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상과 불교수행으로풀어 쓴 [노자도덕경10]

37장 道常無爲而無不爲 도상무위이무불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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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장 道常無爲而無不爲 도상무위이무불위 - 도는 영원히 하는 일 없지만 하지 못하는 것이 없으니



도는 영원히 하는 일 없지만 하지 못하는 것이 없으니, 후왕이 만약 그것을 지킬 수 있다면 만물은 저절로 교화될 것이다.

(스스로를) 교화하려 하거나 욕심이 일어나게 되면 나는 이름 없는 소박함으로 그것을 억누를 것이다.

이름 없는 소박함에서는 또한 하고자 하는 욕심도 없어질 것이다.

욕심 부리지 않고 고요하게 있으면 천하가 저절로 안정될 것이다.



첫 문장이 어려운 글자가 아니니 최대한 원문 그대로 이해해보자.


道常無爲而無不爲 도상무위이무불위

도道는 항상常 무위無爲 이지만 무불위無不爲이다.

도는 항상 하는 일 없지만, 하지 않는 일, 하지 못하는 일이 없다.


세상을 살아가면서 '논리' 라는 말을 많이 듣게 된다. 논리는 세상 살아가는데 있어서 아주 중요하다고 한다. 누군가에게 비논리적이라고 한다면 그가 좀 모자라다는 의미에 가깝다. 하지만 이전 장에서도 여러번 언급되었듯이 노자와 도道의 관점에서 본다면 무위이며 무불위이다. 함이 없지만 못하는 일도 없다. 크고 작은 것, 높고 낮은 것, ... 상대적인 모든 것이 '하나一' 다. 이것은 전혀 논리적이지 않다. 논리의 기본은 T (true 참) 와 F (false 거짓) 둘 중 하나인 것이지, 둘 다를 포함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도道는 논리도 비논리도 모두 포함한다. 모두를 포함하는 도에서 나온 것이니.


자自이든 타他이든 교화하려 하거나 욕심이 일어나면 '이름 없는 소박함'으로 그것을 억누른다고 하였다. 이름 없는 소박함의 원래 표현은 무명지박無名之樸이다. 이름 없는 통나무 라고 번역하기도 한다. 그만큼 낮은 것, 보잘 것 없는 것, 의미 없어 보이는 것을 뜻하는 비유다. 이것은 곧 '비움'이다.


바른 수행에 뜻을 둔 우리는 도道 (깨달음)가 아주 중요한, 어쩌면 가장 중요한 가치를 가진 것임을 알고 있다. 그런 도(비움, 비워진 상태)를 따르고 하나가 되고자 한다. 하지만 이런 의지는 이상적인 것이지 완벽한 현실로 들어맞기는 어렵다. 살다 보면 욕심도 생길 수 있다. 그러면 '이름 없는 통나무'를 떠올리며 비워야 할 것이다. 그러면 일어나던 욕심도 사라질 것이다. 이렇게 고요히 있으면 세상사 평화로워질 것이다.


사람들이 너무 결과 결과 하면서 결과를 중요시하다 보니 '결과보다 과정이 중요하다' 라는 말도 나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부분 내심은 어떤 식으로든 결과가 중요하다고 여길 것이다. 물론 결과도 중요하다. 과정도 중요하다. 어찌 보면 과정이 중요하냐 결과가 중요하냐 하는 질문은 아빠가 좋아 엄마가 좋아 하는 것과 비슷할지도 모른다.


비움은 수단이자 도구이다. 또한 비움은 궁극의 결과이기도 하다. 비움으로써 궁극적인 비움인 도道(깨달음)에 이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비움은 과정이기도 하고 결과이기도 하다. 다른 무엇보다도 도를 향해 가는 여정에 있어서 비움이 핵심이다.


- 明濟 전용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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