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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리 Dec 21. 2023

어느 관절염의 은밀한 속사정

ARMY 아미의 기쁨과 슬픔

“아이고, 김장을 밤새 하셨나 왜 이렇게 심해요? 당분간 손은 쓰지 마시고 물리치료받으면서 처방해 드린 약 잘 챙겨 드세요.”

2019년 초겨울 참다 참다 찾아간 병원에서 진단받은 병명은 손가락 관절염이었다. 김장과 관절염은 결혼 7년 차의 나 홀로 며느리가 얻기에 충분히 설득력 있는 원인과 결과다. 하지만 처음이자 마지막 김장은 2년 전이었으니 의사 선생님의 추측은 땡! ‘선생님 투표를 밤새 했어요. 그것도 거의 두 달 동안을요. 아직도 가야 할 길이 많이 남았답니다.’

나는야 프로투표러 (출처 픽사베이)

학창 시절 빌보드 핫 100(매주 빌보드에서 발표되는 노래 순위), 그래미 노미네이트(그래미 시상식 후보가 되는 곡) 등의 팝송 테이프를 워크맨으로 듣던 소녀는 30년 후 한국 아티스트 BTS(방탕소년단)에게 트로피의 영광을 주기 위해 핸드폰을 잡고 밤새 투표를 하는 아미(방탄소년단의 공식 팬덤명, Adorable Representative MC for Youth)의 삶을 살고 있다.


아미가 되고 살아가는 세상은 투표할 시상식은 뭐가 이리도 많고, 방식은 또 어찌 그리 다양한지 예전에는 미처 몰랐던 신세계다. 하긴 음악은 사람이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지 있는 것이고 1등을 가리는 것은 인간의 본능이니 어찌 보면 투표는 세계인의 취미이자 놀이인 것이다. 그리고 하필 내 가수 BTS는 전 세계의 내로라하는 시상식에는 이름을 올리고 있으니 아미의 가을, 겨울은 최고의 전투력을 요구하는 때임이 틀림없다.


이 모든 투표와 방법은 트위터(방탄소년단이 연습생 시절부터 사용하던 모바일 최적화 SNS의 하나로 국내보다는 해외에서 특히 미국에서 많이 사용함. 2023년 11월 현재 론 머스크의 인수로 X로 개명. 이하 트위터로 칭함)를 통해 공유되며 아미가 서로를 독려하는 곳도 트위터이다. 게다가 AMA(American Music Award, 미국 3대 시상식 중 하나로 나머지 둘은 빌보드 뮤직 어워드와 그래미 시상식), 빌보드 뮤직 어워드와 같은 큰 시상식은 트위터에 해당 아티스트와 해당 곡이 얼마나 노출되었는지도 심사 대상이다 보니 낙엽이 짙어지고 서늘한 공기가 느껴질 때 즈음이면 2년 차 아미의 트위터는 바람 잘 날이 없는 제2의 집인 것이다. 어쩌면 집보다 더 자주 드나들 수도...

나의 일곱청년들, 김남준, 김석진, 민윤기, 정호석, 박지민, 김태형, 전정국, BTS! (출처  위버스)

매일매일의 순위가 보이는 시상식도 있고 중간 집계가 보이지 않는 시상식도 있기에 아미는 뭐가 됐든 최선을 다해, 아니 죽을힘을 다해 투표를 한다. 우리는 주간조, 야간조 나뉘어 일하는 24시간 근무업체 마냥 한국 아미, 해외 아이들이 분업을 하고, 시상식마다 마감 시간이 다르기에 한국시간, 미국시간, 유럽시간, 남미시간 등등을 알람도 맞추는 일도 잊으면 안 된다. 내가 아미가 돼서 투표한 기간이 거진 6년이니 미국 서머타임에 동부시간, 서부시간까지 따지면서 투표하고 트위터에 글을 쓰는 노력으로 공부를 했으면 서울대를 장학금 받고 들어가겠다.


하나의 투표가 끝나고 승리에 취할 새도 없이 새로운 투표가 2개 생겨나는 걸 보면서 하나 뽑으면 2개가 나온다는 흰머리가 떠오르는 건 왜일까? 어찌 보면 투표로 얻은 건 관절염만은 아닐지도 모르겠다. 내 흰머리의 3할은 투표 탓이 아닐까 하는 합리적인 의심도 해본다.


우리가 이렇게 열과 성을 다하는 이유는 오직 단 하나! 그 시상식 무대 위에서 winner로 BTS의 이름이 불리고 그 BTS의 입에서 “ARMY!!!” 소리를 듣기 위함이 아닐까? 그리고 그 해 빌보드 뮤직 어워드 2관왕을 시작으로 AMA 3관왕을 거머쥐고 국내에서 진행한 멜론뮤직어워드, MAMA 시상식에서도 초유의 기록을 세우며 2019년의 정점을 찍어버렸다. 수상자 발표가 끝남과 동시에 새로운 미션이 주어진다. 트위터의 나라별 실트(실시간 트렌드)를 BTS 수상 관련으로 줄 세우기가 이제부터 우리가 할 일이다! 예를 들면, ‘the winner is BTS’, ‘BTSxARMY’ 우리는 그렇게 우리들의 방식으로 피날레를 장식한다.

그나저나 트위터 오늘 머선일? 아무것도 안보임. 그걸로 실트도배 실화임?

많은 사람들의 걱정과는 달리 신랑과 나는 주말 부부이기에 신랑은 이런 은밀한 속사정을 알 길이 없었다. 독박육아의 탈을 쓴 밤샘 투표로 인한 만성 피로와 잘못하면 고질병이 된다는 손가락 관절염까지 앓고 있는 와이프에게 식기 세척기와 관절에 좋다는 영양제를 안겨주었다. 나 역시 핸드폰 터치펜을 커플템으로 장만하는 애정을 표현하며 만반의 자세로 2020년을 맞이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2022년 늦가을 난 4년 연속 관절염 단골손님이 되어 버림과 동시에 신랑과의 합가로 인해 내 인생 가장 치열한 전투를 하게 되었다. 5년 차가 10년 차의 내공을 이길 수 없어서였을까? 남편과의 내전은 참패했지만 BTS에게 트로피를 안김과 동시에 국내 트위터 실트는 점령했으니 완패는 아닌 셈이다. 그리고 2023년 현재, 멤버들의 군입대에 기인한 반강제 휴식기로 확연하게 줄어든 투표 덕에 남편에게 충실한 아내의 역할을 하며 은밀한 투표를 진행 중이다. 남편을 비롯하여 그간 내 관절염을 지켜보며 혀를 차던 주변인들은 이제야 저 애엄마가 정신을 차렸나 보다고 다행스러워 하지만 그럴 리가. 곧 제대 소식을 전할 그들을 위해 손가락 관절을 아끼느라 그 좋아하는 카톡도 트위터도 허벅지를 찌르며 참는 중이라는 사실을 굳이 내색하지 않은 것뿐이다.


건강히 돌아와요,
나의 소중한 일곱 청년들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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