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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리 Nov 30. 2023

아이에게 물려줄게 많은 여자

당신만의 유산 만들기

"우리가 살아가면서 아이들 칭찬, 다른 사람 칭찬은 많이 하지만 스스로를 칭찬하는 일은 드물죠. 오늘은 나를 칭찬해보려고 해요. 지금 나눠드린 걸로 나만의 사과나무를 꾸며볼게요. 각자 내가 아이에게 물려주고 있는 모습 중에 좋은 점, 나를 닮은 모습 모습 중에 좋은 점을 열매에 적은 후에 나무를 꾸며보세요. 돈, 집, 재산 이런 물질적인 게 아닌 본인의 장점을 적어 보세요."

오늘의 주제가 정해졌다.

매주 목요일 10시는 일주일 중 손꼽히게 기다리는 시간이지만 오늘은 어쩌면 가장 오지 말았으면 하는 양가감정이 있는 날이었다. 구에서 진행하는 마지막 집단상담 날 특별히 늦지 않도록 더 신경을 쓰고 길을 나섰다. 구 내의 육아맘들을 대상으로 8주간 진행하는 집단상담은 나와 비슷하지만 다른 엄마들과 함께하는, 관계의존형 인간인 나에게는 삶의 에너지를 받아가는 소중한 시간이다. 그런데 마지막날인 오늘 주어진 주제가 너무 어렵다.

아이에게 물려준 나의 모습이라는 말을 듣자마자 오만가지 안 좋은 모습밖에 떠오르지 않았다. 닮지 말았으면 하는 모습을 똑같이 답습하는 아이와 전전긍긍하는 내가 떠오르고, 이를 고치기 위해 나와 아이를 힘들게 하기를 매일같이 반복하는 일상이 자동재생 되었다. 차라리 좋은 엄마가 되기 위해 내가 바꿔야 하는 모습을 적으라면 섬하나를 통째로 과수원으로 만들고도 남을 만큼 수많은 나무를 만들 텐데 아이에게 물려주고 싶은 내 장점으로 열매 9개의 나무 한그루를 만들기가 이렇게 어려울 줄이야. 아이에게 있는 나의 모습을 찾아보려고 곰곰이 생각하다가 아차 싶었다. 오늘의 주인공은 나다. 내 아이가 아니라 나를 칭찬하고 나의 장점을 찾는 시간이다. 그렇게 생각하고 나니 온전히 나에게 집중이 되면서 하나, 둘 내가 가진 장점이 수면 위로 둥실둥실 떠올라 사과열매에 색을 입혔다.


난 굉장히 에너지가 넘치는 사람이다. 내가 하고 싶은 일에 그 에너지를 쏟는 열정가다.

난 궁금한 게 많다. 이것, 저것 알고 싶은 것도, 하고 싶은 것도 많은 호기심 안테나를 달고 다니는 사람이다.

난 하고 싶은 일이 있으면 장고를 하기보다는 먼저 실행에 옮기는 편이다. 하고 싶은 일을 참는 건 어려운 과제다. 추진력은 내가 지르는 모든 일의 원동력이다.

난 어렵고 힘들다고 해서 돌아가기보다는 일단, 도전하고 본다. 되면 좋은 거고 안되면 배우는 게 있으리라 생각한다.

사랑이 많고 그 감정표현에 인색한 사람이 아니다.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것에 대한 믿음이 있다. 가끔 너무 강한 신념 때문에 피곤하기도 하지만, 신념이 없는 나는 상상이 안된다.

난 책을 좋아한다. 어릴 때는 읽는 걸 좋아하는 책애독자였고, 2,30대는 사는 걸 좋아하는 책소비자였다면 지금은 다시 독서가로 변신 중이다.

사랑과 비슷할 수 있지만 사람의 도리 중 하나는 베푸는 삶이라 생각한다. 인정이 넘치는 세상을 꿈꾼다.

난 많은 다양한 것을 느끼고 살아간다. 나의 아이가 살아가면서 나처럼 많은 것을 보고 느끼며 다감하게 살았으면 좋겠다.

난 틀에 박힌 방법보다는 나만의 방법으로 하는 일이 어렵지 않고 창의적이다 기발하는 소리도 종종 듣는다. 창의성을 발휘할 수 있는 일들은 나를 발전시켜 주는 느낌이라 즐겁다.

하다 보니 9개의 열매로 부족해서 나무기둥에 창의성을 추가하는 욕심도 내보았다. 각각 열매와 나뭇잎을 화려하게 꾸미며 아이가 돈이나 재물이 아니라 다채로운 자신의 경험과 생각과 모습으로 인한 화려한 삶을 살기를 바랐다. 그리고 연두색을 좋아하는 아이를 떠올리며, 나무 가지에서 시작한 갈색은 기둥으로 갈수록 연두색으로 바꿔갔다. 그렇게 아이에게 물려줄 수 있는 나의 장점들을 가득 담은 내 아이를 위한 내 나무가 완성되어 간다. 집단상담을 함께하는 엄마들에게 내 나무를 소개하는데, 나무가 아닌 나를 소개하며 들뜬 내 모습이 보인다. 잘못 생각했다. 누구 엄마가 아닌 인간 사리의 시간이듯이 아이가 아닌 나를 위한 내 나무였다.

이 과정을 하면서 시작할 때 내 안에 가득했던 좌절, 불안, 죄책감은 어느새 사라지고 반짝반짝 빛나는 내가 되어 있었다. 내가 가지고 있는 이 장점들 외에도 다른 좋은 점들도 떠올리며 나 꽤 괜찮은 사람이라는 자존감 전구에 불이 들어왔다. 자존감 전구에서 시작한 불빛은 그 옆에 있는 할 수 있다는 용기에, 부족함을 메꾸자는 다짐에, 아이를 보고 싶다는 간절함에, 남편과의 데이트를 꿈꾸는 설렘에, 점차 점차 내 안의 좋은 모습들을 연쇄적으로 밝히고 있다. 그렇게 스스로 빛나고 있었다. 


그렇게 우리의 마지막 모임은 마무리가 되었고 난 또 그 안에서 성장할 수 있었다. 일상으로 돌아와 다시 불안하고 자책하며 좌절해서 힘들 때마다 이 나무를 보게 된다. 그리고 그런 나를 보며 열매를 하나씩 읽으며 이게 뭐냐고 물어보는 아이에게 당당하게 웃으며 "엄마의 장점 나무야~"라고 이야기한다. 조만간 신랑과 아이와 함께 각자의 나무를 꾸미고 매년 연말 루틴으로 삼아보자는 큰 그림도 그려본다. 힘내라 나의 추진력아!


나의 연두빛깔아이야, 너의 연둣빛이 뿌리로 내려가 네 삶의 원천이 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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