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드시커 외전] 이성과 영혼의 경계에서
인간의 '이성'이 정점에 달했을 때, 우리는 무엇을 마주하게 될까요?
지성으로 쌓아 올린 탑의 꼭대기에는, 과연 평화가 아니라 공허가 기다리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문학의 두 거장은 이 질문에 대해 흥미로우면서도 상반된 세계를 보여줍니다.
첫 번째 세계는 조너선 스위프트의 『걸리버 여행기』 3부에 등장하는 공중 섬, '라퓨타'입니다. 그곳의 과학자들은 오직 계산과 추론에만 몰두한 나머지, 인간적인 감정과 현실 감각을 완전히 상실했습니다.
스위프트는 이성을 향한 맹신을 조롱하며, 합리와 지식이 오히려 인간의 교만을 어떻게 부풀리는지를 냉소적으로 폭로합니다. 라퓨타는 하늘에 떠 있지만, 역설적이게도 그만큼 인간성으로부터 가장 멀리 떨어진 세계입니다.
반면, 헤르만 헤세의 『유리알 유희』는 라퓨타와 정반대로, 이성을 완전한 조화의 경지로 끌어올립니다. '카스탈리엔'이라는 이상향의 학자들은 예술과 수학, 철학을 결합한 지고의 유희를 통해 정신적 완벽을 추구합니다. 그러나 그 완벽함은 아이러니하게도 인간적 삶과 뜨거운 감정의 '부재' 위에 세워진 무균실의 유토피아입니다. 주인공 요지프 크네흐트는 결국 그 완벽한 사유의 천공에서 깨달음을 얻고, 불완전한 인간의 세계로 다시 내려오기를 선택합니다.
스위프트는 냉소로 인간의 한계를 폭로했고, 헤세는 명상으로 그 한계를 포용했습니다.
이 두 거장의 세계는 표면적으로는 정반대처럼 보이지만, 모두 “지성의 절정에서 인간성의 결핍을 마주한다”는 점에서 놀랍도록 닮아 있습니다.
저의 소설『로드시커』는 바로 그 두 극단을 모두 통과하는 여정입니다.
욕망으로 가득 찬 1부의 세계는 라퓨타처럼 인간의 오만과 분리를 드러냅니다. 그 분리의 핵심에 욕망이 격벽으로 놓여있는 것이지요. 이어지는 2부, 마음의 길은 유리알 유희의 정신적 순수, 마음의 완성에 도달하려는 치열한 탐구입니다.
그러나 주인공은 거기서 멈추지 않습니다. 그는 결국 영혼의 길(3부)로 나아가, 차가운 이성과 뜨거운 감성, 날카로운 깨달음과 불완전한 삶이 마침내 하나로 섞인 제3의 세계, '무위의 평화'에 도달합니다.
라퓨타가 인간의 오만을,
유리알 유희가 인간의 이상을 상징한다면,
로드시커는 그 둘을 초월하려는 인간 진화의 여정을 상징합니다.
이성은 분명 필요하지만 완전하지 않고, 필연적으로 함께하는 욕망을 놓아버려야 합니다. 영혼은 따뜻하지만, 그 따뜻함이 때로는 초월을 더디게 합니다. 인간은 어쩌면 그 사이의 아슬아슬하고 좁은 다리를 건너는 존재일 것입니다.
결국, 우리는 모두 라퓨타의 한계를 깨닫고 유리알 유희의 순수를 거쳐, 자신만의 '로드시커(길을 찾는 자)'가 되어야 하는지도 모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