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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기도설 Mar 28. 2024

[고기파, 사시미파]

- 삼겹살과 연어회의 추억

맛난 음식은 누구와 먹느냐가 중요하다.

'누구'와 '무엇'을 먹느냐에 따라 그 음식을 추억할 수 있고, 맛도 판가름하게 된다.

그 '누구'는 그 음식의 화룡점정의 역할을 한다.

내 주변에는 그 '무엇'에 해당하는 '고기파'와 '사시미파'가 있다.


집에서는 아이들보다 더한 먹성의 남편, 두 아들과 고기를 먹는 일이란 두어점 맛을 보는 기미상궁이 되는 것과 같다. 세 남자의 속도전을 이길 수도 없고, 그들은 그저 빨간 고기가 익기를 기다리는 하이에나 같다. 육고기의 황홀함을 느낄 수 없기에 식구들과 먹을 때 나는 그저 같은 가격에 좀 더 맛나 보이는 식재료를 사오는 전달자 역할을 할 뿐이다.


Y는 나와 삼겹살에 동지애를 느끼는 좋은 '누구'이다.

유독 삼겹살에만 식탐을 더 부리는 Y와 먹은 고기를 열거하자면 돼지갈비, 돼지머리수육, 갈비탕, 쌍다리 불백 등등. 그중 단연코 삼겹살을 가장 많이 먹는다. 때론 Y와 고기를 먹기 위해 이유를 만들어 기다리기도 한다. 삼겹살 쿵짝이 가장 잘 맞는다. 그런데 최근 Y와 삼총사를 이룰 수 있는 J가 나타났다. J도 고기를 잘 먹는구나. (흥에 겨웠던 Y와 나의 착각일수도 있다. J는 소식좌이므로)


최근 기막힌 맛집을 발견했다. 오후4시. 영업시작은 30분 후임에도 불구하고,

J의 집 앞. 고깃집의 문을 열고 일찍 들어가도 되겠느냐며 '우린 지금 고기를 꼭 먹어야 해요' 간절한 눈빛을 보내니 사장님은 당일 첫 손님을 내치지 못한다.


이 집이 맛집으로 불려야 하는 이유는 삼겹살을 돕는 '대파' 때문이었다.

국물을 내기 적합한 파뿌리의 하얀 대 부분과 볶음요리에 적합한 파란 대 부분의 교집합 부분을 손가락 길이로 썰어내어 구워 먹게 한다. 원래는 대파를 통으로 구워 겉껍질이 탈 즈음 벗겨내고 김이 올라오는 파만 먹는 것인데, 이렇게 손가락 길이로 먹기 좋게 썰어주시니, 적당히 구워질 즈음해서 식가위로 두세겹 부분을 반으로 갈라 잘라서 다시 속 부분도 살짝 더 굽는다.


구운대파와 삼겹살을 포개어 멜젓에 찍어도 좋고, 그냥 먹어도 그만이다.

새송이버섯도 넓적하게 구웠다가 볼펜굵기처럼 날씬하게 잘라서 골고루 익히면 관자맛이 난다.


Y와 J, 나 셋은  '고기파'다.

L과 K, 나 셋은 '사시미파'다.


'사시미파'는 각자의 생일 즈음하여 일년에 세번쯤 만난다. 지나고 보니 그 세 번 모두 우리는 스시집, 횟집, 조개구이, 오마카세를 즐겼다. 

사시미파는 대부분 K가 메뉴를 정한다. L과 나는 K의 결정에 동감하며, 주로 연어회와 흰살 생선회, 초밥을 먹는다. 엊그제는 청어회 몇 점에 꺄르르를 외쳤다. 셋이 만날 즈음이면 해산물이 제철이라 원산지의 맛을 느끼러 당일 통영과 속초여행도 불사한다.


'사시미파'는 깔끔한 자태로 세팅된 회를 대하며 '나에게 주는 선물'처럼 생각하고 의식을 치르는 것처럼 오직 조심스레 음미하면서 '음,역시 이거지' 계속 감탄하며 회를 사랑하는 식도락가로서 서로를 인정한다. 술도 끼어들 수가 없다.


친구들과 음식추억은 쫄깃하게 앞으로도 쭈욱! 쩝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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