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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프셉 Aug 29. 2022

4월 19일(#3 D6) : DNR과 POLST

데이 첫날, 사망 퇴원.

첫 번째 데이 근무.

데이 근무에 대한 설명을 시작도 안 했는데, 자리에 앉자마자 처치실에 있는 환자의 보호자가 연명의료 이행서를 작성했다. 안타까운 마음으로 인수인계를 시작했는데 초면인 50대 여성. 오늘 나와 프리셉티가 배정받은 환자였다.


‘연명의료 결정제도’는 2018년 2월에 생겼다. 국립 연명의료 관리기관의 홈페이지에 있는 정의에 따르면 의학적으로 회생 가능성이 없고, 적극적 치료에도 불구하고 반응하지 않으며, 급격히 악화하여 사망이 임박한 임종과정에 있는 환자에 대하여 환자의 최선의 이익을 보장하고 자기 결정을 존중하기 위해서 만들어졌다. ‘심폐소생술 거부’(DNR; do not resuscitate) 와는 비슷한 듯 다른 내용인데, 18년도 이전에는 DNR을 작성하면 작성한 병원에서, 작성된 입원기간에만 적용되었고 그 서류를 사용할 일이 없었다면 폐기했다. 하지만 연명의료결정제도가 생긴 이후로는 ‘사전 연명의료 계획서’(POLST; Physician Orders for Life-Sustaining Treatment)를 작성하면 타 병원에서 작성했어도 현재 재원 중인 병원에서도 표시가 된다. 본인의 의지에 따라 수정이 가능하지만, 모든 의료기관에서 환자의 의견을 공유할 수 있게 되었다. 또한 상태가 정말 악화되어 환자의 계획서에 있는 항목들을 (항암, 승압제, 투석 등등) 반드시 해야만 할 때 담당의와 다시 면담하고 ‘연명의료 이행서’를 작성하기 전까지는 환자의 의견이 ‘결정’을 내린 것이 아님을 이해해야 한다. 물론 그 결정도 번복, 수정 가능하다는 점도 기억하자.


연명의료에 대한 짤막한 설명과 함께 인수인계가 끝나고 처치실의 환자부터 확인했다. 환자의 이행서에는 모든 항목을 하지 않는다고 표시되어있었다. 보호자는 친지들에게 전화하느라 바빠 보였다. 환자의 비재호흡 마스크는 아주 천천히 부풀었다가 쪼그라들었다를 반복했고, 모르핀이 인퓨전 펌프로 지속적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담당의가 환자를 보러 들어왔다가 나갔다. 그리고 환자의 심전도가 일자로 그려졌다.


프리셉티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잔뜩 울음을 참고 있는 얼굴이다. 나 역시도 알고 있는 얼굴이다.

나도 그럴 때가 있었다. 눈물을 닦으며 더 이상 숨을 쉬지 않는 환자에게 혈압계를 감고 계속 다시 재고 있었다. 그때 나의 프리셉터 선생님은 이렇게 말했었다.

정신 차려! 나머지 환자들은 너만 기다리는데 네가 이러고 있으면 어떡해!

정신이 번쩍 들었다. 나는 지금 간호사고, 나는 책임진 환자가 많다는 것을 다시금 깨달았다. 거기서 보호자와 같이 우는 것도 분명 아름다운 일이지만 내가 간호사로서 프로답지 못해서 사망한 환자의 보호자들이 장례식장에 대한 안내를 받지 못하거나, 서류를 빠뜨리거나, 다른 환자들의 항암 화학요법의 시간이 제대로 맞지 않거나, 심박수가 널뛰는 것을 발견하지 못한다면 그것은 더 이상 아름답지만은 않다는 걸. 보호자분들이 고인과 편안히 인사하고 병원 절차 때문에 힘들어하지 않도록 응대하는 게 담당 간호사로써 마지막으로 해드릴 수 있는 일이고, 나를 기다리고 있는 나의 다른 환자들도 치료를 위해 절박하게 입원 중이란 걸 잊지 말아야 한다.


재차 신규 선생님을 불렀다. 차마 내 프리셉터처럼 따끔하게 말하지는 못하고 멍하니 서있는 내 프리셉티를 재차 부르기만 했다. 그리고 애써 아무렇지도 않은 척 사망환자를 위한 업무를 시작한다.

     

- ‘더 이상 아무것도 하기를 원치 않는’ 환자의 무수축(asystolic)을 발견하면 심전도를 출력한다.  
- 담당의에게 보고하고 사망 선언 시 함께 할 보호자를 확인한다.
- 담당의는 사망 선언 후 사망진단서를 작성한다.
- 간호기록에는 사망시간, 담당의 호출 시간, 담당의 도착시간, 담당의의 사망 선언 한 시간, 함께 했던 보호자에 대한 내용이 들어간다.
- 환자의 보호자들은 잠깐 밖에서 대기하도록 하고 환자의 얼굴과 몸을 정리한다. 모든 관, 모니터, 산소 등 달고 있던 모든 것을 제거하고 혈액과 토사물, 대변 등을 닦고 깨끗한 환의로 교환한다. 관을 제거한 부위가 너무 벌어지거나 분비물이 계속 나올 경우 꿰매고 드레싱을 한다.
입이나 눈이 열려있다면 사후 경직이 오기 전에 감겨드린다. 투병으로 지친 모습이 아니라 최대한 신속하고 예쁜 모습으로 도와드린다.
-그리고 나서야 보호자분들의 면회를 시작한다. 장례식장으로 내려가기 전에 마지막 인사의 시간이다. -이후 보호자분들의 마음의 준비가 되었다면, 사망진단서의 주소와 장례식장을 확인해야 한다. 본원이라면 담당 간호사가 직접 장례식장에 빈자리가 있는지, 가격과 조문객은 몇 명이 올 수 있는지 확인해야 하지만 타 병원이나 지방인 경우 보호자분들이 알아보셔야 한다. 그리고 모시러 올 시간을 확인한다.
-사후 처치에 대한 비용을 입력하고, 필요한 서류를 확인하여 준비하고 심사를 진행한다.
-퇴원 계획지에는 ‘사망 퇴원’, 퇴원교육은 ‘보호자에게로’ 입력해야 하고 처치에 대한 간호기록, 담당의 면담 기록, 실제로 장례식장으로 내려간 시간도 기록해야 한다.
-사망 심전도는 의무기록으로 내린다.
-심사가 완료되면 수납안내를 하고, 환자를 장례식장으로 내릴 때는 환자 확인 팔찌를 끊지 않는다.


퇴원에 대한 개념을 배우지도 못했는데 벌써 사망 퇴원을 배워버렸다.

설명했던 부분들 중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은 넘어가고 나중에 다시 알려주기로 했다.

점심도 먹지 못하고 집으로 향하는 프리셉티의 발걸음이 마음에 박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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