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드시커 외전] 천사가 인간을 부러워 한 까닭은
시간이 흐르면서 나는 천국에서의 생활에 익숙해지고 있었다.
지상에서 사람들이 하던 이야기가 떠올랐다.
‘어디나 다 사람 사는 곳은 비슷하지 뭐. 그곳도 사람 사는 건 마찬가지일 거야.’
신기하게도 천국에서의 생활 또한 지상에서의 것과 엄청난 차이가 있는 것은 아니었다. 다만 ‘천국’이라 불리는 만큼 이곳의 사람들은 훨씬 더 순수했고, 거짓이 없는 사람들이었다. 아니, 사람이라고 하기보다는 ‘영혼’이라고 하는 편이 훨씬 더 적절하겠지만 말이다.
또한 지상에서의 환경을 구성하는 질료가 물질인 반면 천상에서의 환경을 구성하는 질료는 훨씬 더 순수한 빛에 가까웠다. 나는 손을 뻗어 곁에 있는 건물의 벽을 짚어보았다. 물질의 감촉과는 미묘하게 다르게 느껴졌다. 그것은 물질처럼 느껴지는 동시에 순수한 빛의 진동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강하게 마음을 먹으면 통과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러자면 너무나 큰 에너지의 소모가 따랐다.
지상의 물질계와는 유사하면서도 또 다르다. 어떤 관점에서는 물질조차도 가장 투박한 빛의 일종이라 할 수 있다.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을 통해 E=mc2란 공식에서 볼 수 있듯이 물질은 결국 에너지로 변환 가능한 것이며 에너지는 빛과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양자역학에서 빛은 상황에 따라 입자이기도 파동이기도 한 것 역시도 마찬가지 관점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어쨌든 지상인들, 특히 특정 종교의 사람들이 오해하는 것과는 달리 천국에서의 생활도 지상에서의 삶과 많은 부분에서 비슷한 면이 많다는 점을 꼭 강조하고 싶다. 천국에도 지상에서의 건축물들, 개념들, 사회구조, 사람들의 직업 같은 것들이 존재하고 있다. 천국 또한 여러 계층으로 나뉘어 있으며 각 인간 영혼의 성장에 따라 더 높은 차원으로 상승하거나 하위 층으로 강등될 수도 있다. 심지어는 다시 지상인으로 퇴출될 수도 있다고 하니 참으로 거동에 주의해야 할 일이다.
그렇다면 천국이 지상 세계와 다른, 천국이라 불릴 만한 이유가 뭐가 있냐고 혹자는 반문할지도 모르겠다. 결정적인 차이로 천국에는 질병과 노화가 없다. 아무도 아프지 않고 늙지 않는다. 지상인의 삶에서의 가장 큰 괴로움 이 늙고 병드는 것인데 그 큰 두 가지가 존재하지 않는다. 이런 이유만으로도 천국이라 할 만하지 않은가.
또한 천국에는 태어남의 괴로움이 없다. 우리는 기억하지 못할 뿐, 모두 어머니로부터 ‘좁은 문’을 통과해서 태어난다. 어떤 연구에 따르면 태아의 출생의 괴로움은 산고의 50배에 달한다고 한다. 그에 반해 지상에서 죽음으로써 영혼이 지나는 여정은 빛의 터널을 지나 영계를 통해 천국에 도달하게 된다. 어떤 체계의 용어를 빌리자면 어머니의 자궁에 잉태되어 세상에 나오는 것을 ‘태생(胎生)’이라고 하면 그러한 과정 없이 출생하는 - 나타나는 - 것을 ‘화생(化生)’이라고 부른다.
나는 여기서 생노병(生老病)의 괴로움이 없음을 강조해서 언급했지만 천국에서의 죽음에 대해서 말하지 않을 수 없다. 천국에도 죽음은 존재하기 때문이다.
나는 가끔 나의 스승이기도 한 무명 천사를 만났다. 그분이 없었다면 나의 깊은 차원의 수행도 없었을 것이고, 나는 평생을 악마의 농간에 빠져 세상을 떠돌다 죽었을지도 모른다. 또한 영혼의 길을 찾지 못하고 수없이 많은 삶들을 낭비해 버렸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오늘도 무명 천사와의 만남을 위해 마주 앉은 탁자 위에는 지상에서 내가 좋아했던 꽃이 꽂힌 화병이 놓여 있었다. 천국에서는 꽃조차 시들지 않았다. 항상 신선한 생기를 머금고 있었다. 대신 이곳에서의 수명이 다한 존재와 교감하는 꽃은 얼마 못 가 시들어 죽게 된다고 한다. 그것이 그 존재가 천국을 떠날, 죽음에 이를 ‘징조’라는 것이다.
천국이라는 이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면서 인간 영혼의 진화와 성장에 대해 수없이 많은 궁금증들이 해결되었다. 물론 아직 모자란 것도 많았다. 그리고 그중에서 스스로 해결할 수 없었던 하나는 천국에서 무명 천사와의 첫 만남에서 그가 던진 말이었다. 나는 몇 번이나 물어보려 벼르다가 이번 만남에서야 제대로 질문을 던지게 되었다.
“천사님. 전에 하셨던 말씀 기억나세요? ‘정말 인간이 부럽다니까!’라고 하셨죠. 왜 그렇게 말씀하셨는지 너무 궁금해서요.”
무명 천사가 대답했다.
“현빈님도 아시겠지만 천사는 인간을 돕기 위해 창조된 존재입니다. 악마는 어떤가요? 직접적으로는 인간에 해를 주려하지요. 결국에는 이런 부정성을 극복하면 그 또한 성장의 디딤돌이 되지만요.”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무명 천사의 이어지는 다음 이야기를 기다렸다.
“하지만 천사와 악마의 의식은 고정된 패턴에 가깝습니다. 그건 강박이고 집착이지요. 선천적으로 주입된 프로그램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이런 패턴에서 전혀 벗어날 수 없는 건 아닙니다만….”
무명은 말끝을 흐렸다. 평소의 그 답지 않은 어조였다. 자신의 태생적인 한계에 대해 느끼는 아쉬움이 전해졌다. 이 또한 속을 완전히 감추기 힘든 천국의 파장의 특성이었다. 무명의 말은 계속 이어졌다.
“사실 많은 인간들 역시도 그렇습니다. 자기의식의 고정된 패턴을 파악하지 못하면 굳게 잠긴 변화의 문을 열고 나아가기란 쉽지 않겠죠. 그러나 깨어난 인간, 자신의 의식을 강하게 자각하는 인간들만이 강박적인 내면의 프로그램을 해체하고 무한히 성장할 자유가 주어지는 것입니다.”
무명의 말을 들으며 나의 가슴속 깊은 곳에서부터 너무나 감사한 마음이 벅차올랐다. 지금까지 인간으로 태어나 살아온 모든 여정들이 얼마나 값진 것이었는지 다시 한번 되새기게 되었기 때문이었다.
물질적인 욕망을 극복하고, 마음의 힘을 터득하고서, 근원적 빛의 깨달음을 얻고 첫 번째 천국에 도달한 나였다. 하지만 앞으로도 더더욱 나아가야 할 여정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 구체적인 여정이 어떻게 펼쳐질지는 모른다. 하지만 방향은 너무나도 뚜렷함을 느끼고 있다. 그건 나 자신을 가득 채우는 사랑, 더 나아가 나 자신을 넘어 온 우주를 가득 채우는 사랑, 그리하여 나 자신의 경계조차 완전히 녹아서 사라질, 경계를 넘어선 사랑의 방향임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