붓다와 제자들, 벽지불의 깨달음의 차이

선불교 대승불교가 아닌, 붓다의 원음을 찾아서 - 초기불교 이야기


질문1) 나반 존자는 스스로 깨달았다는데 그도 부처가 될 수 없는 건가요?

질문2) 우리도 열반할 가능성은 있어도 부처는 될 수 없는 건가요?

질문3) 부처님의 제자인 분들에게는 -불 이라고 붙이지 않는다고 하셨는데요. 그렇다면 부처님의 깨달음과 제자들의 깨달음에 차이가 있다는 것일까요?



답변1)


[나반 존자]

남인도의 천태산에서 홀로 수행하였다는 성자로, 과거·현재·미래의 모든 일을 꿰뚫어 알고, 중생에게 복을 주고 그의 소원을 성취시켜 준다고 함. 사찰의 독성각(獨聖閣)에 봉안함.

- 시공 불교사전


홀로 깨달은 이를 '벽지불' 이라고 합니다 - 질문 내용처럼 '불'은 '불'이네요. ^^

여기서 '깨달음' 이란 표현은 열반이고 해탈을 뜻하는데요.

깨달음이라고 다 같은 깨달음은 아니지요.

벽지불은 홀로 깨달았지만 그 깨달음을 전하지는 못하고 간 분이기도 합니다.

이유는 자신의 의도도 있고 (석가모니 부처님도 혼자 깨닫고 혼자만 알고 가시려고 했는데 그러지 마시라고 범천이 설득했다고 하죠?) 앎이 부족한 측면(밀린다왕문경에는 석가모니 부처님을 칭송하면서 벽지불들은 오온을 알지 못했으나 당신은 오온을 알았다고 하지요)도 있을 겁니다.


답변2)


누구나 부처가 될 수 있는가?

사실 대승불교에서는 '성불하세요' 하고 인사 하지요. 부처 되라는 말이지요.

그런데 사실은 초기불교와 대승불교는 부처라는 개념이 약간 다르긴 합니다.

대승에서는, 특히 선불교에서는 어디에서나 있는 것이 부처라고 하니까요 - 개에게도 불성이 있다.


초기불교 쪽에서는 엄격히 구분하는 것이고요.

스스로 완전하게 깨달은(열반과 해탈) 이가 부처이고, 그의 가르침을 받아 깨달은 이는 아라한이다.

그래서 싯달타 태자는 붓다가 되었고 동시에 아라한이기도 합니다.

그의 가르침을 배워서 깨달은 이들은 붓다는 아니지만 아라한인 것이고요.


답변3)


우선 깨달음이라는 표현의 범위를 '열반과 해탈' 이라고 하면 부처님과 제자들, 나아가 모든 아라한은 동등합니다.

열반을 경험했고 더 이상 윤회하지 않으므로 삶의 반복으로 인한 괴로움이 반복되는 일이 없는 것은 같습니다.

계정혜의 과정으로 본다면 선정의 4선이나 비상비비상처의 완성 후 상수멸에 드는 등 선정을 구족하지 않아도 열반과 해탈은 가능합니다. 이런 것을 혜해탈이라고 하죠. 선정도 구족한 후 깨달음을 얻는 것을 양면해탈이라고 합니다. 즉 선정과 반야(지혜)의 조건을 모두 만족시키는 해탈이며 이런 경지에서 신통력이 나옵니다.

다시 정리하자면 석가모니 붓다, 붓다의 제자로 깨달은 분들(대부분 양면해탈자), 혜해탈자, 벽지불 등 모두 아라한이지요.


그런데

석가모니 부처님은 이 우주와 정신세계의 모든 것 중에서 꼭 필요한 작은 부분만을 전해주셨다는 말씀이 있습니다.

사리풋타나 목갈라나 등 상수제자 직계제자분들께 하신 말씀이지요.

우리는 이런 말씀을 통해서 분명히 미루어 짐작해볼 수 있습니다.

붓다의 앎과 봄이 그 어떤 제자들의 것과도 비교할 수 없이 크고 광대하다는 것을요.

한편 생각해보면 붓다의 깨달음은 과거의 셀 수 없이 많은 생의 공덕이 뒷받침되어서 씨앗이 되고 싹이 터서 거목이 된 것과 같습니다. 그에 비하면 직계 제자분들은 속성 과정으로 붓다와는 비교할 수 없이 짧은 과정으로 '졸업' 한 것이나 마찬가지겠지요.


붓다의 크나큰 가르침에 감사하며 귀의합니다.

나무석가모니불 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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