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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리를 찾는 신비주의자들의 노래

[로드시커 외전] 길흉화복을 넘어서



하늘과 바다의 경계가 사라진 곳, 밤인지 낮인지 알 수 없는 고대의 돌로 지어진 '침묵의 도서관' 지하 원형실. 거대한 마호가니 원탁에는 희미한 촛불 대신, 투명한 구체가 희미한 빛을 발하고 있었다. 구체는 오늘 모인 8명의 존재들에 대한 내면적 상징이 되는 이미지를 드러내 비추는 듯했다.


이 모임을 주선한 브라질 출신의 연금술사, 산티아고가 무겁게 입을 열었다. 그는 노인의 얼굴을 하고 있었지만 눈빛만은 청년처럼 빛났다.


"형제자매 여러분. 우리는 모두 '궁극'을 추구합니다. 나의 연금술 스승들은 말씀하셨죠. 연금술의 끝에는 둘이 있다고. 영생을 주는 '생명의 액체'와, 모든 것을 금으로 바꾸는 '현자의 돌'. 하지만 둘 다 가질 순 없습니다."


그가 씁쓸하게 웃었다.


"나는 생명의 약물을 마시고 영생을 얻었지만, 사랑하는 모든 이가 죽는 것을 보며, 결국 홀로 남았습니다. 나는 너무나 거대한 외로움에 몸서리칠 정도지만 그것을 피할 방도가 없습니다. 나의 동료는 뒤늦게 현자의 돌을 얻어 세계의 모든 부를 가졌지만, 10년 뒤 병들어 죽었죠. 결국 쓸쓸한 바람만이 남았습니다. 우리는... 무엇을 잘못 구하고 있는 것일까요?"


그의 말이 끝나자마자, 동유럽 특유의 억양을 가진 흑마술사, 코르부가 비웃었다.


"애초에 '구하는' 방식이 틀려먹었기 때문이오, 산티아고. 당신들 연금술사들은 물질에 갇혀있지. 생명? 부? 그런 건 힘의 부산물일 뿐. 진정한 궁극은 '의지'요. 악마를 소환하든, 그들을 조종하든, 내가 원하는 것을 이 세상에 현현시키는 힘! 그 힘 외에 무엇이 있단 말이오?"


"그 힘이 당신을 파멸로 이끌지라도 말입니까, 코르부?"


순백의 로브를 걸친 백마법사, 엘리나가 부드럽지만 단호하게 반박했다. 그녀는 천사의 언어로 마법을 구사한다고 알려져 있었다.


"코르부, 당신의 길은 자신의 탐욕 때문에 타인을 해치고, 그 카르마로 자신을 소멸하는 길입니다. 진정한 힘은 '선(善)'에서 나옵니다. 천사들의 도움을 받아 세상을 이롭게 하고, 타인을 치유하는 것. 그것이 우리가 추구해야 할 '좋은 마법'입니다."


흑마술사 코르부가 백마법사 엘리나의 말을 반박했다.


“당신이 ‘선’이라 부르는 것도 본질적으로는 ‘악’의 그림자일 뿐이야. 백마법의 바탕인 ‘선’이 빛이라면 너희가 ‘악’이라 경멸하는 흑마술은 빛과 함께하는 그림자일 뿐이지. 그림자가 없는 빛, 어둠이 없는 밝음은 존재할 수 없어! 그래서 나는 처음부터 그런 이분법을 버렸지!”


"하! 천사나 악마나! 당신들 서양인들은 너무 거창해!"


화려한 오방색 장신구를 건 몽골계 무당, 체첵이 손에 든 방울을 흔들었다.


"중요한 건 '지금'이야. 내일 당장 닥칠 흉(凶)을 피하고, 복(福)을 받는 것! 내가 받드는 신(神)은 내게 그걸 알려주지. 당신들처럼 뜬구름 잡는 이야기는 추상적인 논란일 뿐이야."


"그것이 과연 '신'의 목소리일까요, 아니면 당신 내면의 욕망이 불러낸 저급한 영들의 속삭임일까요?"


차갑고 이지적인 목소리가 끼어들었다. 이번 모임에서 가장 이질적인 외모의, 말끔한 정장을 입은 사이비 교주, '마스터 R'이었다. 그는 사람 좋은 미소를 지으며 모두를 둘러보았다.


"여러분은 너무 어렵게 생각하십니다. 연금술? 마법? 점괘? 왜 '구하고', '읽으려' 하십니까? 진리는 '만드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원하는 것을 보여주고, 그들이 기꺼이 자신을 바치게 만들면 됩니다. 그들이 나를 통해 구원받았다고 '믿는' 순간, 그들의 세계에서 나는 신이 됩니다. 이것이야말로 가장 확실한 창조가 아닙니까?"


원탁의 한쪽이 소란스러워졌다. 코르부는 "사기꾼!"이라 외쳤고, 체첵은 "미친놈!"이라며 소금을 뿌릴 기세였다.


그때까지 묵묵히 차를 마시던 중국의 주역 점사, '쾅야밍’이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운의 흐름은 거대하여 개인의 믿음 따위로 어찌할 수 없는 법이오. 64괘의 흐름 속에서 길(吉)을 찾고 흉(凶)을 피하는 지혜를 읽는 것만이 우리가 할 수 있는 전부요. 마스터 R의 방식은 그 흐름을 거스르는 교만이며, 결국 혹세무민으로 가장 큰 흉을 부를 뿐입니다."


쾅야밍의 옆에 앉아 있던 윤미가 조용히 입을 열었다. 그녀는 타로 마스터로 이 자리에 초대받았지만, 그녀의 시선은 자신의 스승인 우향을 향해 있었다.


"쾅야밍 선생님 말씀이 맞습니다. 저 또한 타로 카드를 통해 그 흐름의 편린을 읽으려 노력했지요. 사람들은 제게 와서 '흉'을 피하고 '길'을 얻는 법을 묻습니다. 하지만..."


윤미는 원탁의 모두를 바라보며 말했다.


"카드는 운명의 일부일 뿐, 전부가 아니었습니다. 길흉에 집착하는 한, 우리는 영원히 그 흐름의 노예일 뿐이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모든 시선이 윤미에게, 그리고 그녀가 바라보는 우향에게로 향했다. 마침내, 이 모임에 초대받았으나 단 한마디도 하지 않았던 우향이 찻잔을 내려놓았다. 그의 움직임에는 어떤 기세도, 의도도 없었지만, 그가 입을 여는 순간 원형실의 모든 소리가 잠잠해졌다.


"모두 '자신만의 길'을 찾고, 그 길을 따라 걷고 계십니다."


우향은 연금술사 산티아고를 바라보았다. "어떤 이는 영생과 황금이라는 '길(吉)'을 구하다, 둘 다 얻지 못하고 삶의 허무를 보았습니다. 얻는다 해도 삶의 공허는 달라지지 않았지요."


그는 백마법사와 흑마술사를 바라보았다.


"어떤 이는 '선(善)'이라는 길을, 어떤 이는 '힘의 권능'을 좇지만, 결국 천사와 악마라는 창조된 속성에 갇혀 노병사를 피하지는 못합니다. 결국 남는 것은 괴로움일 뿐이지요."


그는 무당과 점술가들을 바라보았다. "어떤 이는 운의 흐름 속에서 '길'을 찾고 '흉'을 피하려 애쓰지만, 그 흐름 자체에 한계가 있음을 보지 못합니다. 행복과 불행, 길과 흉, 그 모든 것이 파도처럼 일어났다 사라질 뿐입니다."


마지막으로 그는 사이비 교주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어떤 이는... 스스로 '길'을 만들었다고 착각하여, 자신과 타인을 더 큰 어리석음의 나락으로 이끌고 있습니다."


우향은 조용히 일어섰다.


"여러분. 우리가 그토록 피하려는 '흉'과 '화', 그리고 그토록 얻으려는 '길'과 '복' 그 자체가 바로 이 세상에서 피할 수 없는 변화하는 속성(無常)입니다. 울고 웃는 우리의 삶, 행복과 불행으로 점철된 이 모든 것이 결국 변하고 소멸되어 사라짐을 보아야 합니다."


우향은 단호한 표정으로, 하지만 담담히 말을 이어나갔다.


"그런 무상함 속에서는 진리를 찾을 수 없습니다. 진리는 길(吉)과 흉(凶)이라는 양극단 너머에, 이 세상이 창조되기 이전 근원에 잠재된, 변하지 않는 '그 무엇'입니다."


"길흉을 따지는 것은 진리의 길이 아닙니다. 그것은 그저 감옥 안에서 더 좋은 방을 차지하려는 다툼일 뿐입니다."


원탁을 사이에 두고 무거운 침묵이 흘렀다. 우향은 윤미를 향해 고개를 끄덕였고, 두 사람은 말없이 원탁을 떠났다. 남겨진 여섯 명의 대가들은, 방금 들은 말이 자신들의 일생을 바친 탐구를 부정하는 것인지, 아니면 완성하는 길을 말한 것인지 가늠하려는 듯 깊은 사색에 잠겼다. 그리고 그들의 침묵 속에서, 원탁의 구체는 서서히 희미해져 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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