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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리 Apr 29. 2024

네가 녹음해 준 27년된 테이프

20240429

작년 겨울 친정에서 물건을 정리하다 보물을 발견했다. 97년도에 친구가 녹음해 준 27년 된 테이프! 한참을 들여다보며 학창 시절을 떠올렸다. 핸드폰이 없던 시절의 여고생에게는 용돈을 모아 음반을 사는 게 취미였고 워크맨은 보물 1호였다. 라디오를 듣다가 좋아하는 곡이 나오면 공테이프에 녹음하던 일은 시험공부만큼이나 중요했다. DJ의 멘트가 음악과 겹치면 그게 그렇게 야속했다. 녹음한 테이프를 다음날 친구들과 바꿔 듣던 건 라테에는 꽤 유행이었다. 친구들과 대화하기 위해 음악을 들었는지 음악을 들어서 대화가 됐는지는 모르겠지만 우리에게 음악은 꽤 좋은 매개체였다. 좋은 음악이 나오면 공유했고, 음반을 사기 위해 친구들과 주말 약속을 잡았다. 우정이 깊어질수록 음악을 듣는 시간이 늘어났고 언젠가부터는 음악 자체를 즐겼다.

하지만 음악을 잘하는 아이는 아니었다. 10년간 피아노를 배웠지만 체르니 30번을 겨우 끝냈고, 외우는 악보 하나 없다면 더 이상의 설명은 필요 없으리라. 당연히 노래도 못 불렀다. 고등학교 행사로 반 전체가 합창을 하던 중, 혼자서 큰 목소리로 반음을 올려 불러서 웃음바다가 된 일도 있었다. 나에게 노래방은 술 먹고 탬버린 치고 뛰어다니러 가는 곳이지 노래 부르러 가는 곳이 아니었다. 지금도 노래방은 기피장소 중 하나다.

만약 음악을 잘하고 아는 것이 많았다면 음악을 듣는 이해도가 상대적으로 높았을 거 같다. 하지만 더 즐겼을지는 의문이다. 오히려 음악을 들으면서 '이 부분은 코드 진행이 매끄럽네', '여기서 단조를 쓰니 느낌이 다른데!' 하는 등의 생각이 끼어들어 온전히 즐길 수 없을 거 같다. 아는 만큼 보인다고 하지만 음악은 알기 위해 듣는 게 아니니 몰라도 좋은 거 같다. 학창 시절 배운 수많은 이론 때문이 아닌 음악을 듣고 공유하는 그것만으로도 내겐 좋은 음악이다.

친구가 녹음해 준 테이프를 꺼내 다시 보니 친구와의 추억이 떠오르고 친구가 보고 싶다. 그리고 27년 된 테이프가 어떤 음악을 들려줄지 몹시 궁금하다.

"JJ, 생일 축하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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