 온 돈은 한화로 약 백만 원. 이미 6개월가량 배낭여행하고 비자 준비까지 하느라 여윳돈이 있진 않았다.

그래도 어떻게든 되겠지라는 생각으로 왔는데, 추후 누군가에게 조언하자면 정착금을 넉넉히 가져가라고 말해주고 싶다. (라고 하면서 나중에 가게 된 캐나다 워홀에도 백만 원만 환전해서 가게 되었다.)


다음날부터 당장 살아야 될 셰어하우스를 구하러 돌아다녔다. 일단 시티는 너무 비쌌고, 자리도 얼마 나오지 않았다. 한인타운으로 불리는 스트라스필드라는 곳에 가게 되는데 지금은 기억이 잘 나진 않지만 아마 집을 두세 개 정도 보다가 주당 100달러인 여자 4인실 셰어 룸에서 지내게 된다. (나중에 알고 보니 대략 20명이 두 개의 화장실을 나눠 쓰는 단독 주택형 쉐어하우스 였다.)


다음으로 해야 할 일은 일 구하기다.

쉐어하우스 보증금을 내느라 가져온 돈이 약 300달러 정도 남았다. 이 말은 빨리 일을 구해야 한다는 소리인데, 일단 닥치는 대로 다 면접을 다녔다. 그해 2월에 퇴사하고 11월이 된 지금 피부 전공인 내 손이 그 사이 굳어진 건 아닐까 하는 우려가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한인 피부과에 면접을 보러 갔을 때 시급을 얼마 받고 싶냐는 물음을 들었다. 최저시급이라도 받고 싶다고 했다. 그러나 돌아오는 답은 이미 6개월 정도 쉬지 않았느냐 라는 식의 말과 조근조근한 말씨 그러나 냉정하게 최저 시급을 줄 수 없다고 했다.

한국에서의 경력은 6년 차였지만, 호주에서는 최저시급도 받을 수 없는 맨땅에 헤딩하는 워홀러가 된 것이다.


7개의 면접 중 6개에서 최저 시급에 한참 못 미치는 혹은 반절에 더 가까울지도 모르는 시급을 들으면서 아.. 호주 워홀러의 현실이 이런 것일까 라는 자괴감에 빠졌다. 영어가 부족하고, 당장 돈이 급하니 어쩔 수 없이 일해야 하는 상황인 것이다. 수요보다 공급되는 자리가 적으니 손해 보더라도 일은 구하는 게 맞는 것일지도 모를 상황이었다.


그러다 든 생각 한 가지.

내가 불법 체류자도 아니고, 합법적인 워킹 비자를 가졌는데 왜 최저 시급도 받지 못하는가에 대한 의문.

호주에 왔으면 적어도 호주 애들이 받는 최저 시급 대우는 받아야 된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우리나라 시급이 당시에 7천 원 정도인 거 같은데 그 누구도 4~5천 원 받고 일하고 싶지 않은 그런 심리인 거다.


지칠 대로 지친 마음으로 다음 면접을 갔다. 지금 생각해보면 면접의 기회라도 잡은 게 얼마나 다행인가 싶기도 하다.

약속한 시간에 도착해서 실기부터 간단한 면접 인터뷰를 했다. 영어가 부족해서 엉뚱하게 알아듣거나 대답하기도 했는데, 운이 좋게도 집으로 돌아가는 길 오늘부터 당장 일해줄 수 있냐고 연락이 왔다.

아마 무척이나 바쁜 곳이었는가 보다.

다행히 시급도 최저시급보다 1달러 높았고, 한 달이 지나면 1달러를 더 올려준다고 했다.

어쩌면 누구나 보호받는 최저시급 제도가 당연하지 않은 상황에 부딪히니 이 연락 한통이 얼마나 감사했는지 모른다.

이력서 작성부터 면접까지 드디어 출근만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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