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가 금사빠에서 소울메이트를 찾기까지
배우자는 어째서 파이어에 도움이 되는가 - 내가 금사빠에서 소울메이트를 찾기까지
파이어족과 같은 경제적 자립을 원하는 사람이라면 아마도 토마스 스탠리가 쓴 이웃집 백만장자 라는 책에 대해서 들어보았을 것이다.
그는 많은 자수성가한 백만장자들을 직접 조사해서 공통점을 뽑아낸 내용을 책으로 남겼다.
그중에서 기억나는 내용 중 하나가 자수성가한 백만장자들은 대부분 성공적인 결혼생활을 이어가고 있다는 것이다.
왜 그런지에 대해서는 충분히 예측 가능하고 이해할만하다.
이혼은 크나큰 재정적 위협요소가 된다. 위자료 라든지 소송 비용 등 막대한 재정적 손해가 따른다. 어디 그뿐이겠는가. 정신적인 스트레스 또한 엄청날 것임은 충분히 짐작하고도 남는다. 이는 분명 건강에 큰 위협으로도 이어질 수 있다.
그것이 연애만을 목적으로 하든 결혼을 목적으로 하든 우리는 이성에 대한 이상적인 관계를 갈망한다. 하지만 주변을 둘러보건대 숱한 사례들로 봐서 이것은 분명 쉽지 않은 일인 것 같다. 인간관계라는 것 자체가 쉽지 않은 일 아닌가? 서로 다른 두 사람이 자기 뜻대로 할 수 없는 일이 허다하다. 우리는 어쩌면 기본적인 기싸움 속에서 때론 우선권을 잡기도 하고 또 때론 양보하고 타협하며 줄타기를 해나간다. 여기에 가족을 비롯해서 이성적인 관계와 사회적인 관계가 얽히면서 관계는 더더욱 복잡해진다. 서로에 대한 요구와 갈망과 질투와 시샘 등 오욕칠정의 파노라마가 펼쳐지는 것이다.
모든 관계들이 그렇지만 여기서는 배우자와의 관계로 한정해서 이야기를 풀어나가보려고 한다.
이전 글에서 필자에게는 청소년기 이후부터 이성에 대한 판타지 같은 것이 있었다고 언급했다.
사람마다 다소간의 차이가 있겠지만 나는 이성과의 친구(여사친이 아닌 연인) 를 끊임 없이 찾았다. 뭐, 피지컬로 그리 좋은 조건도 아닌데다 환경적인 조건도 좋지 않았기에 (남중 남고 출신) 모태솔로의 기간으로 쭉 보내게 되었다. 대학 때 지독하게 뜨거운 사랑에 데여서 글로 풀어서 셀프힐링 했다는 이야기는 글쓰기 편에서 풀어낸 바 있다.
아무튼 그런 열악한 조건의 필자를 솔로에서 구해준 빛은 PC통신이었다. 나중에 인터넷 환경에서 생겨난 세이클럽 같은 채팅방과는 분위기가 달랐다. 뭐랄까 좀 클래식한 옛날 감성이었다고나 할까. 먼저 오픈 채팅방을 열고 누군가 들어오기를 확인한다. 성별을 확인한 후 남자면 그냥 오픈방으로 남겨놓고 누군가 더 들어오면 그룹채팅으로 즐겁게? 논다. 성별이 여자라면 비공개방으로 방속성을 바꾸고 데이트?를 한다.
앞에서 썼던 연재글의 제목이 <글쓰기는 어떻게 파이어의 무기가 되는가> 였다면 이 글 제목은 <글쓰기는 어떻게 솔로 탈출의 무기가 되는가> 로 바꿔야겠다. 우선순위를 말하자면 화법/말하기는 어떻게 솔로 탈출의... 이 훨씬 더 유리하겠지만 말하기는 내가 일찍부터 단련해온 필살기가 아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포기해야 했다. 나는 본디 좀 진중한 성격에 가까운데다 일찍부터 글쓰기를 무기로 단련해왔기 때문에 필살기는 오직 하나! 글쓰기는 채팅에 있어서 최고의 무기가 된 것이 사실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런 글쓰기-채팅의 기술로 연애 작전에 열심히 써먹다가 일어난 큰? 사건 하나가 나중에 내 삶의 목적을 세우는데 크나큰 초석으로 이어졌다 - 이에 대해서는 이후의 연재글에서 쓸 일이 있으리라 본다.
글쓰기-채팅 기술로 나는 솔로 탈출에 날개를 달았다.
그렇게 나름대로 쉽게 연애를 할 수 있게 된 나는 나 자신에 대한 새로운 사실을 알 수 있게 되었는데 그것은 내가 금사빠라는 사실이었다. 어쩌면 대학 때 그토록 잊지 못하고 괴로움을 느끼게 한 첫사랑의 경험에 대한 반작용이었는지도 모른다.
나는 금방 사랑에 빠지고 또 그런만큼 금방 식었다.
사랑에 빠졌을 때는 엄청 뜨거웠고 상대방에게 너무나 잘해줬다. 그런데 금방 식어버리니 상대방의 상처는 오죽했을까! 안타깝고 미안하게도 많은 여친들을 울렸다. 나도 절대 그러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나라고 내 마음을 잘 알기만 하겠는가? 사람 마음은 빙산과 같다. 아는 마음은 빙산의 일각으로 10프로가 될까 말까 하고 나머지 90프로가 무의식의 작용인데...... 그야말로 내 마음 나도 몰라일 수 밖에...
나는 정말로 내가 더 이상 그러지 않기를 기도했다. 누군가 믿는 신이 있어서 그 대상을 향해 기도한 것은 아니었다. 내가 남에게 상처를 주지 않기를 진심으로 바랬다. 그런 기도가 이루어진 것일까? 그 후에는 서서히 그런 마음은 사그라들었고 몇 번의 연애를 거치면서 나는 점점 더 성숙해졌다 - 이 몇 년 사이에 상당히 중요한 일이 있었는데 그에 대해서는 다음 기회로 미루고 넘어가야겠네요.
IT 업계에서 직장생활을 하는 동안 (만으로 6년이었고 이 기간 중에 IMF도 터졌었다) 나는 정말로 열심히 일하긴 했지만 이 업종의 일에서 완전한 만족을 얻지는 못하고 있었다. 그래서 내가 ‘정말로 원하는 일’ 에 대해 가슴 속 한 구석에서는 항상 갈망이 있었고 그 갈망에 따라 새로운 시도를 반복했고 시도에 뒤따르는 피드백을 염두에 두었다.
이에 따라 점점 더 나에게 이상적인 여인을 찾겠다는 갈망은 줄고 IT업계를 벗어나 진정으로 원하는 일을 찾겠다는 갈망으로 대체되어 갔다. 이런 마음의 일환으로 나는 기존에 어릴 때부터 수행해오던 명상을 바탕으로 해서 아주 많은 명상과 자기계발 서적들, 그리고 많은 교육과정들을 이수했다.
다니던 회사에서는 다소 이상한 사람으로 낙인 찍히기도 했다. 휴가란 휴가는 몽땅 다 써버리는데 자비를 들여 이상한? 교육을 받으러 다니는 사람 (특히 당시에는 그런 사람들을 찾아보기 힘들었기에) 이기도 했고 채식을 한다고 회식 자리에서 열심히 고기만 구워주며 양배추만 몇 접시씩 먹어대는 사람이기도 했다(당시에는 채식주의자인 비건도 드물었다. 이 때문에 TV 프로에 출연하기도 했었다).
그러던 어느날의 일이다.
어떤 책에서 영감을 받아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여성, 소울메이트를 만나기 위한 작업을 했다.
그 작업은 다음과 같았다.
전혀? 어렵지 않으니 운명의 상대를 만나기를 원하는 분은 꼭 시도해보시길 바란다.
밑밥?부터 깔자면 나중에 내가 알려준 이 방법으로 원하는 상대를 만난 분들도 여럿이었다. 엄청 노처녀였던 나의 처형 중 한 명도 이 작업을 통해 원하는 분을 만나서 결혼했다. 다른 사례중에는 대구에서 서울까지 나에게 개인상담을 받기 위해서 기차를 타고 오신 분도 있었다. 그런데 원하는 상대의 조건의 허들이 너무 높아서 상담자인 내가 보기에도 속으로 ‘저게 정말 될까?’ 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그 후 2주 정도 후인가 그분과 통화를 했는데 상담 때 적었던 원하는 상대를 정말로 만났다는 소식을 전하는 게 아닌가!
작업은 아주 쉽다.
그런데 머리에 쥐가 날지도 모르니 미리 주의하시고.
원리는 아주 단순하다 - 오컴의 면도날의 법칙을 떠올려보시라.
성경에도 나오는 말처럼 “겨자씨만한 믿음이라도 있으면 산도 옮길 것” 이라 했지 않는가?
원리는 믿음을 만드는 것이다.
작업 방법을 진짜로 풀어본다.
1. 원하는 상대가 어떤 사람인지에 대해 가능한한 최대한 구체적으로 상세하게 적는다.
외모, 경제적 조건, 어떤 자산이 얼마이고 어떤 직업에 연봉은 얼마고, 성격은 어떤지 모든 면을 다 적어라.
결혼할 상대를 원한다면 반드시 상대방의 부모와 가정환경 등도 구체적으로 기술하는 것이 좋다. 결혼이란 두 사람만 하는 것이 절대로 아니다. 양가 집안이 맺어지는 것이기에 두 사람이 사랑해도 이런 외부조건 때문에 깨지는 일이 허다하다.
2. 그런 사람을 만나야 하는 이유를 50가지 이상 적는다.
3. 그런 사람을 만날 수 밖에 없는 이유를 50가지 이상 적는다.
아주 쉽죠? (^^)
1번은 ‘원하는 것을 분명히 하는 것’ 인데 이것이 현실적인 삶에서의 모든 출발점이 되는 포인트다.
공교롭게도 사람들이 이 중요한 것을 잘 모른다.
학교에서 온갖 문학과 비문학, 영어와 수학을 다 가르치면서 이 간단하고 중요한 것을 왜 가르치지 않는지 참으로 의문스럽다. 아마도 혹자의 주장대로 학교는 조직적으로 조종할 수 있는 자본주의 사회의 노예들을 생산하는 도구일 수도 있겠다.
앞에서 소개한 작업은 원하는 이성을 만나는데 적용한 것이지만 그것이 무엇이든 적용은 가능하다. 원하는 부? 원하는 물건? 원하는 부동산? 그것을 구체적으로 알아야 하고 정해야만 한다. 하지만 대개의 사람들은 마음이 어영부영 중언부언 하며 헤매기에 안그래도 쉽지 않은 삶이 더욱 어려운 나락으로 빠지는 것이다.
핵심은 믿음을 만들면 된다고 했다. 이것은 심리학이나 행동과학의 차원에서는 자신의 심리와 태도가 그 믿음에 걸맞게 변화된다고 설명할 수 있으며 조금 더 오컬트적으로 보자면 세상과 상응하는 에너지의 작용으로 인해 그렇다. 어떻게 해설하든 간에 중요한 것은 믿음은 정말로 작용한다는 사실이다.
2번과 3번 작업이 말로는 쉬운데 실제로 해보면 정말로 어렵다.
한 10개까지는 어렵사리 쓰더라도 나머지는 머리를 쥐어짜고 쓰더라도 돌아보면 같은 말을 뱅뱅 돌고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그렇다고 해도 포기하면 안된다! 새로운 믿음을 만드는 일이 그렇게 쉽겠는가?
나의 경험담으로 다시 돌아가보자.
당시에 나는 지하철을 타고 가면서 그 해의 다이어리의 빈 노트에 마음을 모아 내용을 쓰고 있었다. 전철이 한강철교를 건너가는 순간 작업을 마쳤고 고개를 들었다. 그 순간 나는 서쪽을 향해서 앉아있었고 석양이 지는 풍경을 보았다. 뭔가 마음이 달라지는 것이 느껴졌다. 너무나 평온했고 적은 내용에 집착 또한 전혀 없었다. 이루어지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마음이 들어설 자리가 없었다. 그 순간 모든 것이 완벽했고 저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믿음이란 그런 것이다.
미래에 정말로 이루어지게 됨을 진정으로 안다면 무엇이 조바심나고 불안하겠는가. 궁금하지조차 않다. 미래를 미리 내다본 것이나 마찬가지니까.
그렇게 나는 그 일을 잊었다.
그 후 나는 직장생활을 완전히 그만뒀고 내가 정말로 원하는 일에만 마음을 쏟으며 지냈다.
.....
나중에 지금의 아내와 처음 만난지 1년쯤 되었을 때 작년(당시를 기준으로)의 다이어리에 뭔가를 적었던 것이 문득 생각나서 다시 꺼내어보았다. 내가 무슨 내용을 적었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내와 비교해보니 다이어리를 빽빽하게 채운 내용 중 80퍼센트 정도가 들어맞았다. 스스로도 깜짝 놀랐다.
여러가지 적은 내용 중에 내가 당시에 가장 중요하게 썼던 내용에는 다음과 같은 것이 있었다.
내가 하려는 일을 이해하고 함께 할 수 있는 사람.
성격적으로 나와 잘 맞는 사람.
배려심이 있는 사람.
아내는 내가 운영하던 카페의 정모에서 처음 만났다. 아내는 당시 직업적으로 불안정한 상태였기에 나에게 상담을 받고 도움이 되어 당시 갈 수 있었던 최고의 직장으로 취업했고 자존감 향상 등 성격적으로 부족한 부분도 크게 나아졌다. 내가 하던 자기계발 교육에 참여함으로써 직업적 커리어에도 큰 도움이 되었다. 나와 결혼 후 아이가 두살을 지나면서 퇴사해서 전업주부로 지내다 10년 전부터 숲해설사가 되어 자신의 길을 찾아서 활약중이다. 이 과정에도 과거 내가 운영하던 교육 내용들을 효과적으로 적용하고 있다.
아내는 나를 만나기 얼마 전 하느님을 보는 꿈을 꾸었단다. 하늘을 올려다 보았더니 하느님이 보였는데 다른 사람들은 아무도 못알아보더라는 것이다. 아마도 남들은 알아보지 못하는 좋은 사람을 만나게 될 암시였을 것이다.
나는 비록 길고 짧은, 나름 많은 연애를 하면서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들여다보게 된 것 같다.
안타깝게도 남자는 여자의 외모를 상당히 비중있게 보기 마련일 것이다. 운이 좋다면 단 한두 번의 연애로 좋은 상대를 만날 수도 있겠지만 세상일이란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을 수도 있다.
물건을 사더라도 디자인은 중요한 요소인 것이 맞다. 이는 분명 사람에게도 적용된다. 제 아무리 성격 좋은 사람이라도 외모의 허들을 넘지 못하면 탈락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더군다나 평생을 마주하고 살아야 하는 사람이라면..... (물론 외모는 세월에 따라 노화되고 변화되어 가기 마련일 테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격이 맞지 않으면, 배려심이 없는 사람이라면 참는데는 한도가 있는 법 아니겠는가. 외모는 최소한의 요소로 비중을 좀 낮추고 심적인 면과 스스로 더 나은 방향으로 변화하려는 의지 등에 높은 가중치를 주는 것이 지혜로운 판단임을 강조하고싶다.
아내와 결혼하고 나서 아내의 직장 바로 인근으로 이사를 했었다.
아내의 회사사람들이 우리집에 와서 집들이도 했고 같은 부서의 누가 누군지 어떤 성격인지 어떤 말이 도는지 등의 깨알같은 이야기를 들었던 기억이 난다. 당시에 우리 부부가 사이가 좋은 것을 보고 누군가 했던 말이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1년만 지나봐라.
1년이 지나도 우리는 여전히 사이가 좋았다.
위기는 홀수해마다 찾아온다.
3년, 5년이 지나도 우리는 여전히 사이가 좋았다.
작년(2023년)을 기준으로 20년차 결혼기념일을 맞이했고 이제 아이는 고3 수험생이다.
나는 직장인도 아니기에 집에서만 일하는 타입이다. 아내도 숲해설가이며 초등생 등의 아이들을 모아서 숲놀이 학교를 운영하기에 대부분의 시간을 집에서 보낸다. 그야말로 24시간을 함께 지낸다.
우리를 아는 사람들은 몹시 신기하게 느끼는 것 같다.
그렇게 오래 함께 지내서 지겹지 않냐고.
두 사람 다 전혀 그렇지 않다고 생각하기에 부부 관계에 대한 세상의 신념과 너무 다른 듯해서 약간은 미안하다. 하지만 이해하기는 한다. 왜 그런지를.
평소에 전혀 다툼이 없냐고?
한 5년쯤 전인가 크게 싸운 일이 있었다.
우리 부부는 성격이 비슷하지 않고 많이 다른 편이다.
서로 나름 잘 맞는 사람들로 만나긴 했지만 살아온 환경과 성격이 다른 사람들이 만나서 어찌 좋기만 하겠는가. 어느 정도는 양보하고 삭히고 묵혀가며 살지 않겠는가.
그렇게 속으로 묵히던 것들이 5년 정도는 지나서 드디어는 터져나온 것일까? 원인이야 늘 그렇듯 사소한 일이었지만 다툼은 크게 번졌다. 그날 저녁의 다툼이 밤까지 이어져 상한 감정으로 처음으로 각방을 쓸 뻔했는데 겨우 무마하고 각방 생활을 면했다. 그렇게 사건이 끝나나 했지만 다음날 점심 때 묵은 감정이 다시 터져나왔다.
다시 고성이 오가며 다투던 찰라에
내 마음이 사라졌다.
이것은 비유적인 표현이 아니다.
평소에 우리 마음은 완고하다. 자기자신이라는 나라는 경계를 치고 그것을 고집하고 그에 집착한다. 이것을 보통 에고라고도 부르고 자아라고도 부른다. 이것은 생존에 필수적이지만 숱한 부작용들을 낳는다. 이 때문에 관계는 힘들어지고 괴로움이 지속된다.
내 마음이 사라진 자리에는 아내의 마음이 남았다.
나는 아내의 괴로움과 상처를 마치 내 것처럼 고스란히 느꼈다.
서로 다툰다는 것은 서로 자기자신을, 자신의 입장을 고집하기 때문이다.
물론 사랑하는 상대방도 중요하다고 느끼지만 그래도 “내”가 한끗이라도 더 중요하다. 상대방의 아픔보다 내가 한 톨이라도 더 아프다고 여기는 것이다. 미안하다고 사과하더라도 그 배후에는 이 불편한 사태를 당장은 해결하고 보자는 마음이 깔려있는 경우가 많다.
미안하다고 사과했다.
앞뒤를 가릴 것도 전후 사정을 잴 것도 없었다. 그저 상대방의 아픔만이 느껴지는데 무엇을 따지겠는가.
그런 진심어린 사과가 아내의 마음에 바로 가서 닿았나보다. 그 말 한 마디에 즉각적으로 아내의 표정이 눈 녹듯 풀리는 것을 보았다. 그렇게 우리는 곧바로 진심어린 화해로 이어질 수 있었다.
미안해. 사랑해. 고마워......
그 때 서로간에 쌓여가던 묵은 감정들은 완전히 풀려버렸다. 이후로는 15년 동안 한 번도 크게 다퉈본 일이 없다. 조금은 안맞던 서로의 조각들도 세월의 흐름 속에 점점 더 정교하게 맞춰지는 듯하다.
아, 예전에 내가 금사빠였을 때 아버지가 내게 “냄비” 라고 하셨던 기억이 난다. 금방 달아오르고 식어버리는 냄비 말이다. 나는 이후로 만나는 사람에게 너무 뜨겁게 잘해주지 않기로 결심했었다. 그저 따뜻한 난로같은 사람이 되자. 그래서 평생을 따뜻한 온기를 전할 수 있는 사람이 되자. 그 결심이 통해서였을까? 아내를 향한 마음은 22년(연애기간 1년을 포함하면) 이 지난 지금도 항상 그대로이다. 남은 평생도 마찬가지일 거라 자신한다.
결혼하기 전, 내가 싱글이었던 어느날 꿈을 꾸었다.
나는 어떤 여인을 백허그한 상태에서 우리 절대로 서로를 잊지 말고 기억하자고 속삭이는 꿈이었다. 아마도 소울메이트일 것이다. 지금의 아내는 소울메이트일까? 꿈 속의 여인의 얼굴은 보지 못했기에 정확히는 알 수 없다. 그 꿈은 어쩌면 그저 무의식의 바람이 지어낸 개꿈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래도 아내를 어찌 소울메이트가 아니라고 할 수 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