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나프셉 Dec 31. 2022

4월 29일(#3 D16):SN이 ON를 만났을 때

학생간호사들이 잘 모르는 병동이야기

 저번시간까지 너무 어려운 주제를 다루었던 게 아닌가 싶다. 안타깝게도 ON간호사들은 regimen공부를 피할 수 없기 때문에 잠깐 다루었다.

 

 숨을 돌리기 위한 주제를 고르고 골라 이번 시간에는 '학생간호사들이 혈액종양내과 실습을 오면 꼭 봐야 할 것'들을 짚고 넘어가려고 한다. 전공 서적에서는 한 줄로 나왔던 내용이 실제 임상에서 엄청 다양하게 적용되고 있는 경우가 많은데, 이를 연결해서 보지 못 경우가 정말 많다. 그걸 보여주고 싶다. 보고 갔으면 좋겠다.

 또 다른 실습지에서 무엇을 보고 와야 할 것들을 정리해 보았다. 또한 혈종을 사랑하는 개인적인 생각이 많이 담겨있으므로 그냥 '그렇구나.' 정도로 읽고 지나가길 바란다.


-병원/ 병동에 가서 보고 올 것


1) 신규간호사가 받는 대우를 유심히 살펴보자. 

분위기가 좋은 곳일수록 신규간호사를 챙겨준다.

아무리 안 보려고 해도 3일 정도 같은 곳으로 실습을 나가면 보면 보인다.

또한 모든 병원이 프리셉터-프리셉티 제도를 운영하지는 않는다. 동기에게 일을 배우는 병원도 많다. 혼나진 않겠지만 정확할지는 알 수 없다. 반대로, 처음 만난 프셉이랑 영 안 맞아서 고생할 수도 있다.  

내가 실습할 때는 도망갔다가 잡혀온 신규선생님도 본적 있는데, 빨간 염색을 빼지도 못하고 다시 붙잡혀왔다고 했다. 정말 일하는 내내 우울해 보였고, 나보고 도망치라고 했다. 다행인지 요즘은 사직하는 신규선생님들을 설득하지 않고 보내주는 추세다. 적성에 안 맞을 수도 있지!


2) 머리, 손톱, 액세서리 등도 병원마다 제한이 다르다. 

집게핀과 크록스, 반지, 편안한 유니폼은 간호의 질적 차이를 만들지 않는다. 때문에 각 병원 노조에서도 적극적으로 규율을 완화하자고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3) 간호제공 방법(team nursing/ funtional)

 나는 두 가지 제공방법을 다 겪었는데, 확실히 반복적인 업무를 익히기에는 펑셔날이 적합한 것 같다. 응급실과 같이 즉각적인 처치가 수도 없이 이루어져야 하는 곳은 펑셔날이 확실히 낫다.

하지만 역량을 키우고 생각하는 힘을 기르는 것, 환자와의 라포를 쌓는 것은 팀널싱이 좋은 것 같다는 개인적인 생각이다. 물론 업무를 익히기 바쁜 신규선생님들은 팀널싱의 인수인계의 벽에서 좌절을 경험하지만, 이 역시 지켜본 결과 독립하고 6개월이면 다들 극복하는 것 같다.


4) 한 간호사가 맡는 환자 수

 학생들이 볼 수 있는 평일의 담당간호사 수와 주말, 나이트 담당 간호사 수는 차이가 있을 수 있다. 하지만 대학병원이라 해도, 병동마다 담당하는 환자의 수는 조금 다르고 물론 중증도도 다르다. 담당하는 환자가 한 명 줄어들면 업무부하도 차이가 생긴다. 또 OT(오리엔테이션/병원소개를 말한다.) 받을 때 간호사수당 환자수를 1:6이라고 했다면, 이 '간호사수'라는 말에는 그날 오프인 간호사도 모두 더한 의미이기 때문에 실제 출근했을 때는 1:9~10 정도의 어사인을 받는다. '한 명쯤 더 보면 어때?'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조금 과장해서, 한 명 덜 보면 물을 한 번 더 마실 수 있다고 생각하면 된다.

'라떼는' 18명까지 어사인을 받아봤는데, 물론 거의 다 걸어 다니는 경환자였지만, 정말 누가 누군지 하나도 모르겠더라. 약도 겨우겨우 시간 맞춰서 주는데, 이름이랑 생년월일만 겨우겨우 봤다. 진단명, 이 약을 왜 먹는지, 지금 하는 시술이 뭔지 하나도 몰랐다. 나는 내가 바보라서 그런 줄 알았다. 그냥 절대적인 시간부족이었는데, 그때는 그랬다.


5) 병원에서의 노조의 위치.

노조가 있는 병원도 있고, 없는 병원도 있다. 있는데, 구색만 겨우 맞춘 경우도 있다. (사무실에 명찰만 있다던가..) 가입하는 것이 좋다, 나쁘다는 말하기 어렵지만 노조가 간호사들을 위해 꽤 많은 노력을 한다는 것을 알아줬으면 좋겠다. 위에 나온 간호사의 옷차림이나, 구내식당 반찬, 월급 등 아주 피부로 와닿는 내용에 힘써주기도 하고 신규간호사의 오프, 수당을 챙겨주는 것은 노조뿐이라고 생각한다. 또한, 연말에 신규간호사들이 짧은 옷을 입고 춤추는 그런 일도 막아준다.


6) 간호간병서비스 제공 유무

거동이 불편한 환자들도 병원비 부담을 줄여 입원할 수 있는 제도이다.

간호사들이 많은 간호를 직접적으로 제공하는 대신에 간호사당 환자수가 적고 추가로 간호사를 도울 수 있게 간호조무사가 15~30명당 1명 정도 병동에 근무한다. 일반 병동이 보호자나 간병인을 응대해야 했다면, 간호간병에서는 간호조무사들과 긴밀한 협조가 필요하다. 또한 환자가 웬만큼 위중해서는 보호자가 상주할 수 없어 보호자들이 유선으로 환자상태를 묻는 경우가 많은데, 이는 개인정보보호법에 위배되므로 전화도 신중하게 받아야 한다.

또한 관급식부터 스푼피딩,  목욕, 세발, 배변배뇨, 이동 등의 모든 기본간호부터 CPR까지, 간호학사 4년 동안 공부한 모든 것을 숙달하기에는 간호간병 병동만 한 곳이 없다고 생각한다. 중환자실은 무섭고, 임상술기를 해보고는 싶다면 강력 추천한다.

간호간병서비스의 단점을 꼽자면, 목욕이나 세발을 제공하는 병동도 많은데 이때는 근무 중인 모든 간호조무사가 라운딩을 함께 간다. 때문에 1~2시간을 온전히 남은 간호사들이 알아서 해결해야 하고, 이송 등의 업무는 간호조무사에게 요청이 금지된 병원도 봤다. 그래서 담당간호사가 가더라.  간호사가 하지 않아도 되는 일도 전부 간호사가 수행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런 경우도 있다. 병원마다 다르긴 한데 ‘보호자가 상주해야 하는데 보호자가 없어서 상주 못하는 사람’을 간호 간병서비스 병동에 넣는 경우가 있다. 의식이 온전하지 않은 DT환자가 그런 경우가 많았는데, 보호자가 있다가 몰래 도망가서 전동 왔었다. 보호자는 도망칠 수 있지만 담당간호사는 머리부터~발끝까지 오롯이 감당해야 한다는 슬픈 경우들이었다.


 위의 내용들은 한 병원의 한 병동만 보고 판단해서는 안된다. 로테이션을 여러 번 해본 결과, 병원은 하나이지만, 각 층마다 분위기가 매우 다르고 업무 방법도 달랐다. 수선생님의 재량과 부서의 특색에 따라서도 달라졌다. 학생간호사가 볼 수 있는 부분은 부서의 단면뿐이겠지만, 안 보고 오는 것과는 차원이 다르다고 생각한다. 가보고 싶은 병동이 있었다면 다녀온 동기들에게라도 꼭 정보를 물어보자.


-혈액종양내과 병동에 가면 보고 올 것

이미 앞에서 중요하게 다룬 내용들도 있고, 앞으로 다룰 내용의 일부분이라고 할 수 있다.

꼭 '혈액종양내과'에 나갔다고 해서 아래의 내용만 볼 것이 아니라, 보이는 '내과병동'의 모습을 보고 오면 성공이다. 많이 쓰는 항생제, 수액, 간호사가 환자에게 설명하는 내용들을 중점으로 공부하면, 입사 후에도 큰 도움이 된다. 당장의 실습과제로도 벅찬 학생선생님들에게 너무 잔소리 같겠지만, 정말이다.


1) 항암화학요법

빨간색, 노란색의 다양한 항암제를 관찰할 수 있는 곳은 역시 혈액종양 내과가 아닐까?

학생선생님이 보기에는 사실 너무 어려운 내용이다.

본인이 뜻이 있지 않은 이상 혈액종양내과에 지원하는 신규간호사는 거의 없는 상황에서 학생선생님들한테 항암화학요법에 대해서 자세히 설명해주지는 않는다.

다만, 간호사들이 어떻게 항암제를 만지고, 확인하고, 투약하는지를 관찰해 보자. 일반 수액과는 분명히 다르게 조제/보관/투약을 하고 있을 것이다.

특히 요즘 신약들의 투약이 까다로운데, 저단백필터 같은 경우 역방향으로 flushing 해야 하고, 블린사이토는 속도와 용량이 변경되면서 약 28일씩 연속으로 투약하는 등 다양한 투약을 관찰할 수 있다.

욕심이 있다면 실습을 나가는 병원에 교수님들이 어떤 암으로 유명하신지 미리 알아보고 (홈페이지 등에 주 진료과목 및 관련 진단들이 적혀있다.) 이후에 그 병원의 혈액종양내과 병동에서 많이 쓰는 항암제를 연결하여 공부해보는 것을 추천한다.


2) 통증조절

외과 병동에서 하는 통증조절과는 결이 좀 다르다는 점만 이해하면 된다.

암성통증에는 AAP나  tramadol도 거의 사용하지 않는다. 앞서 다뤘듯이 큰 효과를 보지 못하기 때문이다.

대신 다양한 마약을 짧은 간격에도 자주 투약한다. 보통 4시간 간격을 지켜서 투약하려고 하지만, 지속적인 통증 호소 시에는 활력징후 측정 및 담당의 보고 후에 1-2시간 이내에도 반복해서 투약한다. 천정효과가 없고, 통증이 조절되면 삶의 질이 많이 차이 나기 때문에 시간 간격을 무시하고라도 투약한다. 중독에 대한 리스크보다 환자의 삶의 질이 더 중요하다는 판단이다.


3) 수혈

수혈은 다른 병동에서도 많이 수행하는 업무이다. 하지만 RBC, PC, pheresis, FFP, cryo 등의 다양한 혈액을 볼 수 있는 것 역시 당연히 혈종뿐이라고 생각한다. 그만큼 혈액을 많이 다룬다. 학생선생님들은 각각의 혈액에 대해 '왜 주는지?', '어떤 경로로 주는지?', '몇 시간 주는지?' 정도 공부를 하고 오면 도움이 된다.

어제 혈액이 없어서 수혈하지 못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당일 혈액검사 결과를 확인하고 수혈 여부를 결정한다. 병동에서 수혈 처방을 확인해보면 암환자들은 보통 저장 전 혈액 또는, 방사선조사혈액으로 처방된다. 방사선처리를 위해 일반 혈액보다 2시간 정도 더 걸리는 편이므로 출혈이 엄청나거나, 응급상황일 때는 농축적혈구 혈액으로 처방받기도 한다. 방사선조사 혈액들의 필터는 다루기가 까다롭고 비싸서 다른 병동에선 보기 어려우니 꼭 구경이라도 하고 가자.

다양한 혈액의 투여 방법에 대해서는 다음시간에 자세히 알아보도록 하자.




 학생 간호사들이 병동에 오면 부탁할 말이 있다. 다음의 극단적이었던 학생간호사를 보고 '절대 이렇게 하지 말아 달라.'라고 말이다.

 그 학생은 실습 내내 스테이션에서 팔을 괴고 앉아있다. 하루종일 빈 병실만 찾아 들어가서 쓸모도 없는 안내책자만 보고 있다. 환자에 손끝도 닿지 않으려고 한다. 그렇지만 질문은 권리인 줄 안다. 내가 마치 간호과정을 짜주는 사람처럼 질문한다. 그리곤 벽에 붙어서 구경만 한다. 사진만 찍는다. 간호사실 한가운데에서 인스타 하다가 날 보고는 학생은 바이탈 하러 오는 거냐고 묻는다. 빙빙 돌리는 질문이, 아무래도 본인이 바이탈 하는 기계라고 생각하나 보다. 이쯤 되니 웃음이 나왔다.

 활력징후를 측정하고 이 수치가 무엇을 의미하는지도 몰라서 열이 38도지만 1시간 뒤에 담당 간호사에게 알려줬다. 주작일 것 같지만 진짜 일어났던 일이다. 환자는 유니폼을 입은 사람이 측정해갔으니 바로 중재를 해주리라 생각했는데, 1시간째 아무것도 안 해줘서 잔뜩 화가 나있었다. 정확한 바이탈 측정뿐 아니라 결과가 정상 값이 아닐 경우 담당 간호사에게 알려달라 설명하자마자, 그 옆 환자는 수축기 혈압이 170mmHg으로 측정된 것을 발견했다. 어제도 이렇게 혈압이 계속 높았다며 원래 이런 환자였다고 그 학생간호사가 덧붙였다. 투석하는 환자였고 어제는 베타블로커가 추가 투약된 환자였다. 한숨은 조금 나왔지만 학생간호사이기도 하고 (그 환자들이 내 환자도 아니었고,) 내가 끼고 가르치는 프티도 아니어서 지적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 학생간호사는 활력측정을 ‘측정’만 하고 결과 값을 이해하지는 못한 것 같다. 또한 '어제도 그래서 오늘도 경과관찰 할게요.'라는 'dicision'과 'target설정'은 담당의가 하는 것이지 본인이 할 몫이 아니란 걸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 간호사를 정말 하고 싶은 건지 궁금한 학생간호사이었다. 물론 물어보진 않았다. 그냥 빨리 실습기간이 끝나길 기도했다.

 다녀간 지 몇 년이 되었지만 아직도 뇌리에 생생한 학생간호사다. 얼굴도 잊어버렸는데 함께했던 시간이 잊어 혀지질 않는다. 긍정적인 부분을 굳이 꼽자면 그다음 주 학생간호사들이 뭘 해도 예쁘고 똑똑해 보였다는 점이랄까.

 절대로 모든 학생간호사가 위와 같지 않다. 팔도 아프고 다리도 아플 텐데, 아기 같은 학생간호사들이 와서 활력징후도 측정해주고 말동무도 해주면 그만큼 고마운 게 없다. 다만 학생간호사들이 아직도 실습비를 내는 것으로 알고 있다. ‘돈까지 내고 배우러 왔다면 뽕을 뽑아가야 하지 않을까?’ 하는 노파심에 말이 많아졌다고 생각해줬으면 좋겠다.


한해가 또 지나고 있다. 23년에 간호사가 될 여러분들과, 간호학과에 입학하는 여러분들, 그리고 학년이 올라가는 학생선생님들 모두 임상에서 웃는 얼굴로 만나기를 바란다.

작가의 이전글 4월 28일(#3 D15):regimen 읽기 2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