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공동체를 만들기 위한 조건
오늘도 나는 늘 다니는 미용실에 간다. 물론 머리를 다듬기 위해서다. 미용사 부부가 운영하는 이곳은 주변의 다른 미용실과 달리 좁고 허름한 계단을 올라서야 도달할 수 있는 2층에 있다. 접근성이 좋지 못한 셈이다. 실내에 들어서면 전혀 신경 쓰지 않은 듯한 인테리어와 누군가 버린 것을 가져온 듯한 잡다한 가구들을 만나게 된다. 그러면서도 항상 손님이 붐빈다. 모르는 사람들과 둘러앉아 담소를 나누며 몇 시간을 기다리는 사람도 있고, 나가서 다른 일을 보다가 다시 돌아오는 사람도 있다. 상당히 먼 곳에 있는 도시에서 찾아오는 외국인 노동자도 여럿 있다. 이들은 거주지를 옮겨서도 이곳을 다시 찾아오는 것이다.
언제부터인가 이곳은 머리를 손질하지 않을 때도 들르는 곳이 되었다. 그들 부부 아이의 백일과 첫돌을 챙기기도 하고, 명절엔 아이 손에 용돈을 쥐어주기도 한다. 그들 부부의 커피도 사가기도 하고, 끼니때가 되면 그들이 챙겨 나온 음식을 나눠 먹기도 한다. 손님이 없을 땐 같이 기타를 치기도 하고, 때로 텃밭에서 직접 길렀다는 채소가 담긴 비닐봉지를 건네받기도 한다. 여기엔 이런 손님들이 제법 많다.
미국의 사회학자 레이 올덴버그(Ray Oldenburg)는 이런 곳을 제3의 공간이라고 불렀다. 행복한 공동체를 이루고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존재하는 특별한 공간이다. 인간에겐 원래 두 개의 공간이 있다. 바로 제1의 공간인 가정과 제2의 공간인 직장이다. 행복한 공동체에는 제1, 제2의 공간 외에도 카페, 커피숍, 미용실, 서점, 그리고 바와 같은 제3의 공간이 있다는 것이다. 제3의 공간은 제1의 공간인 가정의 무료함과 제2의 공간인 직장의 경직성, 스트레스에서 벗어나 즐거움과 편안함을 누리는 곳이다. 사람들은 이 공간에서 자신만의 자유로운 시간을 보낼 수도 있고, 타인과의 대화를 통해 세상과의 연결을 확인하기도 한다. 그에 따르면 제3의 공간은 반복되는 일상에서 탈출하여 여유와 흥겨움을 느끼게 해 주는데, 그 강도가 낮더라도 빈도에 의해 상쇄된다. 즉, 미친 듯이 즐겁지는 않아도 그 즐거움이 일상생활의 일부를 차지하게 된다는 것이다.
제3의 공간이 특별한 것은 네 가지 이유 때문이다. 서열과 위계질서가 없고, 출입이 자유롭고, 부담 없이 수다를 떨 수 있고, 나누어 먹을 음식이 있다. 이 미용실이 불리한 여건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을 불러 모으는 것도 아마 이 때문일 것이다. 미용실에는 위계질서가 없다. 모두가 그저 머리를 손질하러 온 손님일 뿐이다. 그래서 자유롭다. 누구나, 어떤 주제로든, 어떤 압박도 없이 수다를 즐길 수 있다. 가족과 직장의 이야기, 동네 소식, 정치와 예능에 관한 이야기, TV에서 들은 잡다한 소식 등 어떤 이야기를 펼쳐내도 상관없다. 이곳에 들르는 사람들은 모두가 그런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곳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기꺼이 들어주거나 맞장구를 치기도 한다. 이곳에는 시끄럽다고 눈치를 주는 사람도 없다. 때론 서로 다른 생각들이 부딪히기도 하지만 가벼운 논쟁으로 마무리된다. 시골 동네 할머니가 싸 온 음식을 펼쳐놓고 처음 보는 손님에게 권하기도 한다. 누구나 흔쾌히 맛을 보고, 그럴 때마다 미용사 부부는 커피를 곁들여 낸다. 이 미용실은 출입하는 사람들에게 제3의 공간으로서의 역할을 충실히 해내고 있는 것이다.
올덴버그는 대형 프랜차이즈 점에 밀려 제3의 공간 역할을 하던 작은 카페, 미용실, 바와 같은 곳들이 사라지는 것을 안타까워한다. 공동체성을 잃고 공동체가 해체되는 징후라고 본다. 공동체의 구성원들이 개인으로 원자화되어 갈등은 심해지고, 행복한 삶으로부터 멀어지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제3의 공간에서 만들어내는 행복의 재료는 무엇일까? 모두가 짐작할 수 있는 바로 그것이다. 모두가 구성원 사이(inter)에 쌓인 그 무언가다. 개인이 가진 재산, 지위, 그리고 능력이 아니라 공동체 구성원 사이에 쌓인 소통, 존중, 배려, 참여, 협력, 신뢰와 같은 이른바 사회적 자본의 힘이다. 모두가 ‘함께’를 외치지만 공동체 구성원 사이에 쌓인 사회적 자본이 없다면 공허한 메아리에 불과할 것이다. ‘함께’ 하자고 모여 다투고, 그러다가 더 멀어지는 경우는 또 얼마나 많은가?
우리 직장은 어떨까? 우리 동료들은 모두 제3의 공간을 갖고 있을까? 하루가 멀다 하고 카페는 늘어나지만 정작 우리 동료들을 위한 제3의 공간은 마련되어 있을까? 그곳에서 눈치를 보지 않고 수다를 떨며 수 있을까? ‘그렇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없다면 직장에서 먼저 시작하자. 만약 직장 바깥에서 제3의 공간을 찾을 수 없다면 아예 직장을 제3의 장소로 만들자. 직장 안에 꼭 멋진 카페를 만들 필요는 없다. 그냥 커피 한 잔과 간이 의자만으로 충분하다. 꼭 필요한 것은 서열과 위계질서, 그리고 직원에 대한 통제를 없애고 자유를 허락하는 일이다. 자신의 직위를 의식하지 않고, 만리장성처럼 쌓인 경계의 벽을 허물고, 자유롭게 수다를 나눌 수 있는 곳으로 만들자. 모두가 행복해진다면 생산성은 저절로 높아질 것이다. 생각만 해도 멋지지 않은가?
우리의 동료들이 조금 더 행복해진다면 아마도 음식을 가져오는 사람들이 많아질 것이다. 음식은 원래 좋은 사람들과 나누어 먹는 것이니까. 그렇게 체중계의 바늘이 조금 올라가더라도 우리 그렇게 행복해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