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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리 Nov 16. 2023

축개장 대나무숲 쪽팔림林

오늘 당신은 무료입장입니다.

쨔아아아악!

누가 내 싸대기를 날리는 소리가 아니다. 이건 내 교복 치마 찢어지는 소리다. 바짓가랑이 찢어져 본 사람은 있어도 교복 치마 옆 단이 망토처럼 찢어져 본 여고생이 얼마나 될까? 이 웃픈 이야기는 고 2 봄날 학교 운동장에서 시작과 끝을 같이 한다. 배구코트에서 친구들은 배구공 튕기기를 연습 중이다. 체육과는 거리가 먼 몸뚱이인 나는 오늘도 체육복 대신 교복을 입고 심판대에 올라서 있다. 그 좁은 곳을 친구와 함께 올라가는 우정은 낭랑 18세나 가능한 일이다.

"삑!" 빨간 모자의 호루라기맨의 등장을 느끼자마자 우린 멋지게 몸을 날려 가볍지 않게 쿵! 떨어졌다. 그리고 뒤돌아 뛰기 전 체육선생님과의 남은 거리를 파악하려는데 체육선생님이 돌연 멈추더니 멈칫멈칫한다. 아싸, 치질이 또 도지셨군! 그리고 몸을 돌리는데 친구의 "멈춰!" 외침과 함께 뭔가 바람이 분다 바람이 불어~ 치맛바람이 불어온다. 내 플레어스커트는 배구 심판대에 걸리며 떨어지는 내 무게를 견디지 못해 여기가 시접임을 드러내며 뜯어져 허리는 치마에 있으나 치맛단은 심판대에 걸려 태극기 마냥 흔들리고 있었다. 그 모습에 체육선생님은 더 이상 다가오지 못하고 돌아가지도 못하는 처지가 되었다. 아 쪽팔려 죽겠다. 이날 이후로 난 속바지를 입기 시작했다.


6개월 후 말띠가 살이 쪄도 당당한 가을, 나 역시 높은 하늘 질세라 급격하게 찐 살로 교복을 다시 맞추게 되었다. 어떻게 욱여넣고 입고 다니려 해도 치마가 터지는 것보다 엄마 속 터지는 게 나을 거 같아서 엄마와 교복을 다시 맞추러 갔다. 엄마는 세 번은 못 맞춘다며 교복집 사장님한테 "더 크게"를 강조하셨다. 결국 사장님 서비스로 두 치수 큰 거지 같은 옷을 입고 집 앞의 남고를 지나쳐 등하교를 했다. 조금만 서두르면 그 놈들을 피해서 갈 수 있는데 왜 난 매일 그들 틈에서 뛰어서 가는 것일까?

그날도 어김없이 뛰었다. 횡단보도를 건너기 위해 계단을 내려가려는데 내 주위의 모든 사람이 슬로모션으로 멈추었다. 그리고 모두 나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영화의 한 장면처럼 뒤에서 들리던 발걸음도 목소리도 사라졌다. 뭔가 허전하다. 그들의 눈을 따라 고개를 숙이니 그 커다란 남색 플레어스커트가 예쁜 고급 돗자리 흉내를 내며 내 발치에 펼쳐져 있었다. 하아. 큰 치마를 입고 매일 뛰어 본 사람은 알 거다. 치마 고리를 꿰매 놓은 실이 생각보다 강하지 않다는 것을... 그렇게 매일을 뛰어다녔으니 박음질이 풀릴 만도 했지. 아 쪽팔려 죽겠다. 이날 이후로 엄마는 멜빵을 사주셨다. 그리고 나의 등교시간은 빨라졌고 속바지 대신 체육복을 치마 안에 입는 수고로움도 마다하지 않았다.


뭐 대충 나의 학창 시절의 쪽팔림을 생각하면 이 두 가지 정도가 떠오른다. 그 당시에는 정말 접시물에 고개 처박고 죽고 싶을 정도로 창피했던 일이다. 체육 선생님 보기 민망하다 못해 체육 수업도 싫었다. 남고 앞을 지날 때면 모두 나를 알고 다들 내 얘기를 하는 거 같았다. 그렇다고 뭐 울고 불고 죽네 사네 할 만큼은 아니었지만 나름 여린 감성 상처 좀 받았고 위축되었던 것도 사실이다.

근데 돌이켜 보면 그럴 필요가 있었을까 싶긴 하다. 사실 지금 나 말고는 아무도 기억하지 못할걸?

오늘 쪽팔려 죽겠다고 말했던 당신, 쪽팔린다고 죽지 않습니다.
그리고 누구나 쪽은 팔립니다.
Don't worry!
쪽팔려 죽겠다는 지인의 이야기를 듣고 끄적여 본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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