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달 독서모임에서 선정된 책은 국내에서만 50만 부의 책이 팔리면서 자기 계발서의 새로운 고전이라는 GRIT이다. 이 책은 표지에서 당당하게 물어본다
당신에겐 '그릿'이 있는가?
일단 결론부터 말하자면 나에겐 그릿이 없다. 사실 이 책이 지난달 독서 모임에서 회자가 된 후 후보가 되었을 때에서야 이런 책이 있다는 것도 알았다. 원체 자기 계발서를 좋아하지 않는 것도 있지만 끈기, 인내 이런 것들과는 거리가 먼 인생이라 이런 유의 자기 계발서를 읽고 나면 "그래! 나도 할 수 있어! 해보자!"며 encourage를 하기보다는 "어떻게 이렇게 살지? 난 지금도 꽤 괜찮게 살잖아."의 자기 합리화에 최적화된 인간이라 관심이 없었던 분야다. 투표를 하면서도 제일 읽고 싶었던 책은 최소한의 한국사였지만 지난 모임에서 본인에게 없기 때문에 그릿이 갖고 싶다는 분의 이야기에 궁금증이 생겨 다들 선택한 그릿에 살포시 표를 얹었다.
대충 책 소개를 훑어보니 나에게는 별로 필요 없지만 아이에게는 반드시 필요한 내용이길래 어린이를 위한 그릿 세트로 구매하는 합리적인 소비자가 되었다.
출처 : yes24 그릿표지 그렇게 나와 너를 위한 GRIT들이 우리 집에 입주하게 되었으나 유달리 바쁜 시간을 보내며 한 달의 시간이 어떻게 지났는지도 모르게 약속한 독서모임 날이 다가왔다. 모임 전날 어떻게든 한 장이라도 더 읽어봐야지 했지만 논그릿형 인간은 결국 100페이지까지만 읽고 책장을 덮었다. 다 읽지 못했다는 민망함과 나를 쭈그러들게 하는 자격지심은 가서 뭐라도 듣고, 얻고, 느끼고 싶은 내 욕심을 누를 수는 없었다. 완독을 못한 죄인 아닌 죄인인지라 조용히 다른 분들의 이야기를 경청하게 되었고 들으면 들을수록 '나 나름대로 그릿 하며 살고 있었네?!'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나에게 없는 인내, 끈기, 노력에 빠져서 간과한 부분이 열정이었다. GRIT에서 이렇게 말한다.
우리의 인생은 짧으니 살면서 즐겁게 할 수 있는 일을 직업으로 삼고 열정을 쫓아라.
열정의 지속성이 중요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끈기와 인내가 필요하다.
만약 열정을 갈망하지만 대상이 없다면 열정의 대상을 찾는 처음부터 해야 한다.
그리고 여기서 필요한 건 또다시 인내다.
목표를 위계화하라.
나름 안정적이고 급여가 꽤 높은 직장을 다녔다. 대부분의 직장인들이 그렇듯 내가 간절히 원하는 적성에 맞는 직업은 아니었고 여기서 무언가를 이루어야겠다는 소명의식 또한 없었다. 그저 취업이 되었고, 연차가 되면 호봉과 월급이 올라갔다. 본부 부서에서 근무한 덕에 고객을 상대하는 직원들에 비해 감정 노동 강도는 낮았다. 하지만 돈값을 하는 것일까 정말 바빴다. 어느 날 카페에 앉아서 물끄러미 밖을 바라보다 난 왜 이렇게 바쁘게 아등바등 사는 건지가 궁금해졌다.
난 지금 행복한가?
그 질문이 시작이었다. 처음에는 작았던 파동이 생각할수록 거센 파도가 돼서 나를 흔들었다. 기타 다른 이유들도 있었지만 행복한 삶을 바라며 아이의 임신 직 후 시작한 육아휴직을 끝으로 직장에 돌아가지 않았다. 그리고 8년이 지난 지금 나는 나름대로 일을 하고 있다. 수익이 있고 없고는 중요하지 않다.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이 일을 나의 직업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즐겁다. 그래서 더 잘하고 싶고 끊임없이 노력하고자 한다. 아직은 나의 최상위목표는커녕, 중간 목표까지도 못 갔다. 겨우 하위 목표들을 하나씩 점검하는 중이다. 그러면서 여태 나에게 없던 인내, 끈기, 노력하는 삶에 슬그머니 노크하고 있다.
결론이 바뀌었다. 난 비로소 그릿화를 인지했다.
처음부터 그릿을 잘하는 그릿형 인간이 어디 있을까? 살다가 자의건 타의건 점점 그릿화가 되어간다고 생각한다. 모든 전제조건인 필요를 느낀다면 말이다. 내가 그랬듯이 굳이 그릿이 필요 없는 가치 있는 삶도 존재한다. 하지만 이제 그릿화에 엄지발가락 밀어 넣어 봤으니 내 열정의 힘으로 끝까지 가봐야 하지 않겠나 싶다. 이런 생각을 하다 보니 내 주위에 그릿형 인간이 심심치 않게 보인다. 그들을 보면 대단함을 넘어 존경심을 가지게 된다. 그들은 어떻게 그릿 하게 되었을까? 하지만 그들이 자신의 그릿을 달성했다고 할 수 있을까? 아마 꾸준히 그릿 하며 살지 않을까? 만약 실패하거나 좌절한다면 그들의 삶은 어떤 방향으로 가게 될까? 이제 겨우 그릿 대열에 합류했을 뿐인데 오만가지 궁금한 것도 많다. 잘하는 남들 걱정은 그만하고 나의 그릿부터 성장시켜 보자.
아들, 누가 더 빨리 GRIT 읽는지 내기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