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부녀가 되었습니다.
영국워홀을 끝내고 한국으로 갈 때 나는 다시 런던으로 돌아오는 왕복 항공권을 가지고 한국행 비행기에 올랐다.
그 사이는 3개월 정도의 텀이 있었고, 오래도록 마음에 품어둔 발리에 가서 요가자격증을 따고 가족과의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어느덧 시간이 흘러 5월의 초중순이 되었을 때 다시 돌아간 영국의 정착지는 런던이 아닌 콘월이라는 서남쪽에 위치한 곳이었다.
내가 영국워홀이 끝나갈 무렵 약 1년 반정도 만남을 지속하고 있는 남자친구는 영주권을 취득했고, 동시에 연구원에서 조교수라는 타이틀로 학교를 이동하게 되었다.
그런 이유로 우리가 작년에 그저 휴가로만 왔던 콘월이라는 지역에 자리를 잡게 된 것이다.
남자친구는 이제 갓 이사를 한지라 동네 및 학교 적응을 해나가는 시기였고, 나는 사실 별 생각을 하진 않았으나 콘월은 여름이 아름다운 휴양지로 유명한 곳이라 망하더라고 이곳에서 여름을 지내리라는 마음으로 갔었더랬다.
결혼적령기 또는 이미 혼기를 살짝 놓쳐가는 우리에게 결혼은 저 뒤쪽에서 멀찍이 지켜보고 있는 느낌이기도 했다.
나에게 주어진 관광비자 시간은 6개월,
그 시간의 중간쯤을 채웠을 때 우리는 이미 콘월 지역을 두 손을 잡고 때때로 발을 맞추며 하이킹으로 누비고 다녔다. 연애가 아닌 동거로 먹고 자고 보이고 싶지 않은 누추한 모습을 보일 때에 생각보다 이 사람과 살만 하잖아?라는 생각이 떠오른 거다.
그다지 불편하지 않고 꽤나 편안하기도 한 이 감정상태는 뭐란 말인가? ( 그도 그럴 것이 일단 우리는 각각 셰어하우스 생활을 꽤 오래 했던지라 타인과 같이 사는 삶에 어느 정도의 룰과 배려 같은 것에 익숙해져 있었다.)
결혼이라는 것은 어느 정도 남자의 푸쉬에 의해 일어나는 일이라고도 하던데, 지금 생각해 보면 자연스럽게 어쩌면 이미 남자친구는 부모님의 푸쉬를 받고 있던지라 그게 나에게까지도 닿은 것이다.
우리는 결혼을 결정했다. 프로포즈를 해야 하느냐 묻는 남자에게 나는 안 해도 된다고 말했다. ( 영국에서의 결혼식이 끝난 지금 생각해 보면, 결혼에는 무슨 과정이 그리 많고 준비 및 물건들이 필요한 것인지 어느 부분에서는 불필요하다고 느꼈다.)
곧이어 엄마에게 그리고 아빠, 가족 카톡방에 결혼 예정 사실을 알렸다.
이게 무슨 만우절도 아니고 뭔 소리여?라는 듯 가족의 반응은 어이없어하기도 했고 나 답다고도 했다.
그렇게 두 달 정도의 준비기간을 거쳐 영국에서 세레모니 및 혼인 신고까지 다 했고 결혼 일주일 후, 나는 홀로 한국으로 가는 비행기에 몸을 싣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