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토록 원하던 아프리카 섬나라 세이셸로 떠난 신혼여행에 대한 글을 써보려고 사진첩까지 뒤져가며 추억을 곱씹어도 생각이 잘 안 난다. 그냥 많이 싸웠었지, 예뻤었지, 커다란 거북이를 봤지, 코코넛 열매가 특이했지, 똠양꿍 컵라면이 맛났지. 그런데 이상하게 이듬해에 떠난 스위스 여행은 매 순간이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떠오른다. 만약 신혼여행으로 스위스를 가고 이듬해에 세이셸을 갔다면 어땠을까?
신. 신혼여행처럼 떠나자!
처음부터 즐겁고 설레어서 준비했던 여행은 아니었다. 눈치 보며 휴가를 내야 하는 신랑을 설득하는데 실패하고 많이 싸운 끝에 결정한 여행이었다. 휴가 5일 내고 가는 게 이렇게 어려운 일인지 혼자일 때는 몰랐다. 지방선거로 휴일이 하루 더 있어서 나에게는 황금 같은 기회였는데 신랑은 눈치 보이는 일이었나 보다. 하지만 돌아와서 다녀오길 잘했다며 만족했고, 다음 휴가부터는 내 의견을 따라주었으니 결혼 후 한 번은 치러야 할 홍역 같은 일이 아니었을까 싶다.
준비 과정의 힘듦은 뒤로하고 신랑이 가고 싶었던 신혼여행지였기에 제2의 신혼여행이라 명명하며 3번만 싸우기로 약속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신랑이 모든 여행계획을 세워서 더 의미 있는 여행이었다!
5월 30일, 사전선거를 마치고 출발! 베이징에서 환승해 도착한 취리히 공항에는 오메가 시계가, 경비행기를 타고 도착한 제네바 공항에는 롤렉스 시계가 보이니 역시 스위스다.
혼. 혼자가 아니어서 다행이야
유럽여행은 거의 혼자 갔는데 이번에는 신랑과 함께여서 덜 긴장한 탓일까, 제네바에 도착해서 몽트뢰로 가는 기차에 핸드폰을 두고 내렸다. 보험도 들었겠다 핸드폰 새로 살 핑계가 생겼으니 불편할 뿐, 나쁘지는 않았다. 오히려 신랑과 헤어지면 안 돼서 덜 싸우고 더 붙어 다녀서 좋았던 거 같다. 게다가 비자카드 2개도 같이 분실하면서 돈도 덜 썼으니 가계 지출을 삼가라는 신의 한 수였다 생각하자.
우리가 갔던 몽트뢰는 프레디 머큐리의 제2의 고향으로 마침 5.31~6.1에 프레디의 날 공연도 하고 마르쉐에서 기념품도 팔며 퀸의 노래가 울려 퍼졌다. 퀸 덕후는 몽트뢰에 앉아만 있어도 행복했다는.
콧수염 붙히고 프레디 동상과 사진 찍는 귀여운 소년
몽트뢰에서 기차를 타고 그뤼에르 치즈 마을 투어를 했다. 가장 좋아하는 음식 다섯 손가락에 치즈가 들어가는지라 가보고 싶었던 곳이었다. 치즈 박물관에서 쌓여있는 치즈의 아름다운 자태도 보고 시식도 하고 기념품도 사다 보니 배가 고프다. 당연히 치즈가 주 메뉴인 레스토랑에서 치즈퐁듀와 라끌렛을 실컷 먹었다. 신랑은 이렇게 짠 치즈를 흡입하는 나를 보며 꽤 놀랐지만 방부제를 사용하지 않기 때문에 그 당시에는 유럽외에는 수출이 안 되는 그뤼에르 정통 치즈를 열심히 싹싹 긁어먹었다. 혼자였으면 하나만 시켰을 텐데 둘이라 더 행복하다!
치즈 천국!
마을을 돌아다니다 우연히 방문한 HR기거 뮤지엄은 스위스의 예쁜 중세 마을과는 너무 다른 모습에 진짜 문화 충격이었다. 영화 에일리언의 모티브였다는 이곳은 한 번은 가 볼만 하지만 두 번은 가고 싶지 않은 기괴함이 있었다. 뮤지엄을 나와 샤또를 방문하고 돌아온 시간이 10시인데도 밝은 레만 호수의 꽃향기를 맡으며 숙소로 돌아왔다.
많이 걷고 보고 배불리 먹은 덕에 호텔에 돌아와 바로 침대로 직행한 나와는 달리, 내 핸드폰 분실신고 확인하고 노트북으로 핸드폰 연동된 지메일 초기화 하고 내일 일정 확인하는 신랑 너무 멋지다. 사랑이 넘쳐서 애교 부리며 물집 생겼다고 뽀뽀해 달라고 앙탈 부리다 잠들었다. 신랑과 함께 와서 정말 다행이다.
신랑이 잠든 나를 찍고 편집한 사진
여. 여기 좀 봐봐~
몽퇴르를 나와서 인터라켄에 도착해 렌트한 아파트에서 여독을 풀었다. 다음 여행지는 스위스의 심장이라는 루체른이었다. 루체른 성곽에서 내려다보는 마을을 꼭 보여주고 싶다는 신랑을 따라 기차 타고 2시간을 걸려서 도착한 호수의 도시는 너무 아름다웠다. 각자 카메라를 하나씩 들고 보이는 모든 예쁜 것들을 찍었다.
호수의 백조를 이렇게 가까이 볼 수 있어서 마냥 신기해하며 사진 찍는 나에게 신랑은 뭔가 구도를 잡더니 말했다.
"사리야, 백조들 사이에서 천사처럼 이렇게 팔을 펼쳐봐~"
도대체 왜 나한테 이러니, 나는 이렇게 멋지게 찍어줬는데!
그 후로도 우린 루체른 곳곳을 돌아다니며 "여기 좀 봐봐~" 하면서 서로를 담았다. 잘 나온 사진에 뿌듯해 이것 보라며 으스대기도 하고 못 나온 사진에 잘 좀 찍으라며 타박을 해도 즐겁기만 한 시간이었다. 그렇게 신랑과 놀면서 힘들게 올라간 루체른 성벽은 신랑 말대로 절경이었고 내 비루한 사진 실력으로 담을 수 없음이 안타까울 뿐이다. 하지만 우리는 안다. 그날 그곳이 사진에 다 담기지는 못했지만 정말 아름답고 행복했음을.
이렇게 예쁜 루체른을 보여줘서 고마워!
행. 행복해
기차를 타고 왕복 4시간을 가며 창밖의 풍경들을 보다, 여행 책도 보다, 찍은 사진도 보다, 서로를 봤다.
"휴가 무리해서 가자고 해서 미안해."
"아냐. 나도 오고 싶었어."
"자기랑 같이 와서 너무 행복해."
"나도 나중에 꼭 결혼하면 아내랑 오고 싶었던 곳인데 자기랑 와서 행복해."
"사랑해."
이 아름답고 평화로운 광경에 어찌 싸울 수 있을까. 그렇다고 세이셸이 아름답지 않은 건 아니었다.
아마 우리가 결혼하고 함께 살면서 좀 더 맞춰가고 있는 거겠지?
아직도 두 번째 신혼여행 스위스의 하이라이트는 안 나왔답니다. 비아그라와 함께 하는 2탄 많관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